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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게시판

루이 16세의 처형

작성자김윤미37|작성시간05.11.29|조회수2,438 목록 댓글 2



새로 선출된 국민 공회가 9월에 처음 회합을 가졌을 때 의원들의 성향은 전신인 입법 의회에 비해 훨씬 급진적이었으며, 지도자들 역시 군주정을 폐지하고 루이 16세를 처형하려는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9월 21일 국민 공회는 프랑스가 공화국임을 선포했다. 12월에는 루이 16세를 재판에 회부했으며 다음해 1월에 근소한 표차로 사형이 선고되었다. 프랑스 절대주의의 위대한 전통의 상속자인 루이 16세는 " 시민 루이 카페"로서 용감하게 단두대에서 처형됨으로써 최후를 맞이했다. 단두대는 혁명적 열정의 상징이 된 무서운 참수용 도구였다.

 

이 그림은 1793년 1월 단두에서 잘린 직후의 왕의 머리를 한 혁명가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참고 : 서양문명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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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민혜영09 | 작성시간 05.10.29 기요틴에 대한 추가설명: 파리대학 해부학교수이자 국민의회 의원으로 선출된 기요탱이 발명한 사형기구다. 혁명 초기사형 집행 당시에는 '낫'으로 죄수를 베었는데 가끔 형리의 실수로 죄수가 너무 고통스럽게 죽곤 했다.
  • 작성자민혜영09 | 작성시간 05.10.29 기요탱은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해 국민의회에 새로운 기계의 연구를 제안했고 의사 루이가 의뢰를 받아들여 1792년 기계가 완성되었다. 처음에는 기요틴이라는 이름이 아닌 루이즌 루이젯이라고 명명되었다 한다. 프랑스에서는 1981년까지 와서야 기요틴의 사용이 잔혹하다 하여 폐지했고 그 전까진 사용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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