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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영혼의 촛불, 예수 그리스도(마9:9~13, 18~26)

작성자고무신|작성시간26.06.14|조회수4 목록 댓글 0

20260614 성령강림절 후 셋째 주일

마 9:9~13, 18~26 / 조한우 목사

 

영혼의 촛불,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들의 참된 빛이 되십니다. 길을 잃은 영혼들이 생명의 길로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우리가 의지하고 따라야 할 분은 오직 예수한 분 뿐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 영혼의 촛불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우리 영혼의 촛불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죄인들을 부르시는 분입니다. 본문 9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요즘 말로 하자면 세무서 앞을 지나가시다가 세무 공무원 하나가 세무서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나를 좇으라!’ ‘나를 따라와라!’ 그 말씀이죠? 그 한마디에 세리 마태는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마태가 뭘 좀 잘 몰라서 예수님을 따라나선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 같으면 안 따라 갔을 것 같아요. 예수님을 따라가면 뭔가 좀 비전이 보이고, 희망이 보여야 따라나설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죽으시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물론 당장 죽으실 것은 아니셨지만, 예수님의 본() 동네 가버나움을 출발해서 결국에는 예루살렘으로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길이었거든요. 3년 정도 걸리게 됩니다마는 그 분을 따라나섰다가는 정말 세상 말로 재미볼 게 하나도 없으신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런데도 나를 좇으라!’는 말씀 한마디에 선뜻 따라나서는 것을 보면, 마태는 정말 어디 누구 하나 의지할 곳 없는 딱한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사실 그 당시에 세리라는 직업은 아주 천시 받던 직업이었습니다. 요즘에야 세무 공무원이라고 하면 빽도 있고, 돈도 벌고, 안정적인 직업이지만, 그 당시에 세리들은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천대받는 직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오죽하면 몸을 파는 창녀들과 같은 취급을 받았을까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내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자기 동족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로마 나라에 갖다가 바쳐야 하는 일을 했으니, 그런 사람을 누가 좋아했겠습니까? 그러니까 마태에게는 친구도 없었고요, 누구 하나 그의 벗이 되어 줄 만한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그러니 만날 사느냐 마느냐? 이 일을 계속 해야 되느냐? 마느냐?’ 그러면서 하루 하루를 지루하게 여기면서 살아왔을 거예요.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다섯 단계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생리적인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 소속되고 싶어 하는 욕구, 존경받고 싶은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이 다섯 단계의 욕구가 있다는 거예요. 그 중에 존경에 대한 욕구가 있는데요,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능력에 대해서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남들이 자기에게 고개를 숙이고 존경을 표해 주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세리 마태를 존경하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그러니까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고,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 노상 그 생각만 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매슬로우가 말하는 마지막 다섯 번째 인간의 욕구 단계가 자아실현의 욕구인데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편한 일자리라도 소용이 없는 거예요. 죽을 고생을 하더라도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불구덩이 속에 뛰어 들어가서 사람을 구하다가 자기 목숨을 불 속에 던져 버리는 소방관들을 보세요. 이 분들은 어떤 어려움이 와도 어떤 고난이 찾아와도 그것을 묵묵히 잘 감당을 합니다. ‘수당이 많다, 적다.’ 일체 그런 얘기가 없어요. 그런데 하루 세끼씩 꼬박 꼬박 밥 먹여주고 편안한 침대에서 잠을 재워주어도 하루 종일 이쪽에서 저쪽으로 벽돌을 나르고 다 나르면 다시 저쪽에서 이쪽으로 벽돌을 나르는그 일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날 몇 일을, 몇 년 동안을 계속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사람 미치는 겁니다. 벽돌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 쌓고, 다 옮겨 쌓으면 다시 그 벽돌을 저쪽에서 이쪽으로 다시 옮겨 쌓고, 그게 무슨 보람이 있겠어요? 하루 종일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자기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창조적으로 자기의 가능성을 실현시켜 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최종적인 욕구 단계라는 겁니다

 

그런데 세리 마태에겐 먹고사는 생리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안전이나 소속에 대한 욕구도 그런대로 다 해결이 된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자기 동족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로마나라에 갖다가 바치는 이 일은 도무지 아무에게도 존경을 받을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자기 동족들의 혈세를 뜯어 먹고 살면서 그 일을 통해서 자아실현을 이룬다고 할 수가 있겠어요? 죽지 못해 사는 겁니다. 남들이 볼 땐 그저 먹고 살만하고, 사회적으로도 지위도 있어 보이고, 이것저것 좋아 보여도 세리 마태에겐 다 소용없는 일이었을 거예요. 세리 마태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왕따를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소위 말하면 죄인들 그룹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마태를 찾아와주시고 만나주시고 불러 주신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13절 하반절 말씀에 그러시잖아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두 번째로 우리 영혼의 촛불이 되시는 우리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쳐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신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 중에서 간과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치유사역이셨습니다. 18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바쁘게 사셨는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금방 죽었대요. 믿음이 좋은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나와서 자기 딸을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는데 안 가실 수가 없으셨던 거예요. 그래서 급하게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가고 있는데, 그 와중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고 있던 한 여인을 만나게 된 겁니다. 그런데 그 여인도 참 대단한 여인이죠? 다른 사람들은 안수해 주세요. 만져주세요. 기도해 주세요.’ 난리들인데, 이 여인은 그런 거 다 필요 없었습니다. 그녀에게 그런 건 그저 사치스런 일이었을 거예요. ‘난 그런 거 다 필요 없어! 그저 난 그냥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때에 어떻게든지 예수님의 옷자락에 살짝 손만 갖다 대도 나을 거야!’ 그 믿음 하나로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때에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댔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12년 동안이나 앓고 있던 혈루병이 경상도 사투리로 깨끗하게 나사버린 거예요.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할렐루야!) 우리 예수님은 병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병든 자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우리 영혼의 촛불로 오신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2:21 네 병든 손 내밀어라! 주 예수님 고치시리. 네 병든 손 내밀어라! 주님 고치시리라.병든 자들을 치료하시는 우리 주님을 찬양합시다!

 

마지막 세 번째 우리 영혼의 촛불이 되시는 우리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마가복음 5장과 누가복음 8장에도 같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은 열 두 살 난 어린 아이였어요.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도착해서 보니까, 사람들은 죽은 소녀를 애도하면서 훤화하면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훤화한다.’는 말이 좀 어려운 말인데요, 당시 장례 풍습으로 부자 유대인들 집에서는 돈을 주고서 곡하는 사람들을 사서 장례기간동안 슬픈 악기를 연주하거나 애고 애고곡을 하도록 했습니다. 아르바이트 치고는 좀 그렇죠?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가셔서 보시니까, 돈을 받고서 곡을 해주는 알바생들이 잔뜩 모여서 한참 곡을 하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하시는 말씀이,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사람들이 다 비웃었습니다. 죽은 아이를 보고 잔다고 하시니 안 그랬겠어요?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다 내어 보내시고는 아이 부모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만 데리고 들어가셔서 죽은 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서 달리다굼!” 하시니까 소녀가 부스스 일어났습니다.(할렐루야!) ‘달리다굼이 무슨 뜻이예요? ‘소녀야 일어나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죽은 자도 살아서 일어나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한번도 편안한 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지방선거가 있었잖아요? 국회의원 보궐 선거랑 같이 했는데, 세상에 이런 엉터리 부실선거가 어딨어요? 이건 나라 망신이고, 그동안 쌓아왔던 우리 대한민국의 자부심과 긍지가 한 순간에 무너져내린 느낌이었습니다. 그 바람에 여기 저기서 시위와 집회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요. 태극기를 들었건, 촛불을 들었건 또 한동안 시끄러울 것 같습니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얼마나 더 남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사실은 우리가 들어야 할 촛불, 우리가 모셔야 할 촛불은 바로 우리 영혼의 촛불이 되시는 예수님 한 분 뿐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분 만이 우리들의 소망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만이 우리들의 참된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나같이 더러운 죄인을 불러주셔서 예수님의 제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그 어떤 것으로도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는 우리들을 찾아오셔서 고쳐 주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을 살려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망의 권세에 놓인 영혼들을 구원해 주셔서 우리 모두에게 새 생명을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도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고, 모든 이들에게 참된 위로와 희망의 말씀이 선포되어지고, 거룩한 의의 빛이 온 세계에 비추어지면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모두 모두 깨끗해지고, 거룩해지고, 튼튼해지고, 생기가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영혼의 빛이 되시는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우리 예수님을 의지해서 주님 앞에 귀한 일꾼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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