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페르니쿠스는 1473년 2월 19일 폴란드 북부 토르나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부친이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는 사제가 된 숙부 밑에서 양육되었고, 교육에 열성있는 숙부 덕분에 그는 당시로서는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이름과 함께 지동을 떠올릴 것입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지동설은 당시의 지식인들, 특히 교회의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 후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이용하여 금성의 위상 변화, 태양의 흑점, 목성의 위성 등을 발견하였고, 캐플러는 행성운동에 관련된 세 가지 법칙을 발견하여 지동설을 확립하는데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그리고, 뉴턴이 행성 운동에 관한 힘의 정체를 밝힘으로서 지동설은 완전히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체계
사후에 출간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에서 그는 지구와 태양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지구가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천명했는데, 이것은 당시 누구도 의심하지 않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도전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인간은 그 위에 사는 존엄한 존재이며 달 위의 천상계는 영원한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중세의 우주관을 붕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오늘날 획기적인 표현을 나타내는 데 사용하는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이란 말은 그의 업적이 지닌 역사적 의미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근대과학의 역사를 열고 중세의 세계관에 일대 전환점을 가져온 대사건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