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엠파스>
근대 해부학의 기초를 닦은 인물은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1514-1564)이다.
오늘날의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태어난 그는 파리에서 의과 대학을 졸업한 후 벨기에 루뱅 대학의
해부학 교수로 부임하였다.
해부학 교수가 인체 해부를 마음놓고 할 수 없는 상황에 답답해 하던 그는, 어느날 모험을 강행하기고 했다.
사형수의 시체를 몰래 훔쳐오기로 한 것이다.
오늘날의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태어난 그는 파리에서 의과 대학을 졸업한 후 벨기에 루뱅 대학의
해부학 교수로 부임하였다.
해부학 교수가 인체 해부를 마음놓고 할 수 없는 상황에 답답해 하던 그는, 어느날 모험을 강행하기고 했다.
사형수의 시체를 몰래 훔쳐오기로 한 것이다.
달도 없는 캄캄한 밤, 교수대에 매달려 죽은 사형수의 시신을 업고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온 베살리우스는,
밤새도록 사형수의 시신을 해부하고 정밀히 관찰 해 노트에 기록하였다.
날이 밝자 그는 시체를 원상 복구한 후, 보통의 다른 시신과 함께 관에 넣어서 처리하였다.
인체 해부 실험을 경험해 본 베살리우스의 해부학 강의는 아주 유명해저서,
대학에서 이내 탁월한 해부학자라는 평을 들었다.
<마치 산 사람을 해부해 본 것 같다> 라는 학생들의 말에, 교수대에서 없어진 시신의 행방을 찾던 경찰은
베살리우스에게 시체 도둑 혐의를 두기 시작하였다.
동료 교수의 귀띔을 전해들은 그는, 그날로 짐을 꾸려서 도망쳐나와 학문의 자유가 있는 이탈리아로 향했고,
뛰어난 해부학 능력을 인정받아 파두아 대학의 해부학 교수로 임용되었다.
자신이 기록한 노트에 한 화가의 도움으로 정확한 그림을 곁들여 1538년에 <학생을 위한 해부학>이라는
책을 펴냈고, 강의와 아울러 해부 실험도 여전히 게을리하지 않았다.
뛰어난 해부학 능력을 인정받아 파두아 대학의 해부학 교수로 임용되었다.
자신이 기록한 노트에 한 화가의 도움으로 정확한 그림을 곁들여 1538년에 <학생을 위한 해부학>이라는
책을 펴냈고, 강의와 아울러 해부 실험도 여전히 게을리하지 않았다.
당시 중세 의학은 로마 시대에 <제2의 히토크라테스>라고 불린 갈레노스 Galenos(130-200)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낮은 의학상식으로.편견과 잘못된것이 많았다.
베살리우스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여, 1543년 <인체 구조에 관하여>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베살리우스 역시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인체 심장구조 및 피돌기의 원리에 대한것이다.
이 부분은 훗날 영국의 하비가 <혈액순환법칙>을 명확히 밝혀내어 의학의 발달에 신기원을 이룩하게 되었다.
"베살리우스는 대한단 인물같다. 그시대에는 인간해부라는 것이 법으로 금지 되어있는서 돼지나 원숭이같은 동물들을 해부 실험용으로 썼다고 하는데 베살리우스는 시체를 훔쳐 해부를 해보았다니 참 대범한 사람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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