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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

모스크바 3상회의

작성자어태선|작성시간05.07.17|조회수194 목록 댓글 0
모스크바 3상회의는 1945년12월 16일에서 25일까지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미국.영국.소련 3국의 외상이사회에서 체결된,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문제
처리에 관한 협정입니다.

한국에서는 ‘모스크바삼상회의(모스크바 3국 외무장관회의)’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을 뿐 아니라, 한국의 신탁통치라는 문제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협정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한국에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고 일정기간의 신탁통치에 관하여 협의한다.
2)대일정책의 최고결의기관으로 11개국으로 된 극동위원회를 설치한다.
3)중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아니하고 통일을 촉진한다.
4)헝가리 ·이탈리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핀란드 등 구추축국과의 강화조약을 준비한다.
5)루마니아 정부에 자유주의적 정당의 대표를 참가시켜 조속히 자유선거를 실시한다.
6)불가리아 정부에 민주적 멤버를 참가시킨다.
7)원자력의 국제관리를 위한 원자력관리위원회를 국제연합 안에 설치한다.
이렇게 7개항을 체결 하였습니다.

그당시 우리나라의 좌익과 우익을 모두 포함시키는 중도파인 건국준비위원회가 1945년
8월10일 비밀리에 발족 됐습니다. 약칭하여 건준이라고도 합니다.
8월 15일 광복절날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을 발표 하였습니다. 사무실은 서울
풍문여자중학교에 두었고 위원장에 여운형, 부위원장에 안재홍·허헌, 총무부장에
최근우, 재무부장에 이규갑 조직부장에 정백, 선전부장에 조동호, 무경부장에 권태석등으로 진용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건준이 지나치게 좌익진보세력으로 조직되자 민족주의계 인사들이 이에 반발하여 탈퇴하였으며, 부위원장 안재홍도 탈퇴하여 9월 1일 조선국민당을 창당하였습니다. 또한 정백·고경흠등의 간부들은 위원회의 승인 없이 경성지부를 결성하였으며 9월 4일 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려 집행위원회 개편을 단행하였고 9월 6일에는 600여 명으로 구성된 전국인민대표자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경기여자중학교에서 열린 이 회의에서 '조선인민공화국 임시조직법안'이 통과된 뒤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을 발표하였습니다. 따라서 건준은 9월 7일 해체되고 9월 11일 조각을 단행하였습니다. 이승만, 여운형, 허헌, 김규식, 김구, 김성수, 김병로, 안재홍, 이강국, 신익희, 조만식 등 55명의 대표위원과 오세창, 권동진, 김창숙, 이시영 등 12명의 고문위원을 선발하고 주석에 이승만, 부주석에 여운형, 총리에 허헌이 각각 추대, 임명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건준을 반대하고 임시정부의 귀국을 기다리던 김성수·송진우·장덕수등 우익진영은 이들 조직을 벽상조각이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후 해외 독립운동지도자들이 귀국하고 이승만이 주석 취임을 거절하는 한편 미군정청에서 10월 10일 조선인민공화국의 승인을 거절하는 포고를 발표하자 조선인민공화국은 자연 해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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