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6세기, 프랑스 중부에서 오스트리아에 이르기까지 초기 켈트인들은 단일왕조의 지배 아래 풍요로운 정착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한편, 지중해 세계와 교류하기 시작했다. 금세공장이를
비롯한 장인들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현재 이탈리아 서부의 토스카나)에서 가져온 밀주와 포도주를 마시며 영
감을 얻었고 신처럼 용맹한 전사들을 기리는 작품을 만들었다
금과 권력
금은 켈트인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었다. 토속적인 금공예품들은 켈트인이 다른 보석을 수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금 토크는 권력을 표현한 최고의 상징이있다. 금깃은 초사스러운 마차 무덤에 묻힌 모든 족장들의 무덤에서 발
견되고 있으며 이들 족장들은 대부분 단검으로 무장 돼 있고, 오른팔에는 금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화려하게 장
식한 청동팔찌, 틀히 금팔찌는 오랫동안 신분이 높은 전사계급이 신분을 과시하는 물건으로 사용한 것처럼 보인
다. 또한 종종 술을 담은 단지와 그것을 마시는 데 쓰인 금잔따위가 함꼐 묻혔는데 이런 호화로운 물건들은 대개
군주나 족장이 평소에 쓰던 것들이었다.
술에대한 기호
새롭게 시작된 남쪽과의 교역을 통해 켈트인들은 포도주를 받아들였다. 덕분에 그때까지 포토주가 뭔지 몰랐던
알프스 산맥 북쪽 사람들은 중요한 문화적 영향을 받게 된다.
켈트인들은 포도주를 좋아하게 되었고, 이는 곧 지중해 세계와 교역을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포도주는 농
축된 상태로 암포라에 담아 운반 했는데, 이들 항아리들은 주거 유적지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술병들을 포함
한 그리스와 에트루리아의 주연용 식기들은 군주들의 축제나 장례식에서 술과 함께 어우러져 그 분위기를 더해
주었다 .
참고문헌. 시공사 켈트족 고대유럽의 정복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