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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 전투

작성자한정훈18|작성시간06.01.15|조회수351 목록 댓글 0

라이프치히 전투 (Battle of Leipzig)

일명 Battle of the Nations.
독일과 폴란드에 남아 있던 프랑스 병력을 완전히 격파시킴으로써 나폴레옹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긴 전투(1813. 10. 16-19).

약 18만 5,000명에 달하는 나폴레옹 휘하의 프랑스 및 기타 군인들과 약 32만 명의 동맹군이 작센 지방 라이프치히에서 교전했다.
오스트리아·프로이센·러시아·스웨덴 군대로 이루어진 동맹군은 각각 카를 필리프 슈바르첸베르크 공, 게프하르트 레베레흐트 블뤼허 장군, 레온티 레온티에비치 베니히센 장군, 스웨덴 왕세자 요한 베르나도트의 지휘를 받았다.
나폴레옹은 1812년 러시아에서 퇴각한 후, 1813년 독일에서 새로이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그의 군대는 베를린 점령에 실패하고 엘베 강 서쪽으로 철수해야 했다. 동맹군이 라이프치히를 통과하는 나폴레옹의 병참선을 위협하자 그는 그 도시에 병력을 집결시켜야만 했다. 10월 16일에 남쪽에서 슈바르첸베르크가 이끄는 7만 8,000여 명의 부대의 공격과 북쪽에서 블뤼허가 이끄는 5만 4,000여 명의 부대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저지할 수는 있었으나 어느 쪽도 결정적으로 패배시키지 못했다. 17일 전투가 잠시 멈추었을 때 베니히센과 베르나도트의 부대가 도착해서 그를 포위한 군대수는 증가했다.

18일 30만 명 이상의 동맹군이 공격을 위해 라이프치히 주변에 모였다. 9시간 동안 격전을 벌인 끝에 프랑스군은 도시 외곽지역으로 몰렸고 19일 오전 2시 나폴레옹은 엘스터 강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다리를 건너 서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오후 1시 모두가 무사히 건넜으나 동맹군의 공격 위험도 없고 아직 퇴각하는 프랑스 군대로 붐비고 있던 때에, 놀란 하사 1명이 다리를 폭파시켰다. 이 폭파로 인해 3만 명의 후위군(後衛軍)과 부상군인들이 라이프치히에 갇혔고 이튿날 모두 포로가 되었다. 프랑스군은 3만 8,000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동맹군측은 총 5만 5,000명의 사상자를 냈다. 나폴레옹 전쟁(1800-15)중 가장 격렬했던 전투에 속하는 이 전투로 라인 강 동부의 프랑스 제국은 붕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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