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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화폐

작성자80 장혜란|작성시간05.12.06|조회수929 목록 댓글 0
 

마르크의 역사


  독일 화폐의 정식명칭은 도이체 마르크(Deutsche Mark)로 약자로는 DM으로 표시한다. 단위는 마르크(Mark)이다. 1마르크(DM)는 100페니히(Pfennig)이다. 지폐는 1,000DM, 500DM, 100DM, 50DM, 20DM, 10DM이 있고, 주화는 5DM, 2DM, 1DM, 50Pf, 10Pf, 5Pf, 2Pf, 1Pf가 있다.

  통일 이전에는 서독의 도이체 마르크(Deutsche Mark)와 동독의 데데에르 마르크(DDR Mark)로 구별해서 사용되다가 통일 이후 도이체 마르크로 통합되었다. 19세기 독일의 여러 소국들은 모두 작은 주화로 만들어진 마르크화를 이용했으나 그 가치는 나라마다 달랐다. 1873년 독일제국이 성립된 뒤에는 곧바로 100페니히에 해당하는 마르크 금화가 가치의 표준으로 채택되어 제국의 계정화폐단위로 사용되었다. 마르크라는 명칭의 유래는 적어도 1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마르크는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금과 은의 무게단위로서 약 8온스(226.8g) 가량의 중량을 나타냈다.

  중세에 이르면서 마르크는 화폐단위로 채용되어 고액을 지불하는 데 사용되었다. 표면에 은의 무게와 순도를 새기고 크기와 질을 각각 다르게 한 여러 가지 조그만 은화들도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유주얼마르크'(Usualmark)라고 불렸다. 1871년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독일제국이 성립되고 통화와 재정제도가 정비되었다. 73년에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로부터 얻은 배상금을 바탕으로 금본위제가 확립되었으며, 1마르크 순금 358.422919㎎ 이라는 금평가(金平價)기준이 설정되었다. 이를 <금마르크>라 한다. 75년에는 중앙은행인 라이히스은행이 설립되어 발권(發券)이 통일화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금본위제는 정지되고 <금마르크>는 <종이마르크(지폐마르크)>로 바뀌었으며, 역사적 초(超)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이 같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1923년에는 렌텐은행이 설립되었고, 토지를 담보로 <렌텐마르크>가 발행되어 점차 종이마르크와 교환됨으로써 <렌텐마르크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통화 안정에 성공하였다. 다음해 옛 금마르크와 같은 값으로 금과 결부된 <라이히스마르크>가 발행되어 금본위제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또다시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시작된 금융공황을 해결하기 위해 독일은 외국환관리를 실시하였고, 이것으로 독일의 금본위제는 허물어졌다. 48년 새 중앙은행을 설립하여 새 통화 <독일마르크>를 발행, 1독일 마르크 10 옛 라이히스마르크의 비율로 교환했다. 53년에는 1달러 4.20마르크의 평가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가맹했다.

  제2차 세계대전 뒤에 경제부흥을 성취, 고생산성과 저 인플레율 아래서 고도의 성장률을 유지하고 대폭적인 경상수지 흑자를 축적하여 거액의 금외화(金外貨)준비를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1995년 12월 15일 에스파냐 마드리드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15개 회원국들은 1999년 1월 경제통화동맹(EMU)을 출범시키고 단일통화의 명칭을 ‘유로(EURO)’로 하는 데 합의하였다. 1999년 1월 1일~2001년 12월 31일까지의 과도기를 거쳐 2002년 1월 1일~2002년 6월 1일까지의 완결기간을 확정하였다. 이에 따라서 도이체 마르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1EUR은 1.95583DM 이다.

 

 

 

○ 5 Deutsch Mark ○

 

 

 

아르님 

Bettina von Arnim (1785-1859)

 

독일 낭만주의 운동은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지닌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아르님은 바로 이들과 같이 뛰어난 재능을 지닌 낭만주의자였다. 그녀는 기인에 가까울 정도로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었고 제멋대로였으나 남편에게는 충실한 아내였으며 7명의 아이들에게는 헌신적인 어머니였다. 또 민감하고 열정적이었으나 자신의 개인적인 자유를 잃지 않으려 했으며, 어떤 일에 헌신할 정열을 갖고 있으면서도 나르시시즘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의 성격을 예찬하는 데 몰두했다. 아르님은 이러한 성격상의 모순을 작품에 투영했다. 가장 잘 알려진 3편의 작품은 그녀가 괴테, 카롤리네 폰 귄데로데, 오빠 클레멘스 브렌타노와의 편지 왕래를 각각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괴테와 한 아이 사이의 왕복서간(1835)>, 빌헬름 4세를 향하여 자신의 정치적 자유의 신념과 사회정의의 이상을 털어놓은 <이 책은 국왕의 것(1843)>등으로 유명하다.

 

 

브란덴부르크문 (Brandenburger Tor)

 

통일 전 동베를린과·서베를린의 경계 부근에 있는 고전적 양식의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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