기원전 30년~기원후 180년 까지의 '로마의 평화(pax romana)'
-'빵', 공짜
옥타비아누스시대 이후 200년간은 평온한 시절이 지속되었는데, 이를 '로마의 평화'라고 부른다.
특히 로마의 시민들은 '빵과 서커스'가 보장된 행복한 나날을 보냈는데, 이는 하층 평민들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황제가 빈민구제를 위해 나선 것이다.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시 전체 인구의 약 1/3인 20~30만명의
가난한 시민들에게 곡식을 무상 배급함으로써 후임 황제들에게 모범적인 선례를 남겼다.
이는 '로마의 평화'를 가능케 한 주된 내적 요인이었다. 대부분의 재원이 속주를 비롯한 해외 정복지
에서 긁어모은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서커스', 눈과 귀를 즐겁게!
'서커스'는 더 이상 사적이고 일회적인 행사가 아니라 공식일정에 따라 정규적으로 실시되는
정책사업이었다. 가장 인기가 높았던 것은 경주와 검투경기였다.
폭력과 유혈이 난무하는 것을 보면서 로마인들은 흥분과 광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한편 연극은 유피테르(Jupiter)나 아폴론 같은 신을 기리는 축제들에서 주로 상연되었는데,
이에 대한 국가의 후원은 일찍이 3세기 중엽이래로 줄곧 지속되어왔다.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로마에서도 연극 관람은 시민들의 야간 여가생활의 꽃이었다.
서커스, 검투경기, 연극은 원래는 장례의식의 일부였다. 여기에 로마의 해외 원정이 시작되면서
전차 경주가 오락거리로 추가되었다.
공화정과 군인들의 시대에는 이러한 볼거리들이 정치인들이나 장군들의 지원을 받아
더 다양화되고 대중화되었다. 그리고 '로마의 평화' 시대에 그것들은 새로운 차원의 정치적 의미를
부여받으며 국가적 정책 사업으로 발전했다. 황제들은 일반 시민의 정치적 관심과 욕구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고 싶어했던 것이다.
이것은 당시 황제 중심의 내정체제에서 상류층과 하류층(평민)의 빈부격차가 너무 커서
사회적 신분 상승의 기회는 거의 없었기에, 상인을 비롯한 일부 소수를 제외하고는 가난을 면치
못했던 하층민들은 '빵과 서커스'에 '나름대로' 만족하며 엄격한 조직 사회의 불평등을 감수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3개 대륙에 산재한 속주들을 로마화시키면서 엄청난 전리품을
얻었으며, 제국은 번성했으며,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이었다.
하드리아누스 치하에서 최대규모를 이르렀는데, 이때 로마는 7천만명의 인구와 350만
평방킬로미터의 영토를 거느렸는데, 국경선의 길이만 1만킬로 미터에 달했다고 한다.
--------------직접 작성 (책에 나와 있는 긴 문헌을 짧게 요약한 것)
참고한 문헌은 <하룻밤에 읽는 유럽사>(윤승준, 랜덤하우스 중앙, 2004) 제2장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
첨부한 사진은 용량이 커서 오래걸릴 수 있습니다. 기다리시면 나올거에요!
첨부한 사진은 '빵과 서커스'전략을 잘 확인할 수 있는 벽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