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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쿠르고스

작성자추장훈93|작성시간05.12.11|조회수109 목록 댓글 0

BC 7세기 경에 활동한 고대 스파르타의 입법자.

고대 스파르타 제도의 대부분을 제정했다고 한다.

그가 실존인물인지 아닌지, 또 실존인물이라 하더라도 어떤 제도들을 기초(起草)했는지는 아직까지도 확실하지 않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고대 자료 가운데 처음으로 그를 언급한 것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BC 5세기)의 작품이다. 스파르타의 왕은 대대로 에우리폰 가문과 아기스 가문에서 1명씩 뽑혀 2명의 왕이 공동 통치를 했는데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리쿠르고스는 아기스 왕가 출신이었다 한다. 헤로도토스 시대의 스파르타인들은 리쿠르고스가 크레타 섬의 법률에서 영감을 받아 제도를 개혁했다고 주장했다. BC 4세기 전반에 활동한 역사가 크세노폰은 도리스족이 라코니아를 침략(BC 1000경)해 원주민 아카이아인을 헬로트(노예)로 삼은 직후 리쿠르고스가 스파르타의 제도를 기초했다고 여긴 듯하다.

그뒤 BC 4세기 중엽 사람들은 리쿠르고스가 에우리폰 가문의 일원으로 같은 집안 출신의 왕 카릴로스의 섭정이었다고 널리 믿었다. 이에 바탕을 두어 헬레니즘 시대의 학자들은 그를 BC 9세기의 인물로 추정했다. 그리스 전기작가 플루타르코스(AD 1~2세기)는 〈리쿠르고스의 삶 Life of Lycurgus〉에서 리쿠르고스의 경력에 대해 널리 떠돌던 이야기들을 조각조각 모아 써놓았다. 여기에는 리쿠르고스의 이집트 여행이 적혀 있으며 그가 호메로스의 시들을 스파르타에 소개했다고 나와 있다.

BC 400년 이전의 작가들이 리쿠르고스에 관해 각자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던 것을 고려해 현대의 몇몇 학자들은 리쿠르고스가 실제 인물이 아니었다고 여기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정치·사회 제도를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고안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음을 학자들은 지적한다. 그러나 한편 많은 역사가들은, BC 7세기 후반에 일어난 스파르타의 반란 이후 스파르타에서 행해진 과감한 개혁이 리쿠르고스라는 인물과 연관이 있었을 것이라고 여긴다. 이 설에 따르면 리쿠르고스는 또다른 노예반란을 방지하기 위해 고도로 군사화한 공동사회조직을 고안해냈고 이 제도는 스파르타의 독특한 기질을 형성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견해가 정확한 것이라면 스파르타의 전통적인 2개의 통치기관, 게루시아(왕 2명을 포함한 원로들의 회의)와 아펠라(민회)를 설치한 것도 리쿠르고스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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