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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사 게시판

미켈란 젤로의 피에타

작성자김정년34|작성시간05.10.02|조회수924 목록 댓글 0

미켈란젤로 <피에타>, 1499, 대리석, 높이 174㎝,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

 

  미켈란 젤로의 조각작품중 그가 종교에 대한 경의를 나타낸 여러 작품이 있는데 그중 그의 신앙세계를 알아볼 수 있는 작품중 피에타 상을 3작품 조각하고 있다. 조각 제작 연도 별로 보면서, 그의 피에타 상에는 미켈란 젤로 자신의 당시 심정과 세월이 흘러 가면서 그의 종교관의 변화, 그리고 그의 인생의 깊이가 그대로 피에타상에 스며 든 듯 하다. 마지막 미완의 작품인 피에타 상은 인생의 모든 희노애락을 겪은 노 예술가의 종교로의 귀의를 담고 있는 모습이다. 그의 첫번째 피에타 상중 베드로 대성당에 전시 되있는 위의 피에타 상은 마리아의 섬세한 옷주름과 죽은 예수의 시신의 축 늘어진 근육묘사는 대리석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사실적인 묘사의 단계로 이끌었다. 24세였던 미켈란젤로도 자신이 이룬 기술의 완성에 만족한 듯 하다. 수많은 그의 작품들이 미완성으로 끝나고, 모두 서명이 없는데, 이 작품에만 그가 싸인을 남겼다는 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싸인은 마리아의 가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띄에 새겨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세부묘사는 사실적이지만 구조나 도상은 임의의 설정이 우선적으로 적용되었다. 이 작품은 피라밋형의 안정된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미켈란젤로는 이 안정감을 만들기 위해 마리아의 어깨와 치마폭을 좀 더 넓게 잡고 있다.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무릎에 앉혀놓는 자세는 중세부터 내려온 도상인데,  이와 더불어 마리아는 33살의 아들이 있는 어머니이기보다 수태고지를 받던 10대의 소녀 나이다.  순결한 성처녀 마리아를 강조한 도상이라 할 수 있다. 1494년 로마에 체제하며 피렌체로 돌아가기전 에 만든 이작품은 그가 습득한 고전적인 조각 기법의 완성도를 보여 주는 것이다.

미켈란젤로 <피에타>, 1546-55년경, 대리석, 높이:233, 피렌체, 두오모박물관

 

  말년의 미켈란젤로는 누구로부터 주문을 받지 않고, 자신을 위한 피에타상들을 작하였다위의 두번째 <피에타>  그의 나이 70세쯤에 자기무덤에 놓기 위해 만든 것이다. 또한 미완성이지만 종래의 피에타 도상과는 전혀 다른  <피에타> 구성은 그의 종교관을 짐작케 한다.

양쪽의 마리아가 시체를 부축이고 있지만 시신은 그들에게 의존하지 않는 미끄러져 내리는 듯하다. 그리고 그의 뒤에 있는 거대한 니코데모는 마치 건물의 도움과 같이 그를 보호하며 얼굴엔 미켈란젤로 자신의 자화상을 새겨놓았다. 니코데모는 원래 예수를 비난한 율법학자들과 같은 유대인이었으나 모험을 무릎 쓰고 예수의 무덤을 제공한 사람이다.  그의 존재를 이렇게 크게, 그리고 그의 얼굴엔 자신의 모습을 새긴 미켈란젤로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학자들은 카톨릭세계에 있었던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개혁적인 성향을 이렇게 나타낸 것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 개혁성향의 람들을 다시 탄압하던 1555년경 그가 상을 부수려 했던 행동은 이를 반증하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론다니니 피에타 , 1552-64년경 , 대리석 , 높이 195, 밀라노 스포르체스코성

 

  일명 <론다니니 피에타>라고 부르는 또 다른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죽기 며칠 전까지 붙들고 있던 작품이다. 시신은 길게 늘려있고 예수를 부축해야할 마라아는 오히려 시신에 얹혀있는 듯 불안정하다.

죽음이 가까운 시기에 만든 이 <피에타>는 그 청년기에 만든 바티칸 소장의 <피에타>와 너무나 큰 대조를 보인다. 아름다운 균형과 완전한 기법은 모두 사라지고 절절한 간구만이 남았다. 그러나 이 피에타는 무르익던 르네상스 시내가 가고, 종교개혁과 반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을 마감하던 미켈란젤로가 구원을 갈구하는 참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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