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각으로 보는 것보다 다른 시각으로도 봐야 역사도 미래도 발전이 있다고 생각해 역사 상식인 마녀사냥의 희생자로 알려진 잔다르크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바라 보았습니다.
먼저 일반적인 잔다르크의 일생입니다.
잔 다르크 는 프랑스의 동레미라퓌셀의 농가에서 태어났고
1429년의 어느 날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음성을 듣고 루아르 강변의 시농성(城)에 있는 샤를 황태자(뒷날의 샤를 7세)를 방문하였다. 당시의 프랑스는 북반부를 영국군 및 영국에 협력하는 부르고뉴파(派) 군대가 점령하고 있었고, 프랑스의 왕위도 1420년의 트루아의 조약에 따라 샤를 6세 사후에는 영국왕 헨리 5세가, 또 그의 사후에는 그의 아들 헨리 6세가 계승하도록 되어 있어, 황태자 샤를은 제외되어 있는 형편이었다.
영국군을 격파하여 오를레앙을 해방시킨 데 이어 각지에서 영국군을 무찔렀다. 흰 갑주에 흰 옷을 입고 선두에 서서 지휘하는 잔 다르크의 모습만 보고도 영국군은 도망하였다. 이리하여 그 해 5월 상순, 영국군은 오를레앙에서 완전히 패퇴하였다. 랭스까지 진격한 잔 다르크는 이곳 성당에서 전통적인 전례에 따라 샤를 7세의 대관식(戴冠式)을 거행토록 하였다.
이에 샤를 7세는 영국의 헨리 6세에 앞서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잔 다르크에 대한 왕의 측근들의 질시와 선망 속에서도 잔 다르크는 더욱 충성을 하였다. 1430년 5월 콩피에뉴 전투에서 부르고뉴파 군사에게 사로잡혀 영국군에게 넘겨졌다. 1431년, 재판에서 마녀로 낙인 찍혀, 이단(異端) 선고를 받고 루앙에서 화형을 당하였다. 뒤에 샤를 7세는 앞서의 유죄판결을 파기(1456), 명예를 회복시켰고, 가톨릭교회에서는 1920년 그녀를 성녀로 시성(諡聖)하였다.
<오를레앙전투>
출생지인 로렌의 동레미(현재의 보주州 동레미 라 퓌셀)를 떠나서 1429년 2월 초, 황태자 샤를이 본진을 둔 시농성시(城市)에 모습을 나타낼 때까지 잔 다르크의 동정은 불분명한 점이 많다. 부근의 성시 보쿨뢰르의 수비대장 로베르는 파리의 왕정부로부터 샹파뉴의 쇼몽대관직을 수여받은 숙부의 대리를 맡아 동레미마을의 재판영주로 있었다. 잔다르크의 아버지 자크는 마을의 소송대리인으로서 로베르법정에 나온 적도 있는 마을의 유력자였으며 잔 다르크는 로베르를 따르고 있었다. 로베르는 형식상으로는 황태자 샤를과 대적하고 있는 파리의 왕정부(영국과 프랑스 왕을 칭하는 어린 왕 헨리 6세의 섭정 베드퍼드의 정부)의 관리였지만 사실은 샤를의 편이었다. 전국(戰局)의 초점은 1429년 루아르강 중류의 오를레앙시 공방(攻防)에 있었다. 영국은 이곳을 함락하면 점령지 노르망디와 귀엔을 연결시킬 수가 있었다.
한편 황태자로서는 이곳을 빼앗기면 루아르강 유역으로부터 훨씬 남쪽으로 후퇴해야 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존망의 위기에 선 황태자 앞에, 그를 구하라는 신의 명령을 받았다는 소녀가 나타났다. 황태자는 잔 다르크의 뜻을 받아들여 오를레앙수비대에 참가시켰다. 신앙의 열정이 넘치고 관행에 얽매임 없이 전투를 지휘하는 잔 다르크는 병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잔 다르크가 이끄는 창소대(槍小隊)는 날이 저물어도 전투를 계속하여 마침내 영국군의 요새 하나를 함락시켰다. 이것이 전세를 크게 바꾸어 그 해 5월초, 영국군은 오를레앙에서 물러갔다. 오를레앙전투가 끝난 뒤에 잔 다르크는 랭스에서 거행된 샤를 7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고, 북프랑스의 모든 도시를 차례로 방문하는 <왕의 순행>에, 발루아왕가의 <신의 증인>으로서 화려한 의상을 걸치고 동행하였다.
<이단의 성녀>
1430년 5월, 잔 다르크는 당시 영국에 협력하고 있던 북프랑스의 콩피에뉴교의 부르고뉴파(派) 군대에게 사로잡혀 영국왕이 몸값을 지불, 노르망디 루앙성에 유치되었다. 샤를은 침묵을 지켰다. 파리대학 신학과는 잔 다르크가 이단이라는 혐의를 걸어 프랑스왕국 종교재판관에 의한 종교재판을 요청했고 영국왕가측도 이에 동의하여 법정에 신병을 인도하였다. 재판은 31년 2월 21일을 첫날로 해서 14회의 심리를 거듭했다. 이단혐의의 근거는 교회 성직자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직접 신적 존재와 접촉했다고 주장한 일에 있었다. 종교재판관의 심문은 잔 다르크의 주장이 매일 보던 신적 존재의 화상(畵像)에서 촉발된 심리적 착각에서 나온 것임을 논증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만약 잔 다르크가 이를 인정한다면 그녀의 죄는 성상숭경(聖像崇敬)이라고 하는 단순한 신앙의 미혹에 지나지 않고, 이단으로서의 의심도 없어지는 것이었다. 법정은 잔 다르크를 구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소녀의 단순하고 순수한 신앙심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같은 해 5월 28일 아침, 잔 다르크는 이단으로 선고받아 루앙광장에서 영국왕가의 루앙대관에게 신병이 인도되었고, 대관은 이단에 대한 관행대로 그녀를 화형에 처하였다. 로마교황청은 이 루앙의 판결을 아직도 취소하지 않은 가운데 1920년 잔 다르크를 성녀로 추서함으로써 잔 다르크는 이단으로서 성녀가 되었다.
전반적인 내용은 알고있는 대로 어려울때 잔다르크가 나타나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지만
위기에서 벗어나자 화형을 시켰다는 잔다르크의 일대기 입니다.
다음은 잔다르크가 화형당하지 않았다는 시각입니다.
(그림설명: 신의 계시를 받고 나라를 구한 잔 다르크)
| 15세기 프랑스 시골 오를레앙에서 신의 계시를 받고 패망 직전의 나라를 구하고 마녀로 모함 받아 화형당한 프랑스 최고의 영웅이며 성녀인 잔 다르크가 신의 계시를 받은 적이 없고 문맹의 시골 처녀가 아니며 화형당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하는 책이 출간돼 었다. 영국 가디언지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의 사건 추적 저널리스트인 마르셀 게이와 옛 비밀정보국 요원인 로저 센지그가 공동 출간한 책 '잔 다르크 사건(L'Affaire Jeanne d'Arc)'에 잔 다르크가 화형당하지 않았고 형장에서 영국 군인들에게 풀려나 도주한 후 결혼해 여생을 잘 살았다고 주장해 프랑스 역사가들의 비난을 받았다. |
(그림설명: 샤를르 6세의 왕비 바바리아의 이사벨)
| 작가들은 잔 다르크가 오를레앙에서 군대를 지휘해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고 전투에 나선 문맹의 시골 처녀가 아니라 프랑스 샤를르 6세의 왕비 '바바리아의 이사벨'과 오를레앙의 루이스 공작 사이에 태어난 숨겨진 딸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잔 다르크가 당시 정치인들의 조종을 받아 이들의 '버진 오퍼레이션' 이라는 비밀 작전에 계획적으로 투입돼 꼭두각시처럼 영웅적인 지휘관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기술했다. 또한 잔 다르크는 문맹자가 아니고 어려서부터 군사학과 전술 그리고 각종 언어 등 고급 전문 교육을 받았으며 1431년 화형 당시 영국 군인들을 영어로 설득해 그들이 잔 다크를 풀어주었고 그녀 대신 다른 여인이 말뚝에 묶여 화형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 후 잔 다르크는 프랑스의 기사 로버트 데스 아르모이세스와 결혼해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며 사를르 7세와는 이복 오누이 사이이고 우리가 지금까지 잔 다르크에 대해 학교에서 배운 모든 것은 틀렸다고 말했다. |
(그림설명: 마녀사냥에 재물이 된 잔 다르크)
|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프랑스의 역사가들은 분노하며 현재까지 20,000권이상의 책들과 50편에 가까운 영화, 게임 등 세계에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영웅을 역사가도 아닌 사람들이 역사 사실을 이처럼 치욕스럽게 왜곡하는 것은 다빈치 코드류의 음모이론 흥행에 편승하는 불성실한 작태라고 비난했다. 최근 잔 다르크 영화를 감독한 유명한 작가 마리-베로니크 클린은 잔 다르크가 아직도 대단히 중요한 표상이라며 잔 다르크가 화형당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또한 오를레앙의 잔 다르크 센터 소장이며 중세연구가인 올리비에 보우지 역시 과거에 이 같은 주장들이 100번은 축출됐다며 이런 사람들은 당시를 규명하려고 중세 시대정신을 이해하려는 역사가들이 아니라고 말했다. |
(그림설명: 프랑스의 영웅 잔 다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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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세기를 내려오면서 잔 다르크는 프랑스인의 숭배 대상이고 애국적인 순교자의 상징으로 끊임없이 추앙되고 있는데 왜 새삼스럽게 이런 주장이 오늘날 재연되는 것일까? 과연 잔 다르크는 작가들 주장대로 왕족이며 화형을 당하지도 않았고 기사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을까?
잔다르크가 화형을 당하였든 그렇지 않았든 잔다르크는 시대의 영웅이였고 애국자이며 존경받을만하다. 잔다르크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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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르크의 알려진 일생출처 :
[인터넷] http://www.tgedu.net/student/tfowor/HTML/TEXT/JU118.html과 두산백과사전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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