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중세음악은 성악이었다. 악기는 매우 다양한 종류가 있었으나, 대부분 반주로 사용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필사본에는 어떤 악기로 연주할 것인가를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림이나 문학 작품 속의 설명을 통해서만 대충 어떤 악기를 사용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약 1100년이 지나면서 악기들이 점차 교회 안에서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오르간이 가장 주요한 악기였다. 처음에는 오르간 키를 손으로 세게 눌러서 작동시키는 아주 원시적인 악기였다. 그 소리는 무척 컸으므로 몇 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점차 오르간은 복잡한 다성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한 악기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레고리오 성가
천 년이 넘는 동안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음악은 그레고리오 성가인데 이것은 라틴어를 사용한 단선율 성가로 반주 없이 불려지는 노래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들은 예전의식의 여러 부분들을 고양시키려는 목적으로 이용되었고, 따라서 이것은 특정 기도와 예배의식 절차를 고양시키거나 엄숙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수세기 동안 많은 작곡가들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들을 기초로 해서 새로운 곡들을 썼다. 1962~65년까지 열린 제2차 바티칸 회의 이래로 대부분의 로마 가톨릭 예배가 각 나라마다의 자국어로 거행됨으로써 오늘날 그레고리오 성가는 예전만큼 자주 불려지지 않는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리듬은 박자가 없이 물이 흐르는 듯해서 박자의 느낌이 없다. 선율은 가사의 성격과 의미에 의존하기 때문에 단순하면서도 정교하다. 어떤 것은 한 음이 계속 반복되는 낭송음(recitations)에 가깝고, 어떤 것은 복잡한 선율 굴곡을 갖기도 한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교황 그레고리 1세의 이름을 따른 것인데, 그가 590~604년까지의 통치 기간에 가톨릭 의전을 재편성한다.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수많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처음부터 새롭게 창조해 냈다는 전실이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지만 실제로 그레고리오 성가는 수세기에 걸쳐 발전된 것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들 중에서 시편송(psalm singing)과 같은 몇몇 실제들은 기원후 1세기 유대교 예배인 시나고그(synagogoue)에서 유래한 것이며, 수 천에 달하는 그레고리오 성가들 중 나머지 대부분은 600~1300년까지 만들어진 것이다.
교회선법
그레고리오 성가에 사용되는 음계들을 우리는 교회선법(church mode)이라 부른다. 장음계 또는 단음계와 마찬가지로 교회선법은 7개의 서로 다른 음계와 제 1음을 옥타브 위에 중복하는 8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회선법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에 서양 음악의 기본이 되는 음악이었고, 종교음악에서 뿐만 아니라 세속음악에서도 사용되었다. 서양음악의 많은 민속음악에서도 교회선법들의 패턴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다성 음악의 발전 - 오르가눔
수세기 동안 서양음악은 기본적으로 단 한 개의 선율을 갖는 단성음악 이었으나, 대략 700~900년 사이에 서양음악은 결정적으로 변화단계에 이른다. 수도원 성가대에 속해 있던 승려들이 그레고리오 성가에다 제 2의 새로운 선율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두 번째 선율이 기보되지 않고 즉흥연주로 연주되었으며, 이것은 성가 선율을 다른 음높이로 중복하는 형태를 띠었다. 두 개의 선율은 4도나 5도의 음정으로 병 진행하거나 음 대 음의 단음절 양식으로 되어 있다.
기존의 그레고리오 성가와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새로 추가된 선율로 이루어진 중세음악을 오르가눔(organum)이라 부른다. 900~1200년 사이에 오르가눔은 점차로 추가된 선율이 조금씩 독립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오르가눔은 처음에 새로운 성부가 기존 성가의 성부에 대해 엄격하게 병행 진행되는 형태에서 좀더 자유롭게 움직이는 형태로 발전했다. 이 발전 형태에서 새로운 선율이 기존 성가에 대해 반대 진행의 움직임을 가지기도 했다. 가령 원래의 선율이 아래로 움직일 때 이것은 위로 움직였다. 새롭게 붙여진 두 번째 선율은 1100년경에 이르러 더욱 독립적으로 되는데, 더 이상 음 대 음의 양식에 제한을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두 개의 선율들이 선율적으로 뿐만 아니라 리듬적으로도 서로 모습을 달리했다. 이때 맨 아래의 기존 성가는 매우 긴 음가로 움직인 반면, 상성부의 추가된 선율은 보다 짧은 음가로 움직였다. 때때로 기존 성가의 음들은 너무나도 느리게 움직여 마치 지속음과도 같은 성격을 띠었기 때문에, 원 선율의 모습을 식별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레고리오 성가는 교회의 권위를 상징했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교회에 대한 존중심이 지대했기 때문에 수세기 동안 대부분의 다성음악은 새로운 선율을 기초로 그 위에 새로운 선율들을 올려놓는 식으로 음악을 만들었다.
노트르담 악파
1150년 이후 유럽의 지적, 예술적 중심지였던 파리가 다성음악의 중심지가 되었다. 파리 대학은 당시 유명했던 각지의 학자들을 끌어들였고, 노트르담 성당은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노트르담 성당의 성가대 감독을 맡았던 레오냉과 페로탱은 서양음악사에서 이름이 알려진 최초의 음악가다. 이들과 그 제자들은 '노트르담 악파'라는 명칭으로 불려진다.
1170년경~1200년까지 노트르담의 작곡가들은 리듬의 개혁을 일으켰다. 초기의 다성 음악은 그레고리오 성가와 마찬가지로 자유롭고 마디가 없는 리듬으로 연주되었음에 반해, 레오냉과 페로탱의 음악은 명확한 기가와 명확한 박자를 갖는 일정한 리듬을 사용했다. 이것은 서양음악에서 최초로 음높이뿐만 아니라 리듬을 정확하게 기보할 수 있게 된 혁신적인 변화였다. 처음에는 새로운 기보법이 단지 몇 개의 리듬 패턴에 국한되었고, 박도 셋으로만 나누어야 했으나, 이러한 제도에도 불구하고 많은 훌륭한 다성음악들이 12세기 말과 13세기에 작곡되었다.
요즘 사람들이 들으면 중세 다성음악은 텅 비고 얇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당시의 음악이 상대적으로 3화음을 적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3화음을 이루는 3도 음정은 이후에 협화음으로 인정을 받게 되지만, 중세 음악 이론가들은 이것을 불협화 음정으로 간주했다.그러나 중세에도 시간이 진전됨에 따라 3화음과 3도 음정이 점점 빈번히 사용되게 됨으로써, 점차적으로 꽉 차고 풍부한 소리를 갖추게 된다.
14세기는 여러 가지 점에서 대분열의 시대였다. 14세기는 백년전쟁(1337~1453)과 흑사병 - 1350년을 전후로 유럽 인구의 4분의 1을 희생시켰던 역병 - 으로 시달렸을 뿐 아니라, 봉건제도와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었다. 1378~1417년까지 두 명의 서로 적대적이던 교황이 각기 정통성을 주장했고, 한때는 세 명의 교황까지도 있었다. 신앙심이 돈독했던 기독교 신자조차 마음이 혼란해진 시대였다.
이 시대의 문학 작품은 덕성과 천상의 구원보다는 생생한 사실주의와 세속적 관능을 더 강조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4세기 세속음악이 종교음악보다 중요했음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작곡들은 그레고리오 성가에 기초하지 않은 다성음악을 즐겨 사용했다. 새로운 기보 체계가 발전함에 따라 작곡가들은 리듬 패턴을 자유롭게 사용했고, 박을 셋으로 뿐 아니라 둘로 나누는 것이 허용되었다. 14세기 음악 양식은 당시 사람들에게 커다란 변화를 주었기 때문에 음악 이론가들은 당시의 프랑스 음악과 이탈리아 음악을 '새로운 음악'이라 불렀다. 14세기 음악의 예로 프랑스의 주도적인 작곡가 마쇼의 미사곡에 대해 살펴보자.
기욤 드 마쇼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 1300~77)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유명한 음악가이며 시인이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고 서품까지 받은 신부였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궁정 관리인으로서 여러 왕가를 모시며 보냈다. 마쇼는 여러 궁정을 여행하면서 귀족이나 후원인들에게 자신이 작곡한 필사본을 선물로 주곤 했는데, 이 필사본들로 인해 그는 오늘날 작품이 전해지는 위대한 작곡가들 중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14세기에 가장 잘 알려진 곡의 하나인 '노트르담 미사'를 살펴보자
마쇼의 <노트르담 미사(Messe de Notre Dame)>는 중세 때 작곡된 대표적인 아름다운 곡 중 하나다. 이 곡은 또한 작곡자의 이름이 알려진 최초의 통상부 다성음악이라는 음악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노트르담 미사는 4성부로 작곡되어 있는데, 이 중 일부는 악기로 연주하거나 노래와 악기를 함께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마쇼가 어떤 식으로, 어떤 악기를 사용해서 연주하기를 원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마쇼의 미사곡 중 '천주의 어린 양'은 경건하고 정교하다. 3박자로 되어 있고 복잡한 리듬 패턴을 사용하고 있다. 위의 두 성부는 리듬이 활달하고 당김음을 사용하고 있어 14세기 음악의 전통적인 특성을 이룬다. 아래 성부는 악기로 연주했을 것이고, 위의 나머지 3성부는 소리로 부르고 때로는 악기로 중복해서 연주했을 가능성이 높다.
'천주의 어린 양'은 기존의 단성 그레고리오 성가를 재료로 해서 새롭게 만든 것으로, 이처럼 재료로 사용된 기존 선율을 정선율이라 부른다.
미사는 교회의식의 중심인데, 그리스도가 떡과 포도주를 떼어 자신의 몸과 피를 희생의 제물로 드리는 최후의 만찬에서 유래한 것이다.
미사는 통상부 미사와 특별 미사가 있는데, 통상부 미사(Orfinarium missae)는 교회력에 의해 언제나 똑 같은 예배 가사를 사용한다. 키리에(Kyrie), 대영광송(Gloria), 사도신경(Credo), 거룩하시다(Sanctus), 천주의 어린양(Agnus Dei)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다섯 개의 예배 가사에 종종 다성음악을 붙여 불렀다. 이후 위대한 수많은 작곡가들이 통상부 예배 식문에 곡을 붙여 다성 합창곡을 만들었다. 각 시대마다 작곡가들은 고유한 양식으로 미사곡을 만들었는데, 마쇼의 미사곡은 초기의 예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료회력의 절기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미사의 절차 혹은 그 음악을 특별 미사(Proprium missae)라 하는데, 여기에 입당송(Introitus), 층계송(Gradual), 알렐루야(Alleluia), 봉헌송(Offertorium) 등이 있다.
알렐루야는 미사 고유문의 성가에 속해 있는데 그 이유는 이 부분의 가사가 절기와 축제의 종류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알렐루야는 언제나 멜리스마적인 양식을 가지고 있다.
특히 '알렐루야'라는 단어 부분에서는 끝 음절은 길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멜리스마를 가지며, 즐거운 성질 때문에 유빌루스라고 부른다. 이 멜리스마에 가사를 붙여서 후에 시퀀스(Sequence)가 생기게 된다.
시퀀스는 라틴어 'sequor(따르다, 다음에 오다)'에서 유래된 말로 처음에 단순히 성가를 연장시키는 방법으로 9세기경 성 갈렌의 수도승인 노트커 발부루스가 알렐루야 끝 부분의 긴 멜리스마(유빌루스)에 가사를 붙여 그 긴 선율을 기억하기 쉽게 하기 위한 방법에서 비롯되었다.
트로푸스는 평조곡의 일종으로 원래 미사(보통 미사, 특별 미사, 오피치움)에서 응답 형식과 교창 형식으로 부른 것인데, 그레고리오 성가에다 시적인 가사를 붙여 새롭게 작곡한 성가 선율을 말한다.
콘둑투스는 모든 성부들이 거의 똑 같은 리듬에 따라 수직 화음으로 움직여 오르가늠의 리듬보다는 간결한 느낌을 주었다. 13세기 초 그레고리 성가에 테너라는 새로운 선율을 작곡하여 제일 아래 성부에 가사를 붙여 사용했는데, 이것을 칸투스 피르무스(정선율)라고도 했다. 콘둑투스는 서양음악사에서 선율의 소재를 다른 곳에서 빌려오지 않고 완전히 독창적으로 작곡한 새로운 선율의 다성 음악 개념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다. 콘둑투스와 오르가눔은 모테트 생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자취를 감추게 된다.
모테트는 오르가눔이 발전하여 다성음악 형식으로 라틴어 가사를 쓰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교회 밖에서 세속적인 행사에서 불려지기도 했다. 13세기에는 각 성부의 가사를 다르게 사용하는 관습이 있었다. 예를 들면 하나는 라틴어, 다른 하나는 프랑스어 또는 둘 다 라틴어이거나 둘 다 프랑스어를 사용한 합창곡이었다.
영국의 존 던스터불에 의해 여러 가지 가사로 모테트가 불려지던 것을 각 성부가 같은 종교적인 가사로 부르도록 작곡했다. 이 행위는 다음 세대에서 가사 의미의 중요성과 화성적인 작곡법을 예견한 것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오르간이 가장 주요한 악기였다. 처음에는 오르간 키를 손으로 세게 눌러서 작동시키는 아주 원시적인 악기였다. 그 소리는 무척 컸으므로 몇 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점차 오르간은 복잡한 다성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한 악기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레고리오 성가
천 년이 넘는 동안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음악은 그레고리오 성가인데 이것은 라틴어를 사용한 단선율 성가로 반주 없이 불려지는 노래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들은 예전의식의 여러 부분들을 고양시키려는 목적으로 이용되었고, 따라서 이것은 특정 기도와 예배의식 절차를 고양시키거나 엄숙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수세기 동안 많은 작곡가들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들을 기초로 해서 새로운 곡들을 썼다. 1962~65년까지 열린 제2차 바티칸 회의 이래로 대부분의 로마 가톨릭 예배가 각 나라마다의 자국어로 거행됨으로써 오늘날 그레고리오 성가는 예전만큼 자주 불려지지 않는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리듬은 박자가 없이 물이 흐르는 듯해서 박자의 느낌이 없다. 선율은 가사의 성격과 의미에 의존하기 때문에 단순하면서도 정교하다. 어떤 것은 한 음이 계속 반복되는 낭송음(recitations)에 가깝고, 어떤 것은 복잡한 선율 굴곡을 갖기도 한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교황 그레고리 1세의 이름을 따른 것인데, 그가 590~604년까지의 통치 기간에 가톨릭 의전을 재편성한다.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수많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처음부터 새롭게 창조해 냈다는 전실이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지만 실제로 그레고리오 성가는 수세기에 걸쳐 발전된 것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들 중에서 시편송(psalm singing)과 같은 몇몇 실제들은 기원후 1세기 유대교 예배인 시나고그(synagogoue)에서 유래한 것이며, 수 천에 달하는 그레고리오 성가들 중 나머지 대부분은 600~1300년까지 만들어진 것이다.
교회선법
그레고리오 성가에 사용되는 음계들을 우리는 교회선법(church mode)이라 부른다. 장음계 또는 단음계와 마찬가지로 교회선법은 7개의 서로 다른 음계와 제 1음을 옥타브 위에 중복하는 8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회선법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에 서양 음악의 기본이 되는 음악이었고, 종교음악에서 뿐만 아니라 세속음악에서도 사용되었다. 서양음악의 많은 민속음악에서도 교회선법들의 패턴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다성 음악의 발전 - 오르가눔
수세기 동안 서양음악은 기본적으로 단 한 개의 선율을 갖는 단성음악 이었으나, 대략 700~900년 사이에 서양음악은 결정적으로 변화단계에 이른다. 수도원 성가대에 속해 있던 승려들이 그레고리오 성가에다 제 2의 새로운 선율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두 번째 선율이 기보되지 않고 즉흥연주로 연주되었으며, 이것은 성가 선율을 다른 음높이로 중복하는 형태를 띠었다. 두 개의 선율은 4도나 5도의 음정으로 병 진행하거나 음 대 음의 단음절 양식으로 되어 있다.
기존의 그레고리오 성가와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새로 추가된 선율로 이루어진 중세음악을 오르가눔(organum)이라 부른다. 900~1200년 사이에 오르가눔은 점차로 추가된 선율이 조금씩 독립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오르가눔은 처음에 새로운 성부가 기존 성가의 성부에 대해 엄격하게 병행 진행되는 형태에서 좀더 자유롭게 움직이는 형태로 발전했다. 이 발전 형태에서 새로운 선율이 기존 성가에 대해 반대 진행의 움직임을 가지기도 했다. 가령 원래의 선율이 아래로 움직일 때 이것은 위로 움직였다. 새롭게 붙여진 두 번째 선율은 1100년경에 이르러 더욱 독립적으로 되는데, 더 이상 음 대 음의 양식에 제한을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두 개의 선율들이 선율적으로 뿐만 아니라 리듬적으로도 서로 모습을 달리했다. 이때 맨 아래의 기존 성가는 매우 긴 음가로 움직인 반면, 상성부의 추가된 선율은 보다 짧은 음가로 움직였다. 때때로 기존 성가의 음들은 너무나도 느리게 움직여 마치 지속음과도 같은 성격을 띠었기 때문에, 원 선율의 모습을 식별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레고리오 성가는 교회의 권위를 상징했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교회에 대한 존중심이 지대했기 때문에 수세기 동안 대부분의 다성음악은 새로운 선율을 기초로 그 위에 새로운 선율들을 올려놓는 식으로 음악을 만들었다.
노트르담 악파
1150년 이후 유럽의 지적, 예술적 중심지였던 파리가 다성음악의 중심지가 되었다. 파리 대학은 당시 유명했던 각지의 학자들을 끌어들였고, 노트르담 성당은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노트르담 성당의 성가대 감독을 맡았던 레오냉과 페로탱은 서양음악사에서 이름이 알려진 최초의 음악가다. 이들과 그 제자들은 '노트르담 악파'라는 명칭으로 불려진다.
1170년경~1200년까지 노트르담의 작곡가들은 리듬의 개혁을 일으켰다. 초기의 다성 음악은 그레고리오 성가와 마찬가지로 자유롭고 마디가 없는 리듬으로 연주되었음에 반해, 레오냉과 페로탱의 음악은 명확한 기가와 명확한 박자를 갖는 일정한 리듬을 사용했다. 이것은 서양음악에서 최초로 음높이뿐만 아니라 리듬을 정확하게 기보할 수 있게 된 혁신적인 변화였다. 처음에는 새로운 기보법이 단지 몇 개의 리듬 패턴에 국한되었고, 박도 셋으로만 나누어야 했으나, 이러한 제도에도 불구하고 많은 훌륭한 다성음악들이 12세기 말과 13세기에 작곡되었다.
요즘 사람들이 들으면 중세 다성음악은 텅 비고 얇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당시의 음악이 상대적으로 3화음을 적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3화음을 이루는 3도 음정은 이후에 협화음으로 인정을 받게 되지만, 중세 음악 이론가들은 이것을 불협화 음정으로 간주했다.그러나 중세에도 시간이 진전됨에 따라 3화음과 3도 음정이 점점 빈번히 사용되게 됨으로써, 점차적으로 꽉 차고 풍부한 소리를 갖추게 된다.
14세기는 여러 가지 점에서 대분열의 시대였다. 14세기는 백년전쟁(1337~1453)과 흑사병 - 1350년을 전후로 유럽 인구의 4분의 1을 희생시켰던 역병 - 으로 시달렸을 뿐 아니라, 봉건제도와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었다. 1378~1417년까지 두 명의 서로 적대적이던 교황이 각기 정통성을 주장했고, 한때는 세 명의 교황까지도 있었다. 신앙심이 돈독했던 기독교 신자조차 마음이 혼란해진 시대였다.
이 시대의 문학 작품은 덕성과 천상의 구원보다는 생생한 사실주의와 세속적 관능을 더 강조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4세기 세속음악이 종교음악보다 중요했음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작곡들은 그레고리오 성가에 기초하지 않은 다성음악을 즐겨 사용했다. 새로운 기보 체계가 발전함에 따라 작곡가들은 리듬 패턴을 자유롭게 사용했고, 박을 셋으로 뿐 아니라 둘로 나누는 것이 허용되었다. 14세기 음악 양식은 당시 사람들에게 커다란 변화를 주었기 때문에 음악 이론가들은 당시의 프랑스 음악과 이탈리아 음악을 '새로운 음악'이라 불렀다. 14세기 음악의 예로 프랑스의 주도적인 작곡가 마쇼의 미사곡에 대해 살펴보자.
기욤 드 마쇼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 1300~77)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유명한 음악가이며 시인이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고 서품까지 받은 신부였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궁정 관리인으로서 여러 왕가를 모시며 보냈다. 마쇼는 여러 궁정을 여행하면서 귀족이나 후원인들에게 자신이 작곡한 필사본을 선물로 주곤 했는데, 이 필사본들로 인해 그는 오늘날 작품이 전해지는 위대한 작곡가들 중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14세기에 가장 잘 알려진 곡의 하나인 '노트르담 미사'를 살펴보자
마쇼의 <노트르담 미사(Messe de Notre Dame)>는 중세 때 작곡된 대표적인 아름다운 곡 중 하나다. 이 곡은 또한 작곡자의 이름이 알려진 최초의 통상부 다성음악이라는 음악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노트르담 미사는 4성부로 작곡되어 있는데, 이 중 일부는 악기로 연주하거나 노래와 악기를 함께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마쇼가 어떤 식으로, 어떤 악기를 사용해서 연주하기를 원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마쇼의 미사곡 중 '천주의 어린 양'은 경건하고 정교하다. 3박자로 되어 있고 복잡한 리듬 패턴을 사용하고 있다. 위의 두 성부는 리듬이 활달하고 당김음을 사용하고 있어 14세기 음악의 전통적인 특성을 이룬다. 아래 성부는 악기로 연주했을 것이고, 위의 나머지 3성부는 소리로 부르고 때로는 악기로 중복해서 연주했을 가능성이 높다.
'천주의 어린 양'은 기존의 단성 그레고리오 성가를 재료로 해서 새롭게 만든 것으로, 이처럼 재료로 사용된 기존 선율을 정선율이라 부른다.
미사는 교회의식의 중심인데, 그리스도가 떡과 포도주를 떼어 자신의 몸과 피를 희생의 제물로 드리는 최후의 만찬에서 유래한 것이다.
미사는 통상부 미사와 특별 미사가 있는데, 통상부 미사(Orfinarium missae)는 교회력에 의해 언제나 똑 같은 예배 가사를 사용한다. 키리에(Kyrie), 대영광송(Gloria), 사도신경(Credo), 거룩하시다(Sanctus), 천주의 어린양(Agnus Dei)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다섯 개의 예배 가사에 종종 다성음악을 붙여 불렀다. 이후 위대한 수많은 작곡가들이 통상부 예배 식문에 곡을 붙여 다성 합창곡을 만들었다. 각 시대마다 작곡가들은 고유한 양식으로 미사곡을 만들었는데, 마쇼의 미사곡은 초기의 예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료회력의 절기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미사의 절차 혹은 그 음악을 특별 미사(Proprium missae)라 하는데, 여기에 입당송(Introitus), 층계송(Gradual), 알렐루야(Alleluia), 봉헌송(Offertorium) 등이 있다.
알렐루야는 미사 고유문의 성가에 속해 있는데 그 이유는 이 부분의 가사가 절기와 축제의 종류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알렐루야는 언제나 멜리스마적인 양식을 가지고 있다.
특히 '알렐루야'라는 단어 부분에서는 끝 음절은 길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멜리스마를 가지며, 즐거운 성질 때문에 유빌루스라고 부른다. 이 멜리스마에 가사를 붙여서 후에 시퀀스(Sequence)가 생기게 된다.
시퀀스는 라틴어 'sequor(따르다, 다음에 오다)'에서 유래된 말로 처음에 단순히 성가를 연장시키는 방법으로 9세기경 성 갈렌의 수도승인 노트커 발부루스가 알렐루야 끝 부분의 긴 멜리스마(유빌루스)에 가사를 붙여 그 긴 선율을 기억하기 쉽게 하기 위한 방법에서 비롯되었다.
트로푸스는 평조곡의 일종으로 원래 미사(보통 미사, 특별 미사, 오피치움)에서 응답 형식과 교창 형식으로 부른 것인데, 그레고리오 성가에다 시적인 가사를 붙여 새롭게 작곡한 성가 선율을 말한다.
콘둑투스는 모든 성부들이 거의 똑 같은 리듬에 따라 수직 화음으로 움직여 오르가늠의 리듬보다는 간결한 느낌을 주었다. 13세기 초 그레고리 성가에 테너라는 새로운 선율을 작곡하여 제일 아래 성부에 가사를 붙여 사용했는데, 이것을 칸투스 피르무스(정선율)라고도 했다. 콘둑투스는 서양음악사에서 선율의 소재를 다른 곳에서 빌려오지 않고 완전히 독창적으로 작곡한 새로운 선율의 다성 음악 개념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다. 콘둑투스와 오르가눔은 모테트 생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자취를 감추게 된다.
모테트는 오르가눔이 발전하여 다성음악 형식으로 라틴어 가사를 쓰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교회 밖에서 세속적인 행사에서 불려지기도 했다. 13세기에는 각 성부의 가사를 다르게 사용하는 관습이 있었다. 예를 들면 하나는 라틴어, 다른 하나는 프랑스어 또는 둘 다 라틴어이거나 둘 다 프랑스어를 사용한 합창곡이었다.
영국의 존 던스터불에 의해 여러 가지 가사로 모테트가 불려지던 것을 각 성부가 같은 종교적인 가사로 부르도록 작곡했다. 이 행위는 다음 세대에서 가사 의미의 중요성과 화성적인 작곡법을 예견한 것이기도 했다.
| 내용출처 : [인터넷] http://www.polyphony.co.kr/lib/01_con.asp?id=29&page=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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