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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틴은 많은 사람들을 고통없이 빨리 처형할수 있었다. 이탈리아에 이미 존재하던 장치에서 본따온 것으로 두개의 나무 기둥 사이를 초생달 모양의 날카로운 칼날이 떨어져 사람의 목을 자르는 기계이다. 칼,도끼등으로 목을 자르는 참수형이나 마차 바퀴 또는 말이나 소에 묶어 죽이는 참시형, 목을 메는 교수형보다 고통없이 순식간에 죽이도록 죄인을 배려하여 만든 것이라 한다.

사형수라도 고통없는 죽음의 권리를 주장하던 ‘기요땡 Joseph Guillotin’ 박사는 1789년 11월 28일, ‘정형외과 아카데미'의 사무총장이던 외과 의사 ‘앙뚜완 루이 ’가 고안한 기계를 사형수들의 목을 자르는데 이용하자며 ‘헌법 의회’에 선보인다.
대혁명 이후 1791년 6월 3일, ‘헌법 의회’는 모든 사형수들은 머리를 자를 것이다라는 법령을 포고하고, ‘기요땡’ 박사와 ‘앙뚜완 루이’ 에게 이 기계를 빠른 시일 내에 개선할 것을 요구하였고, 독일 기술자 ‘또비아스 슈미트’의 제안을 수용하여, 초생달 모양의 칼날을 마름모꼴로 바꾸면서 악명 높은 단두대의 모습이 완성된다.
성능이 개량된 기계는 ‘비세트르’에서 양과 시체들을 이용한 실험을 거쳤고, 첫 사형은 당시 최대의 절도범이던 ‘펠르띠에’가 1792년 4월 25일 첫 번째로 사형당했다. 기요틴에 의한 최초의 사형수의 최신식 구경꾼들은 순식간에 목이 잘리는 것을 보고 악인에게 너무 과분한 처사라고 불평이 대단하였다고 전해진다.
처음 기계의 이름은 '루이젤트' 또는 '루이종'이라 불렸는데, ‘헌법 의회’에서 총무를 맡은 ‘기요땡’ 박사의 자질에 늘 못마땅해하던 한 신문 기자가 비꼬는 투로 이 기계에 ‘기요틴’이라 이름을 붙인게 굳어진것이다.(국가의 면도칼,과부라고도 불렸다고..)
1793년부터 1794년 사이에 대 숙청 작업이 진행되면서 루이16세와 마리 앙뚜와네트를 비롯해 약 20,000 명의 목이 잘려졌고 기요땡 박사자신도 자신이 만든 기계에서 목이 잘린다.
출처-http://www.algogaj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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