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에 유럽에서는 그리스, 로마의 고대에 대한 관심과 동경의 열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지중해에서 기원한 고대문명의 흥망성쇠를 다루는 역사학이 괄목할만한 발전을 하였으며, 여행문학이 넘쳐났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는 18세기 전반기에 발견된 폼페이나 헤르쿨라네움의 고고학적인 발굴도 한몫을 하였습니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고대국가를 ‘자연’과 ‘합리성’이 결합된 이상적인 사회로 믿었으며, 계몽주의 시대에 새롭게 건설해야할 문명의 모델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문명의 뿌리인 고대의 향기를 맡기 위해 몇 년간의 여행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영국의 상류사회의 자제들은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 등을 두루 돌아보고 최종적으로 로마와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대여행 Grand Tour'로 자신들의 교육을 마무리하였습니다. 18세기 영국의 역사가 에드와르 기본 Edward Gibbon은 『로마제국의 쇠퇴와 몰락』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나는 그 영원한 도시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내 마음을 뒤흔든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포름의 폐허와, 로물로스와 키케로스와 시저가 서 있었을 역사적인 장소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18세기에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와 같은 북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이러한 낭만적인 고대취향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지만, 18세기에 등장하는 역사주의와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유럽의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교황권이 힘을 잃은 후에 현저하게 정체되어 가는 당시의 이탈리아 도시들을 보면서, 문명이 탄생해서, 부흥하고 몰락해가는 역사의 주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즉, 지중해 지역을 과거에는 화려했으나 지금은 정체된, 유적의 무덤과 같은 곳이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생각은 폐허와 유적을 주제로 삼은 풍경화들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런 점에서 유럽인의 고대에 대한 동경은 퇴행적인 회고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진보에 대한 낙관론과 낭만적 자유에 대한 갈망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