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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사 게시판

프레스터존의 전설의 진실

작성자김도연37|작성시간06.01.11|조회수1,479 목록 댓글 0
 

프레스터존의 전설 [Legend of Prester John]



12세기 독일 프라이징의 주교 B. 오토가 지었다는《연대기》<1145년>조에는 시리아의 한 주교의 보고를

바탕으로 하여 “네스토리우스파(派)의 그리스도교도로, 페르시아 ·아르메니아 동쪽에 대영토를 가진 왕이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려고 서진(西進)하여 에크바타나(하마단의 구칭)를 점령하였으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귀환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이 전설의 시초이다. 그런 다음 이 왕이 쓴 편지의

필사본이라고 하는 글이 유럽에 유포되었고, 또 왕의 사절이 도래하였다는 소문도 퍼졌다.

이것은 때마침 십자군 원정의 성과가 오르지 아니하여 유럽인들은 대항할 새로운 세력의 출현을 열망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또한 케레이트부(部), 즉 옛 몽골의 한 부족국가 키타이와 몽골 제국의 황실 내에

네리토리우스파 그리스도교도가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 등이 유럽에 이 전설을 유포시킨 요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리하여 동방 여행을 한 가톨릭 수사(修士)와 상인들은 프레스터 존의 실체를 탐색해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프란체스코회 수사 카르티니는 그는 곧 인도의 왕이라 하였고,

프란체스코회 선교사 W.von 로이즈브루크는 나이만부(部)의 족장(族長) 쿠칠루크[屈出律],

그리고 M.폴로는 케레이트부의 족장 온한(溫汗)이라고 각각 말하였으며, 또 이 전설의 왕은

칭기즈 칸이라는 설도 나왔다. 그 후 가톨릭 수도사를 중심으로 이 전설의 왕과 왕국의 실재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게 되었는데, 15∼16세기에 이르자 그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움직임이 같은

그리스도교도가 있는 에티오피아에서 일어났다. 그리하여 이같은 일련의 탐색작업은 유럽인의

아프리카 탐험의 원동력이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에티오피아는 ‘프레스터 존의 나라’라고 불리기도 한다.

 

다음은 케레이트부의 족장 온한(溫汗)에 대한 설명입니다.

원명은 토릴이며 케레이트 족의 칸이었습니다. 일곱살때 침입해 온 타타르족에게 붙잡혀 가 7년간을 노예로 지내다 다시 14살때 메르키트족에게 팔려가서 2년간 죽을 고생을 하다 16살이 되던 해, 메르키트족을 치러 온 몽골족 족장 예수게이(테무진의 아버지)에게 구출되었습니다. 토릴은 감격해 예수게이와 안다(의형제) 맹약을 맺고 자자손손에 이르기까지 서로 도울 것을 다짐하지요. 둘은 그 후에도 동맹관계를 유지해 갑니다.

예수게이의 보호를 받으며 고향인 케레이트 족에게로 돌아온 토릴은 그때부터 본격적인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데 아버지인 키리아쿠스칸을 몰아내고 칸위에 오른 삼촌과 다른 친척형제 40명을 모조리 죽인 다음, 예수게이의 힘을 빌려 케레이트의 칸이 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너무나 많이 사람을 죽여 인심을 잃게 되지요.

토릴칸은 냉혹하고 교활한 책략과 잔인한 무력을 사용해 케레이트족의 세력을 넓혀갔고 그 과정에서 서부 몽골 지역의 대국이던 나이만과 자주 충돌하게 됩니다. 특히 나이만의 칸이던 이난차 빌게칸과는 여러번 전쟁을 벌였죠. 그러나 어느 한쪽도 서로를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해 나중엔 어정쩡한 휴전 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주의할 점은 이 사람이 기독교도였느냐 하는 점인데 실제로 그가 기독교도였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토릴칸의 아버지가 기독교식 이름인 키리아쿠스라든지, 그의 할아버지가 마르쿠스(마르코)칸이라든지 하는 점들을 살펴본다면 당시 케레이트 족 내부에 상당한 기독교(네스토리우스파)가 유입되어 있었고 토릴 칸 역시 기독교도가 아니었는가 하고 추측해 볼만 합니다. 나중에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는 이런 점에서 토릴 칸이 유럽인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구세주 프레스터 존이라고 단언했죠.


하지만 토릴칸은 몽골 초원의 단일 패권을 잡는 것이 아닌 자기 세력 지키기에 급급한 나머지 결국 나중에 가선 테무진(칭기스칸)에게 기습을 당해 멸망하고 말지요.


그의 최후는 매우 비참했다고 합니다. 칭기스칸에게 쫓겨 정신없이 도망가다가 자신의 숙적이었던 나이만에 망명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하고 나이만 국경수비대에게 살해당해 그 목이 나이만의 칸인 타양칸에게 바쳐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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