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대륙의 동서 문화교류는 3대 교통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즉 , 대륙의 북부를 동서로 잇는 초원길, 그 남부의 중앙 아시아를 통과하는
비단길(사막길), 그리고 남방의 바다를 이용하는 바닷길이 그것이다.
특히 초원길은 유라시아 대륙 북부의 삼림과 남부의 사막 사이에는 스텝이라고
하는 초원이 동서에 넓게 벨트(belt)모양으로 펼쳐져 있는것을 말한다.
목초지로 알맞은 이 초원은 옛날부터 유목,기마민족의 활약무대였다. 새와 짐승을 그림
으로 나타낸 스키타이 양식이라고 알려진 스키타이의 조형미술은 오리엔트나 그리이스의
영향을 받아 뒤이어 중국으로 전달되었다. 스키타이인의 활약은 기원전 7 ~ 3세기 경이었
는데, 그후에도 여러 기마민족이 뒤를 이어 번영하여 대륙을 동서로 이어 주었고, 13세기
에는 칭기스칸(1167 ~ 1227)의 몽고대제국이 이 일대를 병합하였다. 중세말에는 유럽으로
부터 여행자들이 몽고제국의 수도인 캐라코룸을 방문하여 유럽세계에 동방의 문화를
전해 준 최초의 여행기를 남긴 것도 이 루트를 통해서 였다.
※ 초원길 ( Steppe Road , Steppe Way , Steppe Route ) 북 아시아의 통로
·유럽 ~ 남러시아 초원 ~ 키르키즈 초원 ~ 몽고 고원 ~ 동아시아
·선사시대 부터 유목민이 개척
·스키타이 족의 활동(기원전 6~3세기) - 청동기와 기마 문화 전파
·흉노족의 활동 - 유럽에 이동하여 게르만족의 이동 초래
·몽골의 유럽 원정
·흑해의 동북부에서 몽고에 이르는 북위 50°를 가로지르는 무역로
·스키타이 족의 금속문명이 몽고를 통해 북중국에 전파시킨 길
·훈족의 이동 - 게르만족의 이동 초래, 유목 민족의 활발한 통상활동
※ 사막길(비단길)
·유럽 ~ 소아시아 ~ 서아시아 ~ 이란고원·중앙아시아 ~ 파미르고원ㆍ타림분지 ~ 동아시아
·북위 40°를 따라 텐산 남북로에서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를 거쳐
바그다드를 지나 지중해에 이르는 대상들의 활동로
·대승불교와 간다라 미술의 유입
·동서 무역권을 연결하는 가장 짧은 통로
·마르코 폴로와 여러 색목인 왕래
※ 바닷길
·유럽 ~ 지중해 ~ 서아시아 ~ 페르시아만·홍해 ~ 남아시아 ~ 남중국해 ~ 동아시아
·알렉산드리아로부터 홍해와 아라비아 해를 거쳐 인도로 가서
말라카 해협을 지나 중국의 광저우까지 이르는 길
·불교·힌두교·이슬람교가 동남아시아에 전파
·아라비아 상인(8세기 이후) → 중국 상인(9세기) → 이슬람 상인
→ 유럽인(16세기 이후) : 바닷길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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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민족들이 신석기시대부터 쓰던 동서양교류통로를 의미합니다.
말을 타고 가서 서로 접촉하기 쉬운 초원길을 선호하였고 이게 후로 가서는 비단길,
즉 실크로드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초원길을 최초로 쓴 때는 석기시대... 석기시대
중에서도 신석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는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출토되는
여러 유물들로서 확인되죠. 학자들도 옛부터 동서양 교류가 있었다고 하는 것은 정설이고,
또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초원길은 주로 중앙아시아를 통하는데, 초원길로 보는 예가 하나만 들자면 언젠가
중앙아시아에서 출토된 석기유물이 있습니다. 이 석기유물은 당시 사냥같은 것을 할
때 매우 유용하게 쓰인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성분을 분석해 보니 한반도나
일본열도에서 건너온 것이었습니다. 즉 이것을 가지고 한반도나 일본열도에서
거기까지의 교류통로가 있었다는 것이고 이를 초원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예로 편두가 있겠는데, 역사스페셜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편두라는 것은 변한이나 진한쪽에서 아이가 태어났을 때 머리를 누르는 풍습이죠.
최치원이 살던 신라시대 때도 이런 것이 있어서 '신라왕(본문에는 거매금)의 편두는
존귀함의 상징이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를 봐서 한반도에서 편두를 했다는 것과
또 1976년 경남 김해군 예안리, 즉 옛 가야지방에서 출토된 것을 보아도 200여구의
유골 중에서 10여구의 여성유골에 편두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보면 '어린아이가 출생하면 돌로 머리를 눌러 납작하게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지금도 진한 사람의 머리는 모두 납작하다.'라고 쓰여져 있죠.
이런 편두는 헝가리, 이집트 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심지허
마야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를 기마민족들의 문화라고 생각한다면 그 문화적
세력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초원길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신석기시대 쯤 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옛부터 기마민족들의 교류가 얼마나 활발했는지 알 수 있죠. 그리고 이
초원길은 교류의 길로 쓰이기도 하지만, 훈족, 몽골족등의 친입루트가 되기도 합니다.
즉 교류의 길과 전쟁의 길 등으로 여러모로 쓰인 셈이죠....
-- 출처 : 네이버 지식검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