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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사 게시판

중세시대 만들어진 성들

작성자97서희정|작성시간05.12.08|조회수1,457 목록 댓글 0




영국의 엑튼 버넬 성

 


웨일즈의 뷰마리스 성



카스틸 왕국의 마나사레스 성

 

 

브론리 성

 

브론리 성 내부의 계단

 


카에르필리 성: 13세기 영국에서 두 번째로 컸던 성 (넓이 3만 6천평)


카에르필리 성 안의 그레이트 홀



칼디콧 성


중세시대에는 수많은 봉건영주들이 자신들의 영지에서 왕처럼 군림하면서
지냈고, 전쟁이 빈번하였기 때문에 전시를 대비하여 견고한 성을 짓고 그
안에서 거주하였습니다. 중세의 도시는 간단히 말해 영주가 살고 있는 성과
그 주변에 의사.변호사. 상인등이 거주하고 그 둘레에 성곽을 친 형태 입니다.
성 한채의 축조비용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68억원정도가 필요했습니다.
영주들의 성은 방어를 위해 고지대에 쌓았고 보통 위급시를 대비해 탈출구가
따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물론 영주의 성이라고 해서 모두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듯이 웅장하고 멋들어진 모양은 아니었습니다.
성의 크기는 그 성에 거주하는 영주의 세력을 나타내는 척도로 볼 수 있습니다.
성의 축조는 보통 초빙한 전문가의 지시에 따라 영지의 농노들이 담당했습
니다. 농노들은 일주일동안 일요일을 빼고 3일을 영주에게 무료봉사 해야했
습니다.
성벽의 방어기능은 15세기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투르크의 메메르2세에게
함락당하면서 운명을 같이 했습니다.



동로마제국(비잔티움)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
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방어력이 높은 성이었습니다.
성벽이 3중으로 되어있어 역사상 그 누구도 콘스탄티노플의 3중성벽을
뚫지 못했습니다. (7차 십자군 원정때 불의의 기습으로 함락된 적은 있지만;;)
그러던 콘스탄티노플이 결국 메메르2세에게 함락당했는데,
메메르2세는 당시 몽고제국에 의해 전래된 대포를 활용해 성벽을 무너뜨렸
습니다. 당시의 성벽축조기술은 맨땅위에 돌을 높게 쌓는 방법이었습니다.
이 것은 기존의 공성전(사람이 달려들어서 사다리를 타고 넘는)에서는
효력이 있었지만 대포의 화력앞에서는 맥을 못추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성벽은 낮고 두껍게 쌓는 형태로 변합니다.
그리고 땅을 깊이 파서 땅속부터 돌을 쌓았습니다.
그래서 15세기 이후의 유럽의 성벽은 보통 낮고 두껍습니다.(우리나라의
수원화성도 비슷한 축조 방식입니다)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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