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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게시판

중근이> 르네상스의 예술 문학편 <르네상스 문학과 데카메론>

작성자정경임 05중근이|작성시간05.12.11|조회수422 목록 댓글 0
 

 르네상스 문학과 데카메론(DEKAMERON) 1349-1353


목차 :

1. 인문주의와 사실주의 산문정신

2. 데카메론의 저자 :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1375)

3. 작품의 주요내용

4. 감상 및 데카메론의 문학사적 의의

5. 데카메론으로 보는 피렌체


1. 인문주의와 사실주의 산문정신

  동시대의 문학가인 단테와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를 비교해보자. 전자들의 詩이서, 후자의 散文에서 각각 두르러진 작품을 남겨 이탈리아 문학 빛내고 있다. 중세기 문학의 위대한 종료를 장식하는 단테에 이어,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을 찍어 이탈리아 문학에 근대성을 불어넣었던 사람은 페트라르카이다. 그로부터 참다운 의미에서 근대 이탈리아 문학이 시작된다고 봐야 하겠는데, 그의 주된 사상은 인문주의(Umanesimo)이다.

  보카치오도 이 사상의 테두리 안에서 높이 평가될 인물이다. 반드시 타당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중세를 가리켜 암흑의 시대라고 부른다. 문화 활동이 종교적 속박 때문에 침체되어 신의 문제에 너무나 집착한 나머지 문학이나 예술의 가장 중요한 소재는 한사코 신아나 신적인 것, 또는 그들을 칭송하기 위한 것에 국한되어 있었다. 인간 본위의 문화의 헬레니즘이 로마에 이식되어 발전해 갔지만 교권만능의 문화관에서 헬레니즘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인문주의는 여기에 대항해서 생겨난 것이다. 기독 사상은 인정하면서 아니, 오히려 그것을 더욱 고양된 의미에 있어서 승화시켜 문학 속에 표현하고자 하되 인간의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따라서 오랫동안 잊혀졌던 고전작품 속에서 인간의 참다운 가치를 찾아보고 새로운 문학의 방향을 설정하는 이정표를 세우는데 필요한 초석을 찾으려고 했으니, 이것이 곧 인문주의의 근본이다. 고전 연구 작업이 페트라르카나 보카치오 이전에도 있었지만 인문주의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중세문학성과 근대 문학성의 차이점은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의 시로 살펴보자.


  ‘내 여인이 인사할 때 한껏 거룩하고 성스럽게 보여 누구든 혀를 떨며 굳어지고 눈 들어 쳐다보질 못하네.’

  이것은 단테의 소네트 중의 하나이다. ‘여인’은 바로 ‘베아트리체’이며 밑줄 친 부분을 보면 단테는 그녀를 통하여 인적적인 사상이라기보다 신적인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신생』이나,『신곡』의 내용도 예로 들자면 이에 나타나는 여성에 대한 사랑은 凡人의 것이 아니고, 시인과 승화된 천사와의 사랑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베아트리체는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신생』을 자서전적인 이야기로 받아 준다고 할 때, 단테의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을 중세 문학적 입장에서 벗어나 생각해 본다면 납득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고야만다. 베아트리체는 인간이니라, 천사이자 善의 집합체이다. 단테는 그녀를 통해 선의 방향과 신적인 사랑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맑고 신선하며, 달콤한 물가. 거기 내게만 여인으로 보이는 그녀, 아름다운 자태를 드리우네.’

  이것은 페트라르카의 작품을 단테의 것과 판이하게 다르다. ‘여인’은 곧 ‘라우라’이다. 성스런 이미지의 베아트리체는 자태가 아름다운 현시의 여인으로 나타난다. 그녀는 천사가 아닌 평범한 여인이다.


‘꽃 따라 돌아다니는 그녀를 보았을 적’

꽃 따라 다니는 여인, 그녀는 우리 생활 속의 여인이고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여인이지, 결코 베아트리체가 될 수 없다. 『데카메론』을 살펴보면 완벽한 산문이며 그의 문장은 미사어구가 없는 거친 것이다.  작품에서 주인공들 등장부분을 예로 보자.

“모두 귀족의 핏줄을 가졌고 총명했으며, 이목도 수려하고 태도도 정숙하여 기품에 차고 명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녀들의 본명은 꼭 말해야 할 이유도 없으므로 말씀드리지 않기로 하지요.… 당시의 그녀들 나이의 사람들이나 더 나이를 먹은 분이나 꽤 자유롭게 마음 내키는 대로 쾌락을 누릴 수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 규칙이 엄해져서 말씀이지요.”

  이처럼 인문주의들의 관점은 중세기의 신적인 문제에서 인간적인 점으로 압축되고 있다. 고전 작품을 연구하여 그 속에서 예술관을 찾아내려는 이들의 특성을 간단하나마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문제, 인간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인문주의는 곧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의 태동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를 유발시키고 있다. “보카치오는 페트라르카가 출발점을 찍어 놓은 이 인문주의의 직속 계승자며, 탁월한 산문력과 창작력을 구사하여 전 대중 소게 깊숙이 파고든 작가였다.”


2. 데카메론의 저자 :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1375)

  단테(Dante), 페트라르카(Petrarch)와 함께 3대 인문주의자 보카치오는 서정시, 서사시·장편소설·단편소설 등 다방면에 재능을 발휘했다. 단테의『신곡』에 비해 『인곡(人曲)』이라 불리는『데카메론』의 저자 보카치오는 1313년에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 체르탈도(Certaldo)에서 태어났다.1)  1321년에 단테가 죽었을 때 보카치오는 8세였으며 가정교사로부터 읽기와 쓰기를 배웠다. 이 교사가 열렬한 단테 숭배자였던 까닭으로 어릴 때부터 말년에 피렌체시(市)의 요청으로 『신곡』을 강의하게 되었을 때까지 보카치오에 있어서 최대의 문학자는 단테였다.

  보카치오는 남달리 총명하여 어릴 때부터 시를 지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기 직업을 잇게 하기 위해 보카치오가 12세가 되자 상업술을 가르칠 목적으로 나폴리로 보냈다. 문화의 중심지인 나폴리에서 보카치오는 정서적 생활에 반해 상업술 공부를 포기하고 문학 공부에만 전념했다. 1333년의 부활제 전야, 그는 나폴리의 로베르토 왕의 딸인 미모의 마리아를 만났다. 첫눈에 마리아를 사랑하게 된 그는 일생을 통해 그녀를 잊지 못했다. 그는 작품 속에서 늘 피아메타라는 이름으로 마리아를 그리워하고 찬양했다.

  1350년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그는 피렌체 공화정부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아 중요한 외교관 직책을 맡기도 했다. 이때 그는 로마 교황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의 황제와 황후 등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동안에 그가 얻은 가장 큰 수확 은 인문주의의 창시자인 페트라르카와 친교를 맺게 되었다는 점이다.『데카메론』은 1348년에서 1353년에 걸쳐 집필되었다. 이 작품이 발표되자 문단의 반응은 냉담했으나 민중으로부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은 곧 외국에까지 퍼졌고, 거리의 변사들까지도 이 이야기를 늘어놓을 정도였다. 인쇄술도 없고 종이도 귀한 시대에 설화형식의 단편소설이 퍼진 것이었다.

  1348년 피렌체에서 괴질 페스트가 만연하여 수만 명의 시민이 죽어갔으며, 부유층은 말할 것도 없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피신해야 할 형편이었다. 환자와 미처 피신하지 못한 빈곤한 사람들 이외에는 사람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보카치오 또한 그때 아버지를 잃었으나, 그 자신은 나폴리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재난을 모면할 수 있었다. 그는 평생 잊혀 지지 않을 그 참담한 광경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게 되었다. 교외의 화려한 별장으로 피난 가 10일 동안 계속 매일 열 명의 남녀가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를 꾸며 『데카메론』을 쓴 것이다 이 소설을 '10일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근대적인 리얼리즘의 산문정신으로 그려진 최초의 작품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미사여구를 찾아볼 수 없으며, 대체로 문장표현이 거친 편이다. (오히려 투박하여 잘 쓰여진 문장처럼 자연스럽다.) 이야기에 때때로 나오는 외설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인간생활을 솔직히 묘사하다 보니 자연히 나오게 된 것뿐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데카메론』에 나오는 100편의 이야기는, 인간생활에서 일어나는 우스운 이야기로부터 도덕적인 훈화, 타락하고 부패한 교회의 수도자들에 대한 풍자, 그리고 사랑의 기쁨과 슬픔 등 아주 다채롭다.

  1370년 보카치오는 고향인 체르탈도에 돌아와 머무르다가, 1373년에 피렌체 영주의 부탁으로 성 스테파노 디 바디아 성당에서 단테의 『신곡』을 강의했다. 그것은 보카치오가 단테의 위대성에 대해 강력한 인상을 받았으며, 평생토록 단테를 존경했음을 증명한 일이었다. 보카치오는 몇 달 후  병 때문에 체르탈도에 돌아와 있다가 1375년 12월에 숨을 거두었다.


3. 작품의 주요내용


  페스트2)가 피렌체를 휩쓸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고, 따라서 꽃의 도시라 불리던 피렌체는 폐허가 되어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도시를 버리고 피신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황량하게 시체만 뒹구는 도시의 어느 성당 안에서는 7명의 귀부인(팜피네아, 필로메나, 네이필레, 피아메타, 엘리사, 라우레타, 에밀리아)이 모여 살아갈 궁리를 모색하던 끝에 피난을 가기로 한다. 그런데 여자들만이 가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아 남자들을 같이 데려가자고 의견을 모으고, 이들이 토의하던 도중에 세 명의 잘생긴 청년(필로스트라토, 팜필로, 디오네오)이 성당을 찾아오게 된다.3) 여자들에게 설명을 들은 청년들이 찬성을 하고, 이리하여 열 명의 남녀는 교외에 있는 피에졸 언덕의 별장으로 가게 된다.

  별장에 도착한 그들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를 궁리 하다가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들은 2주 동안 머무르게 되는데, 그리스도의 수난일인 금요일과 토요일은 쉬기로 했기 때문에 총 100편의 이야기를 서로가 하게 된다. 첫째 날과 아홉째 날의 주제는 자유이고, 둘째 날에는 많은 갈등과 고뇌를 겪고 나서 행복한 끝을 맺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셋째 날엔 갈망하던 것을 획득하는 삶들에 관해서, 넷째 날엔 불행한 결말을 갖는 사람들의 사라이야기, 다섯째 날엔 결심을 맺는 사람들의 이야기, 여섯째 날에는 재치를 이용하여 교묘한 응답을 하면서 위기를 벗어난 사람들의 이야기, 일곱째 날과 여덟째 날의 주제는 부부 간이나 남녀 간에 서로 속고 속이는 이야기, 마지막 날에는 고상하고 관대한 주제나 영혼의 위대성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4) 또 그들은 이야기를 하고 난 후에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이때 부르는 칸초네가 한 편씩 총 열 곡이 된다. 한 사람씩 번갈아 가며 하는 이야기는 변화가 풍부하고 그 무대도 유럽 각지에서 동방에까지 걸쳐 있으며, 인물이나 성격·기질 따위도 최하층에서 최상층에 이르는 다양함을 보이고 있다. 또 이야기의 내용도 우스운 이야기, 비련(悲戀) 이야기, 잔혹한 이야기,  속이는 이야기 등 기발한 줄거리와 기상천외한 장면이 교차되고, 아이러니와 풍자, 간지러운 선정적인 무드를 풍기면서 진행된다. 그 속에는 중세의 교훈적인 내용이 아니고 인생을 즐기려는 애욕의 기쁨이 대담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봉건적인 세력에 대한 신흥 부르주아 서민계층의 쌓이고 쌓인 울분이 깔려 있고 그것이 너털웃음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이야기들 중에서 양적으로 가장 많은 것은 섹스의 해방과 기쁨, 성직자의 모순과 부패에 대한 조소, 낡은 지배계급에 대한 서민의 평등한 감정이다.5)

  여기에 나타난 여성의 매력은 그때까지 천상적(天上的) 인 플라토닉한 베일을 벗겨버리고 육욕과 직결되는 매력일 뿐 아니라, 간통조차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정(性情) 으로 시인되고 있다.6) 사랑의 모험이나 테크닉, 소위 색정(色情) 이야기는 이 책의 이름을 높게 만든 특색이기도 하다. 또 신의 권위로 서민에겐 금욕과 인내를 강요하면서도 성직의 특권으로 현세적인 인간의 욕망에 도취되어 있던 교회나 신부의 타락과 기만성이 비웃음거리로 통렬히 폭로되어 있다. 이것은 이윽고 하나님 최후의 심판까지도 의심하는 부르주아의 허무적인 의식이 현실적으로 죽음이란 보편적인 사실과 대치된다.

  여기서는 제왕이나 교황도 똑같은 육체를 가진 인간이란 합리적인 해석이 나온다. 그러므로 마부(馬夫)가 왕비를 범하는 논리도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상인적인 실리주의로부터 인간의 가치란 벼슬이 아닌 재능이므로 합리적인 두뇌가 존중된다. 선량한 우둔함보다 스마트 한 잔꾀가 인정되고 속는 자보다 속이는 자가 갈채를 받는다. 이 책은 당시에도 너무 음란하다는 비난이 있었는데, 그 말에 대해 작가는 '세상의 부인들이 좀 더 도덕적인 화재를 가지고 있었다면 나도 좀 더 도덕적인 것을 썼을 것이다'라고 응수했다. 이 말로 미루어 이 책이 에로틱한 사랑의 모험이나 음란한 이야기로 메워져 있는 까닭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4. 감상 및 데카메론의 문학사적 의의


 『데카메론』은 토막 이야기 형식을 취해 10일 100회의 기상천외한 단편 이야기들을 엮어냄으로써 초서(Chaucer)니 셰익스피어(Shakspere)를 비롯한 후세의 유럽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계문학사상 이처럼 모방·변형·표절을 당 한 작품은 없다. 『데카메론』은 작품 속에 넘치는 통렬한 성직자 비판정신으로 말미암아 보카치오의 가치관이 '인간의 사랑'에 두어져 있음을 나타낸다. 한때 이 작품이 카톨릭 윤리에 어긋난다 하여 소외된 적이 있으나 소위 사실주의 문학관이 대두됨에 따라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 작품은 10일 동안에 전개되는 10편의 발라드로 구성되어있다. 비록 세분화 된 이야기가 독립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일정한 규격 속에서 질서정연하게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연관된 사회적 현실의 바탕은 엄연히 한 작품으로 존립함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는 완전한 의미에서 문학적인 창작이 아니라, 그 당시 떠돌던 이야기와 보카치오 자신이 이전에 써놓았던 소설들의 집합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무작위로 모은 이야기가 질서를 지키고 있음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것은 작가의 정신에서 우러나온 예술론에 입각한 통일성과 인간의 지성이 표현할 수 있는 한계성을 초월한 인상을 주는 조건이 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고발정신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그의 작품을 사실주의적 관점에 서 파악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는 신랄한 풍자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고발하고 있으며, 또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뚜렷이 읽을 수 가 있기에 더욱 더 새로운 가치로 오늘날에도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7) 보카치오가 고대문학과 고대역사의 보존을 위해서 많은 기여를 했다는 점 역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때 까지 신부나 수도자의 손에만 독차지되었던 고대작품들은 자칫하면 그 보존조차 걱정되는 상태에 있었다. 보카치오는 각 수도원을 찾아다니며 이것을 손수 베껴 후세의 학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또 라틴어를 통하지 않고 직접 호메로스 등의 고전문헌을 해독하려 한 점에서 페트라르카에 못지않은 최대의 인문주의자기도 하다. 이처럼 이 책은 근대적인 리얼리즘의 산문으로 씌진 최초의 작품으로 이런 점에서 중세와 인연을 끊은 근대의 인간적인 자각을 연 여명이라 평가되고 있다.


5. 데카메론으로 보는 피렌체


 페스트 이후 : “1348년 페스트 피렌체를 휩쓸었다.  이에 대해서 어떤 인간의 지혜도, 예방의 대책도 소용이 없었다. 임명된 관원들이 시내에서 산더미 같은 오물을 쳐내고, 환자는 일체 시내에 있지 못하게 금했으며, 병을 막기 위한 별의별 주의가 내렸다.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 자주 행렬을 짓는다든가, 갖가지 기도문들을 되풀이한다든가 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개중에는 제 있는 생활 하고 무슨 일이나 과도한 짓을 삼가면 페스트를 겪지 않는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반대로 실컷 마시고 향락을 즐기고 노래 부리며 근처를 돌아다니고, 놀러 다니고, 할 수 있는 모든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말하자면 명랑하게 서로 웃고 떠들고 모든 것을 죄다 무시해 버리는 것이 이 병에 대한 가장 좋은 약이라고 단정해 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이 양극단의 경우에 중간정도의 삶을 사는 사람도 있었다.

  인간의 규범은 물론 하나님의 거룩한 법도의 권위도 거의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개중에는 환자를 그대로 두고 달아나 버리는 사람이나 자기만 신경 쓰는 경우도 있고, 이웃끼리조차 간병을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며, 친척끼리도 서로 이따금 밖에, 아니 거의 방문하는 일이 없었다. 형은 아우를, 아저씨는 조카를, 언니는 동생을 버렸을 뿐 아니라, 때로는 아내가 남편을 버리기조차 하는 형편이었다. 부모들이 아이들이 마치 자기 자식이 아닌 것처럼 간병도 않거니와 찾기조차 피하고 했다.”

  성직자의 타락 : “사람들이 좋고 나쁜 분간도 없이 다만 충동적으로 혼자서 혹은 패거리를 지어 밤낮으로 쾌락에 잠겨 있다는 얘기를 자주 소문으로도 듣고 실제로도 듣고는 한다. 그것이 속세의 사람들이라면 또 모르지만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들 까지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허용되어 있지 않지만 자기들은 인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계율을 깨고 육욕에 젖어 죽을병을 면할 수 있다고 믿는 듯이 음탕한 생활을 하고 있다. ”

  여성의 남성의존성, 여성의 인식 : “우리는 다 성숙한 여자로 이제 어린 처녀들이 아닙니다만, 여자들만 모여 봐야 남자분들의 지도 없이는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실 줄 알아요. 우리들 여자라는 것은 변덕이 많고 다투기를 좋아하며, 의심이 많고 겁쟁이고 무서움을 잘 탑니다. 그러니 남자분의 지도를 받지 않으면 이런 집단은 뜻 밖에 빨리 해산하게 되어 버릴지도 모르고, 필요 이상으로 불명예스러운 결과가 되지 않을런지 모른다고 생각해요. …정말 남자분들은 우리의 두뇌예요. 남자분들의 지도가 없으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해봐야 좀처럼 성과를 거둘 수 없을 거예요.”




※참고문헌

『데카메론 上 ,下』 보카치오, 한형곤 옮김, 범우사 2000

『르네상스』폴 존슨, 한은경 옮김, 을유문화사 2003

『세계 풍속사 下』파울 프리샤우어, 이윤기 옮김, 까지 1992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시오노 나나미, 김석희 옮김, 한길사 2001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화』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안인희 옮김, 푸른숲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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