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적기
옛날부터 양털이나 목화를 물레에 걸어 실을 잣는 방적이란 일은 천을 만드는 공정에서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리는 일이다. 1733년 케이가 나는 북( flying shuttle )을 발명하여 천을 짜는 시간이 단축되었다. 그러나 공장의 직공들은 이러한 편리한 것이 생기면 일자리를 잃는 것이 아닌가 하고, 케이의 집을 습격하여 발명한 기계를 부숴 버렸다. 한편, 케이의 발명에 대한 장점을 안 공장 주인들은 직물기계에 나는 북을 설치하여 노동자들이 더욱 많이 일을 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너무 빨리 천을 짤 수 있게 되자, 실이 모자라게 되어 더 빨리 실을 짤 수 있는 기계가 필요하게 되었다.
주목할 만한 최초의 방적기는 하아그리브스가 만든 제니(딸의 이름)이라는 것인데 방추를 수직으로 여러개 달아놓아 동시에 여러 가닥의 실을 자아낼 수 있는 기계를 발명했다. 그러나 다시 직공이 공장을 습격하여 기계를 부숴버렸다. 제니방적기를 더욱 개량하여 수력 방적기를 발명한 사람은 아크라이트인데, 방적기를 물의 힘으로 돌리게 만든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그후 질이 좋은 실을 자아낼 수 있는 기계를 고안해 낸 사람은 방적기의 발명가 중 유일하게 방적공이었던 크롬프턴 이었다. 그는 노새라는 뜻의 '뮬'이란 이름을 붙였다.
산업혁명 전후의 방적
1700년대 산업혁명 이전의 유럽에서는, 수공도구에 의존하는 공장시스템이 갖추어져 섬유산업의 번영은 곧 국력의 기초를 나타내었다. 1733년 J. 게이가 발명한 직기의 날북장치는 씨실을 박아넣는 능률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켰는데, 이를 계기로 방직법의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1738년 J. 와이어트가 고안한 롤러드래프트의 특허를 L. 폴이 취득하였고, 1764년에는 J. 하그리브스가 플라이어가 없는 물레를 개량, 많은 가락을 한 사람이 돌릴 수 있는 제니방적기를 발명하였다. 이 기기는 수동식으로 조사파지부(把持部)를 후퇴시켜 조사를 잡아늘리면서 꼬는 것인데, 당시 노동자들이 실업을 두려워하여 발명자를 박해한 사실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날실용 면사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R. 아크라이트는 1769년 와이어트의 롤러드래프트와 플라이어부속물레를 조합하여 수력(水力)으로 자동적으로 방적할 수 있는 수력방적기를 발명하였다. 이 기기의 원리는 오늘날의 플라이어정방기와 같은데, 생산성이 높고 날실용 면사에도 적합하였다. 또 1748년 폴 및 D. 본은 각각 카드(소모기)와 유사한 장치를 발명하였다. 79녀 S. 크럼프턴은 제니방적기를 개량한 것에 롤러드래프트법을 도입한 기기를 발명하고, 여기에 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뮬정방기에서 1대의 가락수가 비약적으로 증대되고 실의 품질도 향상되었다. 뮬은 1825년 R. 로버츠에 의해 자동화되고 증기기관도 도입되어, 도시에서는, 기기로 구성된 공장이 출현하였다. 이 밖에 1775∼1785년 아크라이트·카드·연조기·조방기를 고안하였고, 1797년에는 N. 스노드그라스가 타면기(打綿機)를 발명하였다. 1828∼1832년 미국에서 캡(cap) 정방기·링정방기가 발명되고 각종 기기의 개량이 이루어져, 19세기 중엽에는 거의 오늘날과 같은 방적기기의 원형이 이루어졌다.
하그리브스의 제니방적기
아이크라이트의 수력발전기
영국의 기술자 아크라이트는 1769년에 수력 방적기의 특허를 획득함으로써 영국의 섬유산업 발전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였다. 아크라이트가 1769년에 특허를 얻은 기계는 종래에 이미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던 롤러드래프트 장치와 플라이어가 붙은 방차의 꼬기, 감기, 기구를 멋드러지게 결합한 것이었다. 이 방적기는 보통 수차로 작동했기 때문에 수력 방적기라 불렸다. 그의 방적기는 날실 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공정을 연속화했을 뿐 아니라, 숙련공을 불필요하게 만들었고, 인력 이외의 동력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방적 산업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후 그는 방적 공정과 그에 관련되는 여러 가지 기계를 유기적으로 결합, 배치하여, 이런 기계들이 공통의 동력으로 구동되는 생산 체계를 고안해내었다. 그는 이런 체계에 기반하여 대규모 방적 공장을 각지에 설립하고, 이것을 직접 경영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산업혁명기의 대표적 기업가로 손꼽힌다.
크롬푸턴의 뮬방적기
산업혁명 이전 유럽의 면제품은 날실로서 장력에 견디는 직사를 뽑아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모두 대체품으로 삼실이 사용되었다. 남부 독일의 바르헨트직이나 18세기에 네덜란드와 영국의 두 동인도회사의 인도산 캘리코 수입에 의해 야기된 서유럽의 패션혁명이 한창 진행중일 때 영국 랭커셔지방의 농촌 가내공업에 의해 제조된 퍼스티언직물은 모두 날실에 삼실을, 씨실에 면사를 사용한 교직직물이었다. 이후 아크라이트가 발명한 수력방적기에 의해 영국의 면직물공업이 강인한 날실의 대량생산에 성공하여 인도산 갤리코에 대항할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확립하였다. 또한 가늘고 질긴 날실·씨실을 생산하여 인도의 고급품 모슬린에 대항할 수 있는 제품을 제조할 수 있게 된것은 새뮤얼 크럼프턴이 발명한 뮬방적기에 의해서였다.
크롬프턴은 영국 볼턴 근처의 방적 공장에서 일하다가 1774년과 1779년 사이에 하그리브스와 아크라이트의 방적기가 지닌 장점을 결합시킨 '뮬방적기'를 만들었다. 뮬이라는 이름은 크롬프턴의 방적기가 일종의 잡종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면방적용으로 실에 꼬임을 가하는 작업과 목관에 감는 작업을 교대로 하게 되어 있으며, 연도와 탄성이 우수한 실을 만들수 있었다. 그 후 여러 가지로 방적기계는 개량되었으며, 이러한 발명과 개량은 18세기에 영국에서 이루어져 당시의 산업혁명을 크게 촉진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