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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사 게시판

프레스코 벽화

작성자20서시원|작성시간05.12.05|조회수285 목록 댓글 0

 

그리스도의 십자가강하 벽화에는 프레스코와 세코가 있다
프레스코 (fresco)는 이탈리아어로 '신선한'이라는 의미이다. 영어의 프레쉬 (fresh)와 같은 뜻이다. 석회와 모래를 섞어서 벽에 초벌칠을 하고, 그것이 마르기 전에 수성물감으로 그리기 때문에 안료가 벽면에 스며들어 그 위에 회색의 각막이 생기면서 고정된다. 유성 페인트처럼 여러 번 덧칠을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단숨에 빨리 그려야 한다. 농담의 흘림을 만드는 것이 무척 어려운 기술이다.

일부분씩 완성해 나가는 어려움
프레스코의 제일 큰 어려움은 넓은 벽면을 지극히 일부분씩 순차적으로 완성해 나가야 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미리 실물 크기의 종이에다 밑그림을 그려 놓는다. 그리고 밑그림의 윤곽에 따라 송곳으로 퐁퐁 구멍을 뚫어 놓는다. 부분적으로 초벌 칠을 하자마자 곧 밑그림의 종이를 그 자리에 대고 탄 가루를 뿌리든가 해서 구멍의 점선을 벽면에 옮긴다. 마음에 안들었을 대는 그 부분의 칠을 모두 긁어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초벌칠과 물감을 바른 정도에 따라서 나중에 균열이 생기는 수도 잇다. 시스티나 에배당에서 넓고 큰 프레스코를 그린 미켈란젤로는 균열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바티칸의 법왕궁 (현재는 박물관)에 라파엘로의 유명한 프레스코가 있는데 그는 여러 제자를 거느리고 공동제작을 시도했다. 무엇이든 혼자 자기 손으로 하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은 미켈란젤로 같은 고고한 예술가는 프레스코 분야에서 특히 대단히 힘이 들었을 것이다.

프레스코의 유래
프레스코의 기원은 멀리 기원전 15세기가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 귀족의 묘에 이미 그 예가 있다. 에트루리아의 묘, 폼페이 초기 기독교 교도의 묘 (카타콤베) 등에도 벽화는 프레스코 기법이 쓰였다.
그후 비탄틴 양식의 모자이크에 눌려 프레스코는 시들해졌지만, 13세기 이탈리아의 티마베 근처에서 다시 융성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16세기까지가 황금기였으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많은 걸작품이 태어났다. 17세기경부터 유성 페인트의 편리함과 표현력의 다양함에 밀려났다가 20세기에 들어와서 그 매력을 다시 찾게 되었다. 그리고 프레스코의 기법이 부활했다. 
프레스코 기법으로는 아직도 뚜렷하면서도 가늘게 뻗은 선이나 섬세한 점은 그릴 수 없다. 그 때문에 전체를 프레스코로 마무리한 다음에 장신구, 의상의 무늬, 꽃 등을 세코로 겹쳐서 그린 예가 있다. 옆에서 보면 그 쪽만 튀어나왔거나 칠의 광택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프레스코의 물감은 전통적인 인물화의 물감과 본질적으로 같지만, 색의 종류가 극히 제한되어 있어서 강렬하고 선명한 색깔은 내지 못한다. 담백한 맛이 있을 뿐이다. 기법상에서도 프레스코는 다분히 묵화 치는 것과 통하는 데가 있다. 프레스코가 동양인의 감성에 호소해 오는 것도 그런 점에 있다.

프레스코 벽화 보기
갈라테이아의 승리 : 라파엘로 그림. 1514년경 프레스코화 295x225 cm. 은행가 아고스티노 키지의 별장 (현재 로마의 파르네지나 궁)에 그린 벽화
그리스도의 십자가 강하 : 로렌체티의 그림. 프레스코화. 1337년작.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 소장. 성화 주제로  그리스도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리는 성화이다.
복음서의 율법을 전하는 그리스도 : 보티첼리 그림. 프레스코화. 바티칸 시국의 시스티나 성당 소장.
수태고지 : 기를란다요 그림. 프레스코화. 1486~90년.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소장.
시스티나 성당 천장벽화 : 이탈리아 바티칸 시스티나성당. 1508∼1512년 미켈란젤로의 성당 천장 프레스코화
크노소스궁전 벽화 (날뛰는 황소) : 프레스코화로 그리스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 소장. 내부의 벽이나 천정  대부분은 궁정풍속 ·동식물 ·새·물고기 등을 그린 회화로 장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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