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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복식

작성자임유리|작성시간05.07.27|조회수3,572 목록 댓글 0
르네상스의 복식

16세기 르네상스 (파팅게일,코르셋,메디치칼라)

 

16세기 르네상스 (러프칼라,코르셋,파팅게일)

16세기 르네상스 (더블릿,슬래시,보석)
자본의 축적과 더불어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중상 계급간에 계급의식은 한층 노골화되었다. 복식에 있어서도 고딕 양식의 단순하고 우아한 스타일과는 대조적으로 과장과 허식이 두드러진다. 새로 등장한 중산층인 상인들은 귀족사회를 동경해 귀족의 생활양식을 모방해 극단적인 화려함과 과장이 지속되었다.
이때 고전주의와 휴머니즘의 세속적인 관심은 화가들이 의상과 직물디자인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함으로써 페셀리노, 폴리올로, 자코포, 벨레네 등 화가들이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Ⅰ. 르네상스 복식의 사회·문화적 배경

서양복식사를 통해, 르네상스 시대부터 프랑스 혁명에 이르기까지의 사회적 배경은 인간생활의 풍성한 개화기를 생각하게 한다. 당시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종교 등 생활에 관한 많은 문제가 어우러져 복식문화를 자극하고, 복식은 일반인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집중시키는 대상으로서 하나의 모습을 형성했다.
십자군 전쟁이 실패로 끝나면서 교회는 더 이상 중세에서와 같이 절대적 존재로서 개인생활의 지침이 될 수는 없었다. 교회의 권위는 매우 약화되었고, 더욱이 중상주의(重商主義)가 발달함에 따라 세속적인 교회로 타락해 갔다. 따라서 14세기 말부터는 교회를 비판하는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16세기에는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와 켈빈(john calvin, 1509~1564)에 의해 종교개혁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겪는 동안 그 당시의 사람들은 감히 신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신중심의 생활에서 벗어나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중시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 시대의 예술활동은 인간을 위한 인간중심의 순수한 미의식의 회복을 추구한다는 창조적 목표를 가지고 그리스 로마의 예술양식을 모방하여 그대로 재현하려 했다. 또한 고딕에서 성행했던 종교적 감각의 문양과 문장이 사라지고, 천연의 꽃과 잎을 그대로 묘사하여 규칙적으로 배열하는 자연적 문양이 직물, 공예품, 장신구에 사용되었다.
그리스와 로마 의상의 본질인 인체의 아름다움을 살리고자 하는 노력은 르네상스 복식의 표면정신이 되어 인체미를 강조하는 에로티시즘이 나타나고 더불어 인체의 인위적인 과장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고딕 시대에는 몸의 곡선을 자연스럽게 나타내기 위해 몸에 편안하게 잘 맞는 의상을 착용했으나,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와서, 남자들은 남성미를 강조하기 위해 어깨와 소매, 가슴을 과도하게 부풀리고 여자들은 여성미를 선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목둘레선을 가슴 깊이 파고 허리를 가늘게 조였다. 허리를 더 가늘어 보이게 하기 위해 소매와 스커트를 부풀렸는데 이는 러프칼라와 리듬의 조화를 이루기도 했다.
실루엣의 과장은 16세기에 더욱 심해져 전성기 르네상스 양식을 이루게 된다. 코르 피케(corps-piqu`e)나 스터머커(stomacher) 등의 몸통을 졸라매는 콜셋과 스커트를 부풀리기 위한 파딩게일(farthingale) 등 육체미를 강조하는 인공물이 사용되어, 높은 러프 칼라와 함께 기괴한 외관을 보였다. 또한 남자들은 패드와 주름을 사용하여 체형을 과도하게 부풀림으로써 다리 부분을 제외하고는 인체의 선이 드러나지 않게 했다.
이와 같이 절대왕권의 기반이 확립되어 가고 경제적으로 융성해지자 귀족들과 부르주아 상인들은 그들의 권력과 재산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를 의상의 양감 및 외야의 화려함에서 찾으려 했다. 따라서 르세상스 시대의 의상은 과장된 실루엣 분 아니라 화려한 장식으로 복식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여자의 의복
16세기에 들어오자 당시 사람들은 가는 허리, 부풀린 스커트와 소매 등의 인위적인 강조에서 새로운 복식미와 모드의 본질을 발견하게 된다. 새로운 이들 요소는 근대 여자복식의 개념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즉, 르네상스 시대의 복식은 우아하고 품위있는 실루엣을 바탕으로 한 미(美)의 특징을 가진다.
가. 우플랑드 (houppelande)
우플랑드는 중세의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의상으로, 15세기 말에 로브가 출현할 때까지 실루엣을 변화시키면서 애용되었다. 이 옷은 헐렁한 몸체와 넓은 소매통, 그리고 소맷부리가 깔때기처럼 넓어지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가슴 밑에 장식적인 넓은 벨트를 하여 드레스 주름을 풍성하게 잡았고, 길이가 길어 앞자락은 들어올렸으나 뒤는 길게 늘어뜨렸다. 옷감은 화려한 무늬를 넣어 짠 실크나 울을 사용했고 소맷부리와 칼라는 모피로 장식하기도 했다. 15세기 말에 이르러 우플랑드는 기괴하던 소매모양이 정리되고 길이도 짧아져 평상복화되면서 로브(robe)로 변했다.
나. 로브 (robe)
가운(gown) 또는 드레스(dress)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으며 얼른 보기에 원피스 드레스 같지만 구성상 투
피스로 되어 있다. 상체는 몸에 꼭끼고 소매통이 좁은 것이 우플랑드의 원래 형태에서 변화된 점이다. 초기는 스커트 폭이 여전히 넓고 길었지만 16세기로 접어들면서 목선이 많이 내려가고 스커트의 길이는 약간 짧아져 마루에 끌릴 정도가 되었고, 추형이나 원통형을 만들기 위해 속에 페티코트 스커트를 입기 시작했다. 로브를 특징짓는 요소는 부풀린 소매, 역삼각형의 앞장식판 스터머커, 슬래쉬등이다.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은 창조적인 것을 좋아해서 이러한 기질이 복식에도 나타났는데 그 중 특히 주목되는 것은 슬래쉬로서 군복에 생긴 칼자국이 기본 모티브로, 군사들이 그들 의복의 꼭 끼는 부분을 조금씩 찢음으로써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일반인들의 복장에 크게 유행했는데, 여자복의 경우 특히 소매에 많이 사용되었다. 그 모양은 처음에 사선, 직선, 십자 등으로 단순하던 것이 둥근 모양, 별모양, 잎사귀 모양, 꽃모양 등 좀더 복잡한 여러 가지 형태로 변했다. 슬래쉬의 사이로는 화려한 속옷이 보이기도 하고 가장자리를 자수와 보석으로 장식하는 등, 매우 화려하고 사치스러워 마치 옷 여기저기에 꽃이 핀 듯한 인상을 준다. 이 슬래쉬는 당시 유럽에서 열병과 같이 유행되었고, 사치와 낭비로 인해 금지령이 내리기도 했으나 유행은 계속되었다.
(1) 스터머커
프랑스에서는 피에스 데 스토마(piece de stoma)라고 불렀고 영국에서는 스터머커라고 불렀다. 이것은 가슴과 아랫배에 걸쳐 역삼각형으로 붙인 장식가슴받이를 말하며 두꺼운 리넨이나 코튼에 풀을 먹여 밖으로 둥글게 입체감을 내면서 평평하게 만들어졌는데 바스크로 단단하게 패드를 넣어 형을 유지하게 했다. 겉은 화려한 실크나 금실을 넣어 짠 비단을 주로 사용했다. 이 스터머커는 로브 중에서 가장 눈에 띄기 때문에 르네상스 시대의 귀족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진귀한 보석과 화려한 자수로 장식을 했다. 예를 들어 독일의 브란덴부르크 왕녀인 엘리자베스의 스터머커는 44개의 진주와 14개씩의 다이아몬드와 루비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서 마치 보물진열판과도 같았다고 한다. 스터머커의 목둘레선 부분은 직선으로 되어 있어서 착용하면 넓고 깊게 판 대담한 스퀘어 네크라인(square neckline)이 되었는데 나중엔 스페인의 영향을 받아 가슴선에서 점점 올라와 목까지 닿았는데, 따로 가슴과 목만을 가리는 가슴가리개인 파틀렛(partlet)도 생겼다.
프랑스에서는 영국과 독일에 비교하여 데콜테의 전통이 강하므로 오랫동안 파틀렛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슴과 목을 가린 파틀렛은 그물망이나 얇고 투명한 리넨의 레이스에다 작은 진주와 보석, 반짝이는 황금 스팽글 등을 달아 장식했기 때문에 데콜테로 파인 가슴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했다. 투명해서 선정적인 파틀렛은 데콜테 네크라인에서 하이네크라인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육감적인 데콜테의 멋을 동시에 나타내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2)러프
러프(ruff)는 프레즈(fraise)라고도 불리우며 목에 다는 장식 칼라를 뜻하는데,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의상을 어느 것보다도 명확하게 특징지워 주는 요소 중의 하나이다. 이 러프는 러플(ruffle)로도 표현되는데 러플은 물결치는 듯한 주름 칼라를 말하며, 러프는 16세기 르네상스 전성기의 풀을 먹여 정교하게 S자로 주름잡은 높고 둥근 칼라를 말한다. 러프는 데콜테 디자인으로 목선이 많이 파인 앞가슴을 얇은 리넨의 슈미즈로 가리면서 목선에서 주름을 잡기 시작한 러플이 발전한 것인데, 구성과 손질에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정교한 것으로 바뀌어 갔다. 1560년이 되자 드레스의 앞트임과 데콜테는 가려지고 칼라를 따로 만들어 붙이는 러프가 유행했다. 러프의 크기는 스커트의 크기와 비례하여 확대되었는데, 러프의 주름과 스커드의 주름은 서로 리드미컬한 조화를 이루어 드레스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러프가 가지는 우아한 선과 규칙적인 주름의 리듬이나 섬세한 뉘앙스는 르네상스 사람들이 갖는 미적 감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이 참신한 디자인을 다투어 받아들였고, 따라서 러프는 모양과 장식에 기교를 더하면서 놀랄 정도로 신속하게 보급되었다. 초기의 러프는 작은 형태의 것이었으나 1560년대에는 러프 가장자리에 레이스 장식이 붙어 화려하고 정교한 형태로 발달되어 갔다


다. 콜셋
몸을 가늘게 조이는 기구를 일반적으로 콜셋이라 부르며 르네상스 당시에는 콜셋이라 부르지 않고 바스킨(basquine), 코르피케(corps-piqre`)라고 불렀다.
이 콜셋은 허리를 가늘게 조이게 하므로써 관능적인 아름다움에 치중하여 인간의 육체미를 변형시켜가면서 과장된 실루엣을 보이는 미적 특징을 보여준다.
(1)바스킨
바스킨은 콜셋의 일종으로 고딕시대에 몸의 곡선을 내기 위해 입었던 코르사주와
같은 목적으로 입혀졌지만 르네상스에서는 허리를 인위적으로 조이는 정도가 무척 심했다. 바스킨은 앞이나 옆, 또는 뒤가 트인 조끼 형식으로, 허리뿐만 아니라 가슴과 배까지 조이는 역할을 했다.
(2)코르피케
몸을 조이는 콜셋의 일종으로 종래의 바스킨보다 더 강하게 몸을 조일 수 있도록 재료와 구성법이 한층 발달된 것이다. 형태는 바스킨과 별 차이가 없으나 두 겹 이상의 리넨을 겹쳐서 누벼 딱딱함을 보강한 것이 특징이다.
버팀대두가지 형태로 원추형과 원통형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
(1) 베르튀가댕
이것은 스커트를 부풀리기 위한 원추형의 버팀대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로브는 스커트를 원추형이나 원통
형으로 부풀린 실루엣을 가진 것이 중세 때의 드레스와 또 하나의 다른 점이다. 중세 말기 이후 스커트를 넓히는 연구가 시도되었고 그 결과 펠트(섬유를 압축해서 만든 옷감)로 속치마를 만들어 버팀대로 사용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마음껏 넓히고자 하는 시도는 15세기 후반에 스페인의 귀족의상에서 실현되었다.
허리를 조이고 힙을 크게 부풀린 이 실루엣은 귀족풍의 위엄·박력·아름다움을 과시하는 데에 퍽 효과가 있었다. 스페인 궁정예법에 따르는 전아한 모드는 부강해지는 정치와 경제에 힘입어 큰 물결을 타고 유럽의 다른 나라 궁정에 빠르게 옮겨졌으며, 각 국에서 그 곳의 민족적인 것으로 각색되어 특징있는 모습을 나타냈다.
(2) 오스퀴
16세기 후엽에 나타난 버팀대로 자동차 바퀴를 여러 개 쌓아놓은 것과 같은 원통형의 실루엣을 이룬다.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대인 1580년대 가장 많이 유행했는데 이 거창한 버팀대로 인해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작은 체격이지만 당당한 위력을 보일 수 있었다.

남자의 의복
프랑스에서는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이탈리아로부터 우수한 예술과 공예기술자들을 초청하여 참신한 분위기를 궁중 안에 만들기 시작했다. 경제력의 확립과 중앙집권에 의해 권력을 증강한 왕은 자신의 위세를 화려하고 위엄있는 복장으로 나타내려 했고, 귀족들은 이를 추종했다. 따라서 화려한 직물의 본산지인 이탈리아로부터 사치스러운 직물을 많이 수입했다. 그러나 복식에 나타나는 미의 특징에 있어서는 이탈리아보다는 스페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느 여자복식의 경우와 같다.
16세기 남자들의 기본적인 복식은 슈미즈를 속에 입고 그 위에 상의로 부피가 큰 푸르푸앵과 하의로는 쇼오스를 입었다. 푸르푸앵은 고딕 시대부터 애용되어 오다가 16세기에 와서 크게 빛을 보게 되었다. 16세기 남자복식의 가장 큰 변화는 15세기에 풍성했던 푸르푸앵이 몸에 꼭 맞는 형태를 기본으로 하고 패드, 퍼프, 슬래쉬 등을 이용하여 박력과 화려함을 나타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패드는 원래 병사들의 갑옷 속에 신체보호의 목적으로 상의의 앞면에만 넣기 시작한 것이 일반 시민에게 옮겨져 육체의 곡선을 과장하는 취향으로 발전한 것이다. 르네상스인들은 자유자재로 신체의 형태를 변형시키는 즐거움을 갖고, 상의 뿐만 아니라 하의에까지 패드를 넣어 남성적인 위세를 양감으로 표시하려 했다 특히 어깨와 가슴을 대조적으로 더 커 보이게 하려고 허리를 가늘게 조이기도 했다. 이렇게 곡선적인 의상이 성행하게 됨에 제작과정에서 고도의 기술과 숙련이 요구되어 그 발달이 현저해졌다.
슬래쉬는 여자의복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르네상스의 특징적 장ㄹ식으로 특히 남자복식에서 더 많이 이용되었다. 슬래쉬 속으로 울긋불긋한 천을 보이게 하고 가장자리에는 보석을 달았는데, 햇빛을 받아 호화찬란하게 빛나는 슬래쉬는 르네상스인들의 사치스럽고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기질을 매우 만족시켰을 것이다. 슬래쉬가 너무 열광적으로 사용되어 슬래쉬 금지령이 몇 차례에 걸쳐 행해졌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가. 푸르푸앵
이는 르네상스 시대에 남자들이 입은대표적인 상의이다. 이것은 속에 패드를 넣어 부피를 크게 함으로써 남성미를 과시할 수 있었다 16세기 초에는 목둘레선을 원형이나 사각형으로 깊게 파서 속에 입은 슈미
즈의 러플이 보였으나후기로 가면서 스페인의 영향을 받아 목둘레는 점점 높아졌다. 화려한 자수를 한 슈미즈의 러플이 점점 커지면서 정교한 S자 주름으로 만들어진 러프로 변했고 이칼라는 따로 만들어 붙였다.
나. 오 드 쇼오스
양말이 변형되어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바지의 형태를 이룬 것을, 프랑스에서는 쇼오스(chausses)라 했고, 영국에서는 호즈(hose)라고 했다. 쇼오스는 반바지와 양말의 형태로 나누어지는데, 양자를 프랑스에서는 오 드 쇼오스와 바 드 쇼오스라 했다. 오 드 쇼오스는 처음에는 힙 부분을 보기좋게 감싸는 날씬한 것으로 별 장식 없이 슬래쉬만 약간 들어 있었을 뿐이었는데 16세기로 들어서면서 슬래쉬가 많아짐과 함께 부피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1515년 후부터 길이가 길어지고 슬래쉬 수도 훨씬 늘어났으며 또한 패드를 넣어 실루엣을 크게 부풀리게 되었다. 오드 쇼오스의 앞 가운데는 역삼각형의 천으로 주머니 모양의 앞트임덮개를 만들어
핀이나 끈으로 고정시켰다. 이것을 브라게트(braguette) 또는 카드피스(codpiece)라고 하는데, 성기보호를 목적으로 디자인했던 앞가림개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초기엔 단순한 앞트임덮개로 디자인되었던 것이 점차 사이즈가 커졌으며, 오 드 쇼오스가 슬래쉬와 패드 등으로 장식화됨에 따라 함께 발전했다(그림 12). 샤를 9세(1560~1574) 때에는 사이즈의 팽창과 함께 슬래쉬와 패드, 자수, 보석장식 등으로 화려해져 눈에 띄게되었으므로, 교회에서는 이를 지나치게 선정적이라 하여 극구 비난했다. 그러나 이것
은 인간의 육체적인 욕망을 나타내는 상징인 양 1580년까지 유행했다. 성기보호를 목적으로 유행했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으나, 남성우위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 더 강했다고 본다.

Ⅲ. 결론
이처럼 르네상스 시대의 복식은 한 형태가 급속도로 유행되었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다른 시대에 비해 매우 다양하고 개성적인 여러 형태가 공존하는 등,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복식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
또한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가지는 사회상을 반영하듯 인간성 발현의 미, 인체미, 과장미, 성적매력을 특징으로한 에로티시즘이 강조된 미의 특징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요약

14c : 남자의 기본 복식 여자의 기본 복식
상 꼬다르디, 쁘르쁘왕(갑옷속옷에서 유래) 그 위에 여러가지 외투착용 안 꼬다르디(남녀공용, 윗몸이 꼭 맞고 앞 중심에 단추 단 것 특징,목 둘레 파진 형태)
하 쇼오스 겉 쉬르꼬(장식적인 겉옷) 혹은맨틀(천을 어깨에 두르는 형태)전세기의 튜닉, 꼬뜨, 우쁘랑드 공존
남녀 모두 볼륨있는 우쁠랑드
(밑으로 내려갈수록 퍼지는 형태, 허리에 벨트 착용)
- 복식 사상 최초로 옷을 째어입는 슬래쉬가 소매에 나타남
- 가장 기이한 점은 높이가 1야드 되는 헤닌이라는 꼬깔모자 착용
- 최대로 화려, 과장과 확대가 계속, 복식에 획기적인 변화

16c : 16세기
국제적이고 옷감과 세부적인 장식은 국가적인 특징. 이탈리아 복식의 영향으로
과장을 하지 않은 단순함과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선으로 구성된 디자인이 주를 이룬다. - 슬래시: 속옷이나 안감이 보이게 하는 디테일
- 퍼프: 심을 넣어 부풀린 소매
- 콜셋: 인공적으로 허리를 가늘게 조이는 속옷
- 후프: 스커트를 부풀게 하는 버팀대
- 러프: 폭이 넓고 둥근 수레바퀴형 칼라-귀족의 특권 상징
- 트렁크 호즈: 남자하의로 양파 모양이다. 밑에는 스타킹을 신음




근세 : ▶ 복식


* 여자 의복
화가 와토(Watteau)가 디자인한 바토 가운이 유행하였는데 길이가 길고 커서 옷자락을 끌면서 걷기 때문에 움직일 때마다 나타나는 주름의 미(美)가 특징. 로브 아 라 프랑세즈라 하며 프랑스 궁중에서 애용되었다. 앞섶이 벌어져 있어 안에 입은 아름답게 장식한 스커트가 보이며, 소매는 좁고 길이는 팔꿈치까지 왔으며 소매 끝은 리본으로 장식했다.
화려하고 유연한 비단 ?비로드 등이 주로 쓰였다. 1792년부터는 여성복이 직선으로 내려오고 전체적으로 여유 있는 단순한 슈미즈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 이렇게 스커트의 볼륨이 줄어들면서 그 대신 머리를 높게 올려 장식하였는데 이때 사상 최대로 거대한 머리형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2. 복식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풍조가 있었다. 남자 의복은 간소화되었고 여자의복은 통일성 있는 실루엣을 형성하여 자연적인 인체미를 강조하였다. 발달된 직조기술과 호화롭고 값비싼 장식 등으로 독특한 양식으로서의 엠파이어 스타일이 이루어졌다.



* 여자 의복
일반적으로 하이 웨이스트에 목둘레가 넓게 패었고, 소매는 넓은 퍼프 슬리브이며, 스커트는 여유가 있으나 필요 이상으로 퍼지지 않고 곧게 흐르는 듯한 선을 그린다. 슈미즈 가운(chemise gown)이 유행되었고 이외에 로브(robe), 외투로는 스펜서(spencer, 쁠리스(pelisse), 르뎅고뜨(redingote), 속옷으로는 페티코트(petticoat), 드로우즈(drawers:속바지) 등이 있었다.

* 남자의복


시민적이고 실용성이 풍부한 복장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기본 복장으로 남자는 코트인 프락(frac)을 입었고, 바지로서는 꼭 끼는 뀔로뜨(culotte) 또는 발목길이의 헐렁한 판탈롱(pantalon)에 조끼로서 질레(gilet)를 한벌로 입었다. 프락은 상의로써 스탠딩 칼라(standing collar)이며, 앞단이 허리부터 단에 걸쳐 사선으로 재단되어 있고 뒤 중심은 갈라져 뒤꼬리 부분이 연미상으로 되어 있었다.

3. 머리장식

여성들의 화려한 머리장식은 축소되었으며, 남자 들은 거의 단발을 하였다. 1806년경에는 뒤를 한층 짧게 해서 앞머리를 얼굴 의 반 정 도까지 늘어뜨리고 뒷머리를 목까지 이르도록 한 반면, 1809년경에는 머리 전체를 꼬불꼬불하게 말았다. 모자는 대개 크라운(crown)이 높은 고대풍의 샤뽀(chapeau)를 즐겨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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