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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Baptiste Colbert 1619∼1683 프랑스 정치가. 랑스 출생. 루이 13세때 재상 J. 마자랭의 측근이 되었으며, 루이 14세의 친정(親政)과 함께 1665년 재정총감(총리직)으로 등용, 궁내경(宮內卿)·해군경(海軍卿) 등 여러 요직을 겸하였으며 경제정책을 중심으로 내외정무를 맡아보았다. 그의 시대는 프랑스 절대왕정의 절정기였다. 콜베르는 선진국인 영국·네덜란드에 맞서 프랑스를 무역대국으로 길러 무역 차액에 의한 국부(國富;금·은) 증대를 목표로 절대왕정시대 중상주의(重商主義)의 전형이 된 콜베르티즘 체계를 쌓아올렸다. 그의 구상으로는 국제상업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출용 전략상품(모직물)을 싼값에 대량생산하는 일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곡물가격(식량비)을 인하하여 공업생산자의 저임금화정책을 도모하였으며 또한 직물을 수출적격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면밀하게 공업규제를 하였다. 동시에 전국 도시·농촌의 신자들에게 길드조직 가입을 의무화하며 공업규제의 철저화와 제품지정수출상으로의 강제집중을 도모하였다. 한편 왕립 또는 국왕특허에 의한 특권작업장을 각지에 설치하여 모직물 외에 사치품(고블랭직 등)·유리 등을 생산하게 하였다. 이러한 공업육성책과 철저한 보호무역정책으로 수출을 장려하고, 수입제품에는 금지적 보호관세를 부과하였다. 또한 동·서인도회사와 레반트회사 등을 설립, 발전시키고 해운·해군을 육성하여 해외경영에 나서 72∼78년 네덜란드와의 전쟁에 돌입해 프랑슈 콩테·플랑드르(모직물지대) 등 여러 도시를 획득하였다. 그러나 국내적으로 관료적 국가통제에 의한 콜베르티즘에 대해 농촌지대에서 성장한 반농반공(半農半工)의 수공업자들이 강력하게 저항, 길드 가입이나 공업규제에 응하지 않아 처음 의도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대외적으로도 영국의 선진적인 모직물공업과 네덜란드의 해운업을 능가하지 못하였다. 83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콜베르티즘은 사실상 무너졌고 재정위기와 농촌 피폐 및 낭트 칙령(膺令) 폐지(1685)에 의한 신교도 산업자본가의 대거 망명 등 절대왕정은 쇠퇴를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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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출처 : http://kr.ks.yahoo.com/service/wiki_know/know_view.html?tnum=9091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