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교도와의 싸움에 막 떠나고 있는 샤를마뉴대제.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프랑스에서는 남부의 연애시인 트루바두르에 대하여 북부의 음유시인을 투르베르라 하며, 그 문학은 샤를마뉴대제를 중심으로 하는 계열을 비롯하여 여러 계열로 분류할 수 있으나 사라센인과의 전투를 주제로 하는 것이 많다. <롤랑의 노래>는 현존하는 무훈시 중 최대의 걸작으로 프랑스 봉건제도의 이상인 기사의 영웅적 행위를 찬양하기 위하여 쓰여진 것으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서기 778년 샤를마뉴대제는 에스파냐의 사라센족과 큰 전투를 벌인다. 승승장구 끝에 사르고스의 마르실왕과의 싸움만 남았다. 위기에 처한 마르실왕은 거짓 화평을 청하고 롤랑의 계부 가늘롱을 사신으로 파견한다. 그러나 롤랑을 미워하던 가늘롱은 롤랑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롤랑이 자신을 사신으로 보냈다고 오해하고 간계를 꾸민다. 거짓 평화조약을 맺고 돌아온 가늘롱은 샤를마뉴대제에게 후위군 책임자로 롤랑을 천거하고 샤를마뉴대제의 군대가 철수한 틈을 타서 롤랑의 군대를 공격한다. 롤랑은 용감히 싸웠지만 중과부적으로 최후의 순간에 원군을 청하는 뿔피리를 분다. 뿔피리소리를 들은 샤를마뉴대제가 군대를 돌려 싸움터에 도착했을 때에는 모두 죽은 뒤였다." 샤를마뉴대제의 용맹과 롤랑의 충성은 <롤랑의 노래>로 인해 당시 사람들의 도덕적 규범이자 살아있는 신화가 되었다. 영주들은 샤를마뉴대제의 지략과 용맹을 배웠고 신하들과 병사들은 롤랑의 충성을 최고의 명예로 받들었다. 그리고 농노들은 유랑시인들이 들려주는 롤랑의 노래를 듣고 충성과 헌신과 복종이 최고의 명예임을 알고 묵묵히 쟁기질을 하러갔다. 물론 롤랑의 노래에는 당시 하층민들의 애환과 즐거움, 병사들의 고통과 참담함도 절절히 묻어있지만 명예와 신앙으로 귀결되는 지배이념이 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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