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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니아누스 대제 보충 : 유스티니아누스의 비 '테오도라'

작성자최정호75|작성시간05.12.11|조회수360 목록 댓글 0


성 비탈레 성당의 모자이크.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비였던 테오도라가 시녀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하고 있는 장면이다. 큰 키와 날씬한 체격 등 새로운 인간미의 이상을 보여준다.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여러 가지 면에서 대단한 통치자였다. 그의 치하에서 로마법이 편찬되었고, 동로마제국의 통치가 굳건하게 확립되었다. 그러나 그에게 테오도라라는 왕비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테오도라는 아름다웠던 것은 물론 지성과 담력과 강력한 의지까지 겸비하였던 서구의 사회에서 가장 능력이 많았던 여성 중의 한 사람이었다. 532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귀족과 평민들이 대형 경기장인 히포드롬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이른바 니카 폭동인데, 청색 팀과 녹색 팀으로 나뉘어 전차경기를 벌이다가 이들은 서로간에 경쟁을 그치고 황제에 대한 폭동에 가세했다. 이 폭동은 경기장에서 콘스탄티노플 전역으로 확대되었고, 수천명이 사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황제의 자리를 포기하고 도피할 생각을 했지만 "황제의 자주색 옷이야말로 영광스러운 수의"라고 말하며 황제에게 힘을 북돋아주었다. 황제는 고무되어 분산된 병력을 규합하여 강력하고 완전하게 폭동을 진압했다. 실로 테오도라가 없었더라면 유스티니아누스에게는 대제라는 별칭이 붙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왕비 테오도라에게 대한 당대의 기록은 악의에 찬 혹평으로 가득하다. 실로 테오도라는 서커스에서 곰을 조련시키던 집안 출신이었기 때문인데, 그 당시의 서커스는 음란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고, 매춘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할 부분들은 기록되지 않은 채, 과거를 들추어내는 일로 당시의 궁중 역사가인 프로코피우스의 <비밀의 역사>라는 것이 채워졌다는 것은 역사를 지배해온 남성들이 능력 많은 여성들에 대한 오래된 편견을 반영하는 또 다른 사례에 불과할지 모른다.

어쨌든 프로코피우스의 역사서에 대해 현대의 한 역사가는 "모든 글로 된 기록 중에서 아마도 가장 저열하고 가장 중상모략에 가득 찬 인격살해일 것"이라고 평가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출처-

http://home.knue.ac.kr/~hocho/board/wwwboard.cgi?

db=gallery2&mode=read&num=28&page=5&ftype=6&fval=&backdept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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