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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과 상퀼로트

작성자l-04한나-l|작성시간05.06.01|조회수442 목록 댓글 0

상퀼로트는 프랑스 혁명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고로, 프랑스 혁명을 시민계급에 의한 단일 혁명이 아닌 부르조아지내의 다양한 계층에 의한 복합적 혁명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구제도 말기와 혁명초기에 경제적 어려움과 부르조아지의 선동에 의해 수공업자, 소상인, 상점주인, 노동자 등 당시 파리시의 하층민인 상퀼로트가 혁명에 개입하게 됨으로써 부르조아지를 국왕과 특권계급의 저항과 음모로부터 구출하고 혁명에 있어서 부르조아지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가져오게 하였다.


   그러나 혁명의 진행과정에서 주요세력으로 등장하게 된 상퀼로트는 부르조아지와 이해관계의 대립이 생기게 되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이들을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간의 대립, 즉 부르조아지내의 계급분화를 가져오게 하였는데, 1791년과 1792년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는 상층부르조아지와 군주제를 전복시킨 민중폭동에 잘 나타나고 있다.


  군주제의 몰락 후 프랑스 혁명은 다시 한번 계급분화를 맞게 되는데, 재산소유 부르조아지를 기반으로 하는 지롱드당과 상퀼로트를 기반으로 하는 자코뱅당과의 대립이 그것이었다. 이러한 대립 속에서 상퀼로트와 자코뱅당은 굳건한 결속을 통해 마침내 지롱드당을 숙청하고 혁명정부에 의해 공포정치를 실시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상퀼로트와 혁명정부사이의 유대관계도 로베스피에르가 제거됨으로써 깨어지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적, 경제적 위기하에서 일어나 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던 상퀼로트세력의 퇴조를 가져오게 하였다.


  또한 상퀼로트운동의 성격은 값싸고 풍부한 빵과 생필품의 구입이라는 경제문제가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구제도 말기부터 빈번했던 식량폭동은 경제적 위기가 원인이었다. 혁명적 민중폭동의 예외적인 경우인 샹드마르스사건이나 튀일루리궁 습격사건을 제외하고는 혁명을 발전시켰던 민중폭동의 1차적 원인과 동기는 바로 빵가격의 앙등과 품귀현상으로 인한 굶주림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레베이용 폭동, 베르사이 유 행진, 1792년과 1793년의 연속적인 폭동은 빵기근, 아시냐가치의 하락에 의한 물가상승 그리고 낮은 임금 등으로 인한 경제적 궁핍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이와같이 1787년부터 1794년까지의 상퀼로트운동은 경제적인문제와 정치적인 관심이 결합하여 일어난 것으로 이러한 상퀼로트에 의한 민중폭동이 혁명을 진전시켜 온 진정한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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