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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지명하여 불렀나니...(마9:9~13)

작성자고무신|작성시간26.06.13|조회수4 목록 댓글 0

20260614 성령강림절 후 셋째 주일

마 9:9~13 / 조한우 목사

 

지명(指名)하여 불렀나니...

 

몇 년 전에 제가 산청한방약초축제에서 가수 송대관씨 공연 MC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습니다마는 그때 송대관씨가 분위기 좋고라는 노래를 했습니다. 그 노래 가사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어요. “내 인생에도 봄이 온다. 내 사랑에도 꽃이 핀다그 노래 가사처럼 오늘 본문 말씀 속에 나오는 세리 마태는 정말 분위기가 좋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던 세리 마태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마태의 인생에도 봄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시니까, 예수님을 향한 마태의 사랑에도 꽃이 피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의 인생에도 봄이 오는 줄 믿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 오셔서 나병환자를 고쳐 주시고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열병을 앓고 있던 시몬 베드로의 장모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바쁘게 건너편 가다라 지방으로 가셔서 귀신 들린 두 사람을 만나셔서 귀신을 내쫓아 주셨습니다. 그때 귀신 들렸던 사람들에게서 귀신들이 떼거리로 나가면서 저 멀리 있는 돼지들한테 귀신들이 들어간 거예요. 귀신들이 돼지들한테 들어가니까, 돼지들이 갑자기 놀라서 비탈길로 내리달리더니 몽땅 바다에 뛰어들어서 돼지 떼가 몰살하고 말았습니다. 귀신 들렸던 사람들은 귀신이 떠나가고 멀쩡해져서 좋았는데, 이번에는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난리가 난 거예요. 그 피해를 누가 보상할 거냐고요? 시내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잔뜩 몰려와서 예수님한테 항의를 합니다. ‘당신 때문에 우리 돼지들이 다 죽었다! 당장 변상해라! 당신 때문에 못 살겠다! 당장 여기서 떠나라!’ 그래서 할 수 없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서 예수님의 본() 동네인 가버나움으로 다시 가시게 된 겁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집에 계시다는 소문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 왔습니다. 그때 네 네 명의 친구들도 중풍병자 한 사람을 침상 채 들고서 예수님께서 계시는 가버나움 집으로 찾아와서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예수님께서 계신 집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내렸잖아요? 그때 예수님께서는 소자(작은 자),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고, 중풍병자는 그 자리에서 나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실 때에는 육신의 병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본연의 문제인 죄에 대해서 완전한 해결을 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선포해 주시는 것은 우리 주님이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구세주라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그 후에 예수님께서는 그 곳을 떠나서 가버나움 동네를 쭉 한 바퀴 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마침 가버나움 세관 앞을 지나가시게 되었는데요,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세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무서 앞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고 있는 마태라는 청년을 보시더니, “나를 따르라!”라고 하신 거예요. 그랬더니, 오늘 본문에는 그런 말씀이 없는데요, 누가복음 5장에 보니까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서 예수님을 따랐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어부들은 배와 그물을 다 버리고, 또는 아버지까지 다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마찬가지로 마태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일어나서 예수님을 따랐어요. , 여기서 모든 것을 버렸다는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어부 출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다시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갔더니 거기 배도 그대로 있었고, 그물도 다 그대로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그때까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그대로 계셨을 거예요. 그러나 마태는 모든 걸 다 버렸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다가 돌아가도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잘 나가던 직장도 다 버렸습니다. 마태는 요즘 말로 하면, 세무공무원 아닙니까? 물론 그 당시의 세리라는 직업은 로마 식민지에 있는 자기 민족들에게 세금을 뜯어서 바쳐야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죄인을 열거할 때에 꼭 세리와 창기들이라고 해서 불명예스러운 직업이긴 했습했습니다. 세리와 창기를 똑같이 여겼던 거예요.

 

그런데요, 누가복음에 보면 마태의 이름을 레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태가 레위족속이었을 거라고 추측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마는 마태가 레위족속이라는 특별한 증거는 없습니다. 마태의 아버지는 알패오라는 분인데요, 알패오 이 양반이 마태에게 레위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을 보면, 레위지파 못지않게 거룩하게 키우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먹고 살려다 보니까, 세리를 하게 되었나 봐요. 그러나 마태는 어려서부터 모세오경 공부도 많이 해서 구약 성경에도 능통했던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을 기록한 사람이 바로 알패오의 아들, 세리 마태였거든요. 4복음서 중에서도 마태복음에는 구약 성경이 많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똑똑하고 잘난 인물이 어쩌다가 세리가 되어서 사람들의 미움을 받으면서 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마태는 남들에게 늘 손가락질을 받는 자기를 예수님께서 불러 주시니까 너무 너무 기뻤던 거예요. 당장 세관에서 뛰쳐나와서 예수님을 모시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서 사람들을 초청해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마태랑 친한 사람들이라고 해 봤자, 그저 세리나 창기들과 같은 그야말로 죄인들뿐이었을 거예요. 10절 말씀에도 보면,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다고 기록을 했거든요. 그런데 마태는 자기가 마태복음을 기록하면서 자기 스스로 세리와 죄인들이라고 쓴 거예요.

 

아무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그 광경을 보고 제자들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 자기 스스로 의롭고 거룩하고 경건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물론 사람치고 어떤 사람이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이 있겠습니까마는 남들이 다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본인스스로도 그래요, 나는 죄인이에요!’라면서 통회자복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 주님이 오신 줄 믿습니다.

 

사실 마태를 제자로 부르실 때에 예수님의 제자들도 별로 반응이 좋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자기들도 대부분 배우지 못한 어부들이었지만, 그래도 세리 마태? 이건 아니지!’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어요? ‘우리 예수님, 참 이상도 하시지! 하필이면 남들이 다 손가락질하는 세리를 부르신단 말이야? 혹시 우리 예수님이 돈이 필요하신가? 우리 예수님이 세리를 좋아하시나?’ 별별 생각들을 다 했을 거예요. 하긴 나중에 삭개오를 부르시는 것만 봐도 그래요. 삭개오도 남들이 다 손가락질하는 세리였거든요. 그것도 그냥 세리가 아니라, 세리장(稅吏長)이었습니다. 세리가 죄인의 대명사였다면, 세리장은 오죽했겠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불러 주시니까 좋아가지고, 성경에 보면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삭개오가 겅둥겅둥 뛰면서 예수님을 맞아들였을 거예요.

 

그때도 사람들은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또 수군거렸습니다.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그런데 삭개오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습니다. 만일 내가 누구의 것을 속여서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습니다!” 부자가 회개하니까, 역시 통이 크긴 큽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가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했을 때에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신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잃어버린 자 하나를 찾아서 구원해 주신 거예요. 예수님은 잘났다고 부르시고, 못났다고 안 부르시고 그러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819절과 20절 말씀을 보면, 한 서기관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선생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주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딱 잘라서 거절하셨습니다. 서기관 정도면 예수님의 제자로서 자격이 충분한 거 아닌가요? 그런데 예수님의 태도는 쌀쌀맞을 정도로 냉정하게 외면하셨습니다. 그 대신에 예수님께서는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사람, 죄인의 대표격(代表格)인 세리 마태 같은 사람만 골라서 제자로 부르시는 걸 보게 됩니다.

 

저는 본문을 묵상하면서 이사야 431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가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콕콕 짚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명해서 부르시는 줄 믿습니다. 그냥 어중이떠중이 한꺼번에 걸리는 대로 아무나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00! 00! 00! 00! 00! 또박 또박 이름을 부르시면서 한 사람 한 사람씩을 지명해서 부르셨습니다. 베드로나 안드레나 야고보나 요한이나 예수님의 열두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그렇게 부르셨어요. 심지어 가룟 사람 유다까지도 말입니다.

 

야곱아, 내가 너를 창조하였다!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지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느니라! 너는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것이다!” 주님의 부르심에 무조건 아멘으로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나 같이 형편없는 한 영혼을 위해서 오신 주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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