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 동맹 측과 오스만 측이 1571년 10월 7일 파트라 만에서 벌인 레판토 해전은 신성 동맹측의 대승으로 끝나 지중해의 세력 판도를 바
꾸어 놓은 역사적인 해전입니다.신성 동맹측의 총사령관은 황제 카를 5세의 아들인 젊은 제독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Juan De Austria,
1547 - 1578 . 10. 1]였으며, 신성 동맹 측 전선 규모는 갤리 선 206척 , 훗날 조카딸이 무라트 2세의 황후가 되는 베네치아 도제 제바스
티안 베니에르(지휘권 박탈)가 가지고 온 갤리스(가장 큰 활약을 하게 되는 대형 범선으로 대포를 약 20문 가량 싣습니다) 6척이 주력이
었습니다.
오스만이 사이프러스 섬을 빼앗자 , 서지중해로의 진출을 두려워한 신성동맹은 교황의 명으로 코린트만으로 진격,오스만 해군을 공
격하여 ,레판토 해전이 개시되었습니다. 레판토 해전은 갤리 선의 사용 원리를 가장 잘 반영한 전쟁이기도 한데 , 갤리 선이 가득 바다를
메워 해전이라기보다는 육전에 가까운 엄청난 육탄전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갤리 선(17세기 중반의 그림)
반면 오스만 군의 총사령관은 널리 알려진 알리파샤[Ali Pasha]이며 , 전선은 갤리선 230척(경갤리 포함)과 60척의 갤리오트( : 갤리에
속하는 배로써, 축약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갤리 선보다 가볍고 , 이동력이 빠릅니다)였습니다. 병력 면에서 오스만 군이 우세였지만
결과는 송곳처럼 기함으로 돌진하여 갤리스의 캐논포를 마구 쏘아대는 신성동맹측의 기세에 순식간에 눌려 총사령관을 잃은 오스만의
대패.스페인 보병들에게 당한 알리 파샤는 아우스트리아의 기함 돛대에 목이 걸렸으며 , 좌익 사령관인 샤르크 메메트 역시 전사하고 ,
우익 사령관인 해적 우르크 알리는 수많은 전사자를 내고 내빼 버렸습니다.
신성 동맹 측이 15척의 갤리 선을 잃고 30척이 파손된 반면, 오스만 함대는 180척의 갤리 선이 침몰 혹은 반파되고, 갤리오트는 열 척을
빼고 모두 잃었으며 , 3만 명의 군사들이 전사하고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신성 동맹 측의 전사자는 겨우 9천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는
지중해의 제해권 판도를 뒤바꿔 놓은 대해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네이버 카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