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타는 바트당 사무실-사담 후세인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이 기울어져 있다.>
아랍사회주의부활당(Arab Socialist Renaissance Party)이라고도 하며, 중동지역의 여러 국가들 내에 분파를 가지고 있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집권당이다. 바트당은 비동맹주의를 추종하고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반대하였으며, 계급구분을 무시하거나 초월하려고 하였다. 이 정당의 구조는 중앙집권적 ·권위주의적이었다. 바트 운동은 1940년 들어 정치단체적 성격을 띠게 됐으며 공식적으로 1947년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미셸 아프라크와 살라알 비타르가 탈종교적 근대화를 이념으로 세운 바트 모당(민족지휘부)의 지역 지휘부에서 출발하였다. 바트당의 이라크 지부는 1954년에 세워져 1963년 집권에 성공한다. 1957년 이라크의 바트당에 가입한 후세인은 68년 당시 쿠데타에 참여하여 쿠데타의 주역 바르크장군 밑에서 부통령직을 맡았으며, 79년 바크르대통령이 사임함에 따라 대권을 넘겨받게 됐다. 그러나 그는 시리아 바트당과 내통한 쿠데타 음모를 적발했다며 군부와 혁명평의회를 숙청했고 이를 계기로 친척과 고향 친구들을 주요 직책에 대거 임명, 1인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또 당시의 쿠데타 기도적발로 78년 10월부터 추진했던 시리아와 이라크의 민족지휘부 통합 추진작업도 끝내 수포로 돌아가 양국 관계는 더욱 소원해졌다. 이라크의 바트당은 이란과의 전쟁때문에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빠져 1980년대부터는 서방의 원조에 더욱 의존하였다. 1991년 걸프전 패배 이후 이라크에서는 시아파(派)와 쿠르드족이 중심이 된 반바트당 세력이 저항 소요사태를 일으켰다. 이것은 바트당의 정치적 탄압과 반이슬람적 경향이 그 원인이었다. 정교분리와 사회주의 민족주의에 근거한 수니파의 바트당노선은 근본적으로 정교일치체제 속에서 무신론적인 사회주의나 종족적 민족주의를 배척하고 있는 정통 이슬람과 타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바트당의 소요 이후 이라크의 대통령 S.후세인은 집권 바트당과 경쟁할 다른 정당들의 정치활동을 허용하는 법안을 선포하였다.
바트당은 이집트와 시리아의 집권당이었으나, 이라크의 바트당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해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