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중세사 게시판

Re: 보티첼리의 그림들

작성자52 임채성|작성시간05.10.01|조회수651 목록 댓글 0

 

 

마르스와 비너스

 

르네승스 문화 전반의 패턴이라고도 말해지는 미디치가(家)를 중심으로 고전 문학자들의 분위기를 충분히 흡수했던 보티첼리는, 바로 그 분위기를 그림으로 발현시킨 가장 대표적인 화가였다. 그는 당시 피렌체를 풍미했던 사실주의에는 깊이 빠지지 않았고 일종의 애수가 어린 [독자적 시정과 곡선의 묘미를 장식적인 화면구성 속에 살린 독특한 미의 세계]를 창조했다.

이 작품에서도 보티첼리의 특질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제작 연대에는 여러 설이 있어 일정치 않고, 본시 어디에 있었는지도 명백치 않다. 모델에 대해서는 줄리아노 메디치와 시모네타를 그린 것이 아니냐는 견해가 있으나, 역시 아무런 근거가 없다. 1865년경 무렵에 알렉산더 바커가 피렌체엣 구입했던 것을 1874년에 현재의 소장처인 런던 회화관이 입수했다.

 


 

복음서의 율법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유혹


 

비너스의 탄생

 

<봄>과 더불어 보티첼리의 최대 걸작의 하나이다. 메디치가문의 별장에서 한 쌍을 이루고 있던 것으로, 다만 <봄>이 초기의 자연을 탐구하던 시기에 속하였는데 반해, <비너스의 탄생>은 보티첼리의 절정기에 그려진 작품이다.

화면의 주제는 역시 폴리치아노의 시 <라 지오스트라>중에서 그리스 화가 아펠레스의 잃어버린 명화를 노래하고 있는 대목을 취급했다고 말해지고 있으며, 아울러 피렌체 사람들이 애석해 하는 가운데 아리따운 나이로 죽은 [아름다운 시모네타]를 생각하고 그렸다고도 한다. 화면의 전개는, 지중해의 깨끗한 물거품에서 태어난 나체의 여신이 바람의 신에게 부드럽게 밀려져 요정이 옷을 들고 기다리는 해안에까지 다다른 장면이다. 그러나, 이 비너스의 자채는 아름다운 몸매를 자연의 것으로서 순진난만하게 자랑케 한 고대 그리스의 미의 여신 그것이 아니다. 이미 부끄러움을 알게 된 젊은 여성이 빨리 숨기를 바라면서도 자신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살짝 보여주려고 서 있는 듯한 자태이다

 


 

성모대관


 

세 동방박사의 경배

 

당시의 피렌체는 쾌락과 환락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다 못한 수도자, 사보나롤라는 축제의 풍습을 경배와 자비의 풍습으로 바꿔 보티첼리는 그를 몹시 흠모했다고 한다. 그러나 점차 사보나롤라는 외면당하고 결국 피렌체 한복판에서 화형을 당했다. 사보나롤라의 죽음 이후 보티첼리는 의욕을 잃고 마지막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

이것은 현재 영국 국립미술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보티첼리가 서명을 남긴 유일한 그림이기도 하다. 그리고 보티첼리는 이렇게 적었다.

"나, 알렉산드로는 이탈리아가 혼돈에 빠진 시기에 이 그림을 그렸다... 악마는 3년 반 동안이나 준동했다. 언젠가 악마에게는 사슬이 채워질 것이다. 그떄 우리는 천사의 힘에 짓눌린 악마를 이 그림에서 보게 될 것이다."

 

수태고지

 

이 그림은 1870년에 보르고 핀치에 있는 산타 마리아 막달레나 데 파치 수녀원 소속의 피에조레 지구 별장 안의 예배당에서 발견되어 2년 후인 1872년에 우피치 미술관에 옮겨졌다. 16세기의 미술가 전기작가 바사리가 체스텔로의 수도원 예배당 제단화로서 보티첼리가 그렸다고 기록한 그림이 바로 이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그래서 제작 시기도 그 예배당이 세워지던 때인 1489~90년으로 보고 있다.

역시 보티첼리의 독특한 감미로운 애조가 충만한 이 작품에는 불의의 방문자인 천사를 맞아 책을 읽다 말고 몸을 천사 쪽으로 돌리고 있는 마리아가 그려져 있다. 수태를 알리는 천사의 얼굴과 손의 표정에는 엄숙한 신의가 나타나 있고, 거기에 이끌려 마리아도 두 손을 내밀고 있다. 풍부한 곡선으로 형상되고 있는 두 인물의 자태는 배경의 수직 벽면과 문 빛 지면의 직선 교차와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고, 문 밖의 아름다운 원경은 실내의 극적 장면의 긴장감을 한결 부드럽게 해줄 뿐 아니라, 정서적인 분위기마저 조성시키는 효과를 주고 있다.

 

 

아테나와 켄타우로스

 

도끼모양의 길다란 창을 손에 가진 지혜와 전쟁의 여신 팔라스가 화살집을 둘러메고 오른손에 활을 쥐고 폭력과 무지를 상징하는 반인 반마인 켄타우로스의 머리털을 부드럽게 거머잡고 있는 광경이다. 팔라스는 뭔가 생각에 잠긴 우아한 표정을 짓고 있고, 그녀의 옷에는 메디치 가문이 사용한 다이아몬드 문양이 들어 있으며 감람나무 가지가 얽혀 있다. 반면, 켄타우로스는 슬픈표정에다 겁을 집어먹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 그림은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 디 피에르 프란체스코를 위해 그려진 것으로 말해지고 있고, 19세기 중엽에 피티궁에 들어갔다가 1922년 이래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왔다. 제작 연도는 로렌초가 나폴리왕으로 하여금 피렌체 시민에게 적대하지 않도록 설득에 성공한뒤,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귀국한 1480년 설과 메디치 가문이 더욱 확고한 정치적 기반을 굳히는 1486년 설이 있다. 그러나 작품 양식으로 미루어 이 화가가 시스티나 예배당 벽화를 그린 뒤에 로마에서 피렌체로 돌아간 직후인 1482~83년 무렵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한편 이 작품은 메디치 가문의 정치적 승리의 상징설 외에 이성(팔라스)이 본능(켄타우로스)을 제어 한다는 도덕적 내면이 상징되어 있다는 해석도 있다.


 

젊은 남자의 초상


 

프리마베라 (봄)

 

바사리의 <이탈리아 미술가 열전>은 메디치 가문의 코지모 대공 별장에 보티첼리의 그림이 2점 있는데, 하나는 <비너스의 탄생>이고 또 하나는 <봄>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또한 16세기 초의 한 무명 전기작가도 지오반니 데 메디치 멜 반데 네레의 별장에 보티첼리의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여러 점 있었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 별장의 1598년과 1638년의 재산 목록에도 보티첼리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음이 밝혀져 있다.

이상과 같이 과거의 소장처 기록이 확실한 보티첼리의 이 <봄>과 <비너스의 탄생>은 1815년에 이르러 우피치 미술관에 들어간 후에 한때 아카데미로 옮겨진 적이 있으나, 1919년에 다시 우피치로 되돌아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작 연대와 동기에 대해서는 역시 여러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1475년 기마 경연대회 우승자였던 줄리아노 데 메디치와 그의 애인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사랑을 축복한 시인 안젤로 폴리치아노의 고전적 상징시 <라지오스트라>를 1476년 무렵에 회화화 한것으로 말해지고 있다.

꽃이 만발한 피에조레의 저녁놀이 긋든 솦속에 사랑의 신 큐피드를 거느린 미의 여신 비너스를 화면 중앙에 설정하고, 왼쪽에는 막대를 치켜들어 이슬을 털어내리는, 주로 신들의 사자로 등장하는 헤르메스를 선두로 엷은 옷을 걸친 미의 여신들, 그리고 오른쪽에는 온몸을 꽃으로 장식한 봄의 여신과 그 듸로 꽃의 여신이 바람의 신에 떠밀리며 나타나고 있다. 보티첼리 특유의 감미롭고 섬세한 곡선의 리듬이 최대로 발휘한 걸작이다. 정적한 청색조의 숲속 분위기와 여신들의 투명한 색조의 아름다움이 아주 잘 조화되어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