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술라(insula)는 '섬'이란 뜻의 고대로마의 서민들이 살던 다층 고동 주택을 일컫는 말이다.
거대한 통일기념관이 세워지면서 캄피돌리오 언덕 주변의 중세 및 르네상스 건물들이 많이
헐려나갔는데, 산타 마리아 인 아라 첼리 성당 아래에서 조그만 성당을 철거했을 때 인술라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고대 로마인들의 아파트
위의 사진의 인술라는 서기 2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6층 규모에 약 380여명이 살았던 것으
로 추측되지만 이곳에서 언제까지 사람들이 살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이것이 이 인술라 유적에 관한 모
든 정보이다. 서기 350년경의 기록에 의하면 로마에는 개인 소유 단독 주택은 1782채밖에 되지 않았고,
인술라는 4만 6602동이었다고 한다. 도시의 인술라는 주로 임대용이었다. 로마는 수도권 인구 집중으
로 인하여 땅값이 비쌌기에 임대료도 매우 높았다. 인술라는 일반적으로 6,7층으로 되어 있으며 1층은
작업장이나 상점으로 이용되었는데 이는 현재 유럽도시의 건물들과도 유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날림공사와 조약한 주거환경
인술라의 높이는 건물의 구조적 안정과 도시 미관 때문에 이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도시계획법에 의
하여 70모라식 피트(약 20.8m), 즉 6,7층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초를 너무 얕게 파거나 벽을
너무 얇게 만들어서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즉 인술라 붕괴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이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2세기 초 풍자시인 유베날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숲으로 덮인 언덕 중턱에 있는 시원한 프라이네스테(현재의 팔레스트리나)나 볼시니에 사는 사람들은
집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 우리의 얇은 판자들은 얼기설기 엮어 세워 만든
도시에 살고 있다, 인술라 건물 주인은 금간 낡은 벽을 누더기처럼 적당히 가려놓고, 언제 무너져 내릴
지 모르는 천장 밑에 세들어 사는 사람에게 오늘도 편히 자라고 한다.
고대 로마인들은 우리식 온돌과 비슷한 뛰어난 난방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로마식 온돌은 바닦
뿐만 아니라 벽에도 열기가 흐르도록 햇다. 그런데 서민 인술라에는 이러한 난방 시스템이 전혀 없었으
며, 연기를 밖으로 이끌어내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난로나 벽난로도 없었다. 난방 시설로는 연통이 없는
화로를 이용했지만 이것을 갖춘 집은 그리 많지 않았으므로 가난한 사람들은 난방 없는 집에서 추위를
견딜 수 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