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노사의 굴욕
주교 서임권을 둘러싼 황제와 교황과의 싸움에서 교황이 승리, 교황권의 정점을 상징한 사건이다. 전통적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주교와 대주교 등의 임명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1076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이에 반발하였으며 특히 신성로마제국 내에서 내분이 일어난 것을 기회로 황제 하인리히 4세와 서임권을 둘러싸고 충돌, 파문과 폐위선언으로 서로 대립하였으나, 77년 역대 황제들의 집권정책에 불만을 가진 제후들이 파문이 취소되지 않을 경우 왕을 폐위키로 결의함으로써 하인리히는 일대 위기를 맞게 되었다. 자신이 폐위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하인리히는 같은 해 북(北)이탈리아의 카노사성(城)에 체재 중인 교황을 방문, 카노사성 밖의 눈 속에서 3일간 서서 굴욕적으로 사면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교황은 독일 제후(諸侯)와 동맹할 수 있는 호기(好機)를 놓치게 된 반면, 황제는 시간을 벌게 되어, 실리(實利)면에서 황제의 정치적 승리로 평가되고 있다. 즉, 지방의 반란 제후들을 진압하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를 로마에서 추출하였다. 그뒤 그이 아들 하인리히 5세는 보름스 협약을 통해 교황과의 서임권 투쟁을 종식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