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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법 대전을 완성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작성자김영달|작성시간05.07.27|조회수1,789 목록 댓글 4

-一世 Justinianus 482?∼565 비잔틴 황제(527∼565). 유고슬라비아 니시근교 타우레시움 출생. 소년시절에 콘스탄티노플의 근위군사령관이던 숙부 유스티누스 1세의 양자로 들어가 교육을 받았다. 성장하여 군인의 길을 택했다가 518년 숙부가 황제로 선출된 뒤 정계로 전신(轉身)하였다. 그 후 집정관·육군원수·부황제로 순조롭게 승진하면서 연로한 숙부를 도왔다. 숙부가 사망한 뒤 명실상부한 황제로 군림하였다. 18년간의 치세 동안에 많은 공적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로마법대전(法大全)》의 편찬, 옛 서로마제국 서방령의 탈환, 정통신앙의 확립이 두드러진다. 법학자 트리보니아누스에게 로마법의 개정·재편을 명하여 ① 하드리아누스황제 이후의 칙법(勅法)을 다시 정리, 편집한 《칙법집(유스티니아누스법전, 12권, 529년)》 ② A. 파피니아누스·J. 파울루스·우르바누스 등의 고전법학자들의 여러 학설들을 정리해 현행법으로서 사용이 가능한 형태로 재편집한 《학설집(50권, 533년)》 ③ 법률학교용 교과서로 만들어진 《법학제요(法學提要, 4권, 533년)》, 그리고 여기에다 유스티니아누스법전 이후 565년까지의 칙법 158편을 모은 《신칙법》을 더하여 4개의 법률전집을 편찬하였다. 이어 그는 옛 로마제국의 부흥을 위한 서방 대원정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 534년 북아프리카의 반달왕국, 554년 에스파냐의 서고트왕국 일부, 555년 이탈리아의 동고트왕국을 다시 제국의 영토로 만들었다. 그는 격렬했던 전대(前代)의 그리스도교 정통·이단논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다시 니케아 신경(信經)을 정통으로 재확인하고, 로마교회와의 우호관계 유지를 확인하기 위해 553년 제 5 차 공의회(公議會)를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하였다. 이때 그리스도 단성설(單性說)을 주장하는 동방속령(東方屬領)과의 타협을 도모하기 위해 네스토리우스파의 혐의가 있는 3주교의 학설을 거부해 삼장논쟁(三章論爭)까지 야기시켰다. 그는 이교배척에도 열심이어서 529년 이교도 학자들이 모여 있던 아테네철학원의 폐쇄를 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통신앙 확립의 움직임은 이집트의 콥트교회, 아르메니아교회, 시리아의 야고보파 교회가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의 감독을 피하여 동방분리교회로서 독립해 나가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내정에서는 여러 해에 걸친 전쟁과 그 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무거운 세금, 그리고 이교·이단에 대한 억압정치 때문에 시민들 사이에 불만이 많았다. 수도에서는 그 불만이 폭발하여 532년 <니카의 반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황비 테오도라, 장군 벨리사리오스의 도움으로 이 폭동을 진압하였고, 그 후 이 난으로 타서 무너진 하기아소피아의 재건, 대궁전 증축 등 국내 각지에서 왕성한 건축활동을 전개하였다. 또 중앙아시아로부터 명주의 생산방법을 도입하고 이를 국영산업화해 상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등 안정된 정권을 유지하였다. 또 이를 배경으로 그의 치하는, 역사가 프로코피오스·말랄라스, 신학자 시메온, 동방의 성프란체스코라고 불렸던 수도사 요하네스모스코스 등 다수의 학자·문인·역사가·신학자가 나온 문예 융성기였다.

 

 
 
사진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정식명칭은 로마법대전)입니다..
 
□ 로마법대전(Corpus Juris Civilis)

유스티니아누스제(帝)가 편찬 ·발포한 모든 법령을 통틀어 일컫는 이름이다. 533년부터 황제가 사망할 때까지의 칙령을 집성한 것의 총칭이며, 전(全) 로마법의 총결산이자 로마법 계수(繼受)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즉위하자마자 로마법을 구성하는 복잡한 황제입법과 학설들을 체계적이고 이해하기 쉽도록 감소시키려고 마음먹었다. 이 목적을 위해 그는 일단 제정되면 이전의 모든 법령을 대체할 제국 법령의 공식편찬인 법전을 만들기 위해 528년에 Tribonian과 Theophilus에 의해 지도되는 위원회를 임명했다.

종래 법학자의 저작물 2,000여 권 중 15만 행을 골라 50권으로 엮은 《학설휘찬(學說彙纂):Digesta》, 초학자를 위한 《법학제요(法學提要):Institutiones》, 구래(舊來)의 칙령에서 골라 12권으로 집성한 《칙법휘찬(勅法彙纂):Codex》, 534년부터 158가지의 칙령을 모은 《신칙법(新勅法):Novellae》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들이 로마법대전으로 불리게 된 것은 17세기 《교회법대전(敎會法大全):Corpus Juris Canonici》의 예를 본떠서 명명(命名)하였기 때문이다.
#성소피아 성당
 유스티니아누스는 또한 위대한 건축 활동가로서, 특히 이시도로스나 안티미오스 등 당대의 으뜸가는 건축가를 발탁하여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성소피아 성당을 세웠다. 이런 일체의 활동에서 유스티니아누스를 인도한 것은, 신으로부터 지상의 모든 일을 위탁받아 최고의 권력자로서 행동한다고 하는 그리스도교적 은총황제로서의 이념이었다
 

성소피아 성당 (HAGIA_SOPHIA)의 사진입니다. 많은 분들이 성소피아 성당 사진을 찾아 들어오시드라고요. 외국 사이트 검색 중 찾은 것입니다.

성소피아 성당 외부

↑ 성소피아 성당 외부 모습

성소피아성당 내부 메인 돔 모양

↑ 성소피아성당 내부 메인 돔 모양

 

성소피아 성당 내부, 북쪽면

성소피아 성당 내부, 서쪽면

↑ 성소피아 성당 내부, 북쪽면

↑ 성소피아 성당 내부, 서쪽면

 

*비잔틴 제국의 중흥기는 역시 업적으로 보나 위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 였다고 볼수 있겠습니다..그가 죽은 뒤에는 잦은 이민족의 침입으로 영토가 줄고 결국에는 오스만제국에게 멸망당했습니다..사진으로 보는 바와 같이 성소피아 성당은 비잔틴 건축의 정수라 할수 있답니다.

자료는 야후와 네이버 검색해서 알아봤습니다..많은 도움 되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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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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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영문과04김경섭 | 작성시간 05.03.11 이 자료는 오늘 수업시간에 나간거네요?ㅋㅋㅋ 글이 너무 작아서 눈이 아프지만;; 그래도 정말 유익한 정보 감사해요 ㅋㅋ
  • 작성자곽현희 | 작성시간 05.03.11 성 소피아 성당.. 멋있습니다^^
  • 작성자화학공학 01 이재준 | 작성시간 05.03.11 역시 이름을 잘 지어야...유스때부터 튀었으니...^^;
  • 작성자김낙중 | 작성시간 05.03.12 성 소피아성당 말루만 듣다가 사진을 통해 첨으루 보내여~~ 솔직히 멋있는건 잘 모르겠고 독특하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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