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발리드 보방의 무덤
프랑스 파리. 나폴레옹 1세가 교회의 돔 아래에 있는 지하 묘지에 안치되어 있다.
프랑스의 군인이자 축성가인 보방의 묘이다.

앵발리드 튀렌의 무덤
프랑스 파리. 나폴레옹 1세가 교회의 돔 아래에 있는 지하 묘지에 안치되어 있다.
프랑스의 장군이자 자작이던 튀렌의 무덤이다.
루부아 [Louvois, Marquis de, 1639.1.18~1691.7.16]
루이 14세 때의 최고군사책임자로서 프랑스 육군의 창설자이다. 국왕이 임명한 사관(士官)의 부서를 만들어 지휘 계통을 엄격하게 정하고, 평민도 경우에 따라서는 최고계급까지 오를 수 있는 제도를 창설하고, 1688년 각 소교구(小敎區)에서 병사를 뽑는 ‘민병제(民兵制)’를 도입하는 등 병제(兵制)개혁을 추진하였다. 또 메스와 스트라스부르에 포술(砲術)학교, 파리에는 ‘상이군인기념관(Les Invalides)’을 세웠다.
부친 르텔리에도 왕정고문관으로 군조직을 정비하였는데, 1655년 부친의 뒤를 이어 군무를 맡아 J.B.콜베르와 나란히 왕의 신임을 받았다. 콜베르가 평화주의자임에 반하여, 그는 철혈적(鐵血的)인 군국주의자로서 1667년의 플랑드르전쟁, 1672년 이래의 네덜란드전쟁에서는 참모역을 맡았고, ‘낭트칙령 폐지’에 의한 신교도의 박해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688년 라인강(江) 우안(右岸)을 초토화하라고 명령하고, 팔츠전쟁을 유발한 영토병합책 등 대외문제에도 관여하였다.
보방 [SAbastien Le Prestre de Vauban, 1633.5.15~1707.3.30]
생레제드푸셰레스 출생. 귀족 출신이었으나, 10세에 고아가 되어 주교(主敎)인 퐁텐에 의해 양육되었다. 젊었을 때부터 축성술과 공학을 배웠으며, 조원술(造園術)에도 능하였다. 총리 마자랭 1602~1661)에게 기용되어 1655년 이후 요새건설을 담당하였으며, 1667년에는 플랑드르 전쟁에 종군하였다.
해군장관 J.B.콜베르(1619~1683)의 명령으로 툴롱 군항을 건설하였으며, 운하를 파는 것도 담당하였다. 루이 14세 시대 요새 중에서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이며, 실전에 참호를 쓴 것도 그가 최초였다. 말년에 《왕궁의 십일조 세안 Projet d'une dixme royale》(1707)을 저술하여, 과세의 불평등이 농민들을 얼마나 괴롭히고 있는가를 설명하고, 조세 평등을 왕에게 진언하였다. 그 때문에 왕의 노여움을 사 원수(元帥)의 신분으로 투옥되었다.
튀렌 [Vicomte de Turenne, 1611.7.14~1675.6.27]
부이용공(公) 앙리의 차남으로 15세에 군인이 되어 A.J.리셜리외의 인정을 받았다. 30년전쟁에 종군하여 1640∼1643년 에스파냐군을 격파하였으며, 플랑드르와 라인강(江) 대안의 여러 성을 공략하였다. 사교계에 군림하였던 롱빌공비(公妃)를 연모하여 프롱드의 난에서는 당초 반왕당파에 가담하였으나, 결국은 왕당파로 돌아와 궁정군의 총사령관으로서 프롱드파의 대(大)콩데가 지휘하는 반란군을 궤멸시켰다.
이후 루이 14세의 친정과 함께 다시 중용되었다. 1658년 에스파냐를 공략하여 ?蝸?르크의 승리를 도왔고, 1667년 플랑드르전쟁의 총사령관으로 에스파냐군을 제압하였다. 1672년의 네덜란드전쟁에도 총사령관으로 참전하였으나, 전선을 시찰하던 중 적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저서에 《회상록Me moires》(1659∼1661년 집필, 1735 초판)이 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