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학기에 영화 장미의 이름을 보고 레포트를 낸 적이 있어 몇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스포일러성 글이 될 수 있으니..영화를 보려고 생각중이신 분은 안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추리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어 굉장히 긴장감이 느껴지는 영화거든요.^^
우선 영화는 수도원에서 몇몇 수도사들의 갑작스런 의문의 죽음으로 시작을 합니다. 숀코넬리는 바로 이 사건 때문에 수도원에 오게 되며.. 이 일의 실마리를 찾아 해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영화속에는 수도사들의 타락한 모습이 많이 드러납니다..
평민 여자가 수도원 내부로 몰래 들어가..수도사에게 성을 매매하고..그 댓가로 먹을 것을 얻어나가고..(그만큼 평민들의 삶은 가난에 찌든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수도사들 내부에서는 동성애가 공공연히 행해지기도 합니다. 몇몇 수도사들은 살이찌고 기름기가 흐릅니다.. 평민들의 삶은 비참한데..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편안해 보이죠..
영화 속 갈등의 원인은 바로 수도원 내에서는 금서로 정해진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때문이었습니다. 희극론의 내용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대충 이성을 강조하고 '웃음'을 받아들인 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영화속 폐단이 나타나는 수도원은 베네딕트파에 속하는데.. 여기에서는 묻기 전에는 대답해도 안되고..웃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품위를 떨어뜨리면 안 된다는 것이죠.. 이들에게 희극론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바로 '웃음'이 두려움을 없애며.. 이것은 악마에 대한 두려움까지 없애서, 악마에 대한 두려움 없이는 신에 대한 믿음까지도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이 대사가 나왔을 때 정말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의 기득권층이라고 볼 수 있는 그들이..웃음을 두려워했다니 말이죠. 그들은 결국 희극론을 금서로 정하고..그래도 그것을 보는 사람은 죽게끔하기 위해 책장에 독을 묻혀놓고..이것이 의문스러운 죽음의 이유로 밝혀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이 약해질 것을 우려했던 것이겠죠. 교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중세는 신을 중심으로 한 사회였고.. 그 때문에 신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된 교회의 권력이 컸을 것입니다. 그렇게 권력이 컸으니 교회는 부패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권력을 놓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어찌됬든..그야말로 중세 기독교가 얼마나 타락했었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에도 검색해보니 여러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서 장미의 이름을 해석한 시도가 많던데..
그건 너무 어려운 것 같아서 올리지 않았습니다^^; 혹시 관심있으신 분은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참고로 '장미의 이름'에서 장미가 의미하는 바는 르네상스시대의 '인문주의'라고 합니다. 십자가, 교회 등이 중시되던 시기에서 '장미'의 중요성, 즉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더군요. (네이버에서 검색하다가 발견)
참고사항 하나더^^; 장미의 이름은 움베르토 에코라는 작가의 소설이 영화화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은 보다가 말았는데..책의 서두에 보면 작가자신이 직접 왜 제목을 그렇게 지었는가에 대해서 길게 설명이 되있습니다^^; 저로선 봤지만..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역시..관심있으신 분은 참고하시길 바래요.

사진은 영화의 주인공인 숀코넬리와 그의 제자분입니다.
이 제자분은 여성과 육체적으로 결합하는..수도사로서는 잘못된 일을 하지만.. 빈곤한 평민층을 보고, 불쌍한 여자의 삶을 보고 슬퍼하는 '인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순수한 청년으로 나온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