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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사 게시판

유럽 중세 시대 기사의 생활과 로맨스.

작성자박준형 38|작성시간05.10.09|조회수688 목록 댓글 0

기사는 왕에게 토지를 받는 대신에 왕을 도와야 했다. 기사는 그들이 싸우는 데 필요한 기술을 배우는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기사의 시종이나 하인은 종자라고 불렸다. 그의 일은 말과 무기를 돌보는 것이다. 어떤 종자들은 나중에 기사가 될 좋은 출신의 소년이었다.

기사는 마상 창경기에 나가야 했는데, 그곳은 그들의 전투 기술을 시험하기 가장 좋은 장소이다.

마상 창경기는 항상 중요 영주나 주교 앞에서 열렸으며 기사를 보기 위해 많은 군중이 몰렸다.

 

 

중세 기사의 전투 차림새

 

평화시에도 기사들의 화려한 마상 시합을 벌여 전쟁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옆의 상아제 경판에 그려진 정경은 마상 창 싸움, 1 대 1경기이다. 오른쪽과 왼쪽의 기사에게 귀부인이 무구를 입히고 있다. 중앙 양쪽의 두 기사는 맹렬히 말을 달리면서 서로 연습용 창을 겨누어 상대방을 안장에서 떨어뜨리려 하고 있다. 초기에 용기를 시험하기 위해 취해진 방법은 좀 더 인간미가 없는 것이었다. 형태로는  혼전 즉 두 패의 기사단이 뒤섞여 별이는 유혈의 난투였다. 어떤 대대적인 모의전에서는 3,000명의 기사가 프랑스 시골의 넓은 포도밭을 쑥밭으로 만들었다.

중세 기사들의 마상 시합↑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색슨족 보병을 공격하고 있는 노르만 기사들. 기사들은 말에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들의 발을 등자에 넣고 있다. 색슨족 보병은 이 Bayeux 테피스트리에서 보다시피 전투도끼를 사용하고 있다. 이 전투에서 노르만이 승리함으로써 잉글랜드 왕국이 세워졌다.

 

중세 기사의 실제 전투 장면↑

 

 

 

우아한 기사와 은밀한 로맨스

기사는 자기의 성과 자기 아내에 대한 절대적인 주인이었다. 대개의 귀부인은 자기 처지에 분개하여 궁정풍 연재라는 새 생각을 품었는데, 이것은 12세기에 각지를 여행하는 음유 시인에 의해 번졌다. 이 연애 예찬의 기풍은 남편의 예절을 세련시키게 되어 결국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켰으며, 동시에 부부 쌍방이 남녀 관계를 경시하는 경향을 낳았다.

궁정풍 연애는 기사와 그가 선택한 귀부인과의 관계를 찬미하는 것으로서, 이 경우 귀부인이란 아내 이외의 여성을 뜻한다. 그 규칙은 연인들이 곧잘 즐긴 격식을 갖춘 정원(오른쪽)처럼 빈틈없이 짜여져 있고, 그렇게 해야 했다. 관례에 의하면 로맨틱한 기사한 명랑하고 열렬하며 비밀을 지키고 은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귀부인이 아무리 오랜동안 호의를 보이지 않더라도 구애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리히텐시타인의 울리히라는 끈기있는 기사는 의중의 귀부인이 면회를 승낙할 때까지 10년이나 구애를 계속했다고 한다.

<위쪽 그림>

사랑의 정원에서 몇 쌍의 기사와 귀부인이 음유 시인의 노래에 맞춰 흥에 들떠 있다. 가사는 노골적으로 구애하는 것이었다.

"몸도 마음도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사랑으로 나를 품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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