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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복음의 능력(창33:1~11)

작성자고무신|작성시간26.06.21|조회수3 목록 댓글 0

20260621 성령강림 넷째주일

창33:1~11 / 조한우 목사

 

복음의 능력

 

오늘 본문 말씀은 야곱과 그의 쌍둥이 형 에서와의 만남과 화해에 대한 말씀입니다.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는 아주 유명합니다. 야곱과 에서는 어머니 리브가와 아버지 이삭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인데요, 창세기 25장을 읽어보면 야곱과 에서는 뱃속에서부터 싸웠습니다. 그야말로 앙숙이라고 해야 하나요? 하여튼 리브가가 야곱과 에서를 임신을 하고난 뒤로 뱃속에서 얼마나 두 놈이 치고 받으면서 싸우는지 리브가가 배가 아파서 못 살겠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 여쭤봤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이게 웬 일입니까?’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두 민족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뱃속에서부터 나누게 될 것인데,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아닌 게 아니라 결국 동생 야곱이 형의 장자권을 빼앗고 말았습니다. 어리숙한 형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동생 야곱에게 팔아버린 거예요. 사냥을 갔다가 왔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겠어요? 그런데 부엌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거예요. 에서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와서는 , 그게 뭐냐? 그 붉은 것이 맛있어 보이는데, 나 한 사발 퍼다오!” 그랬더니, 야곱이 하는 말이,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정 먹고 싶으면 형이 가지고 있는 장자의 명분을 내게 준다고 약속해! 그럼 한 그릇 퍼 줄게.” 에서는 이것 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알았다. 고마! 퍼뜩 떠 온나!” 그 말 한마디에 장자의 명분이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성격 때문에 실수를 하거나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곱은 어떻게 하면 형 에서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만날 그 생각만 하면서 살았습니다. 야곱이 얼마나 샘이 많았는지 태어날 때에도 쌍둥이 형인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잖아요? 그렇게 시샘이 많은 사람이 야곱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야곱 콤플렉스라는 말이 생겼겠어요? 결국 아버지까지 속여서 장자의 축복 기도를 빼앗아 간 거예요. 그때부터 에서 야곱을 미워하기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어차피 아버지도 얼마 못 사실 것이고, 일이 이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이판사판이다! 내가 이 놈을 죽여버려야겠다!’ 에서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엄마 리브가가 듣고는 불이나케 야곱을 불렀습니다. “얘야, 야곱아! 너는 어서 네 외갓집 동네 하란으로 도망을 가거라! 네 형의 분이 풀릴 때까지만이라도 거기에 가 있거라!”

 

그리고는 이삭에게는 이렇게 핑계를 댔습니다. “영감! 이 동네 처녀들은 쓸만한 애들이 없네요. 우리 큰 며느리만 봐도 그렇잖아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헷 족속의 딸들이 우리 며느리로 들어오는 건 이제 더 이상 용납 못하겠어요. 우리 야곱은 우리 친정 오라버니의 딸에게 장가들입시다!” 그렇게 해서 야곱이 멀고 먼 하란 땅, 밧단아람으로 떠나게 되었던 겁니다. 혈혈단신으로 괘나리 봇짐 하나 짊어지고 터덜터덜 떠나는 야곱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해 보였겠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밧단아람 외삼촌 집에서 20년을 머슴처럼 사는 동안 엄청난 복을 주셨습니다. 부인을 넷이나 뒀고요(그게 복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들 열하나에 딸 하나, 나중에 아들을 하나 더 낳아서 아들 열둘에 딸 하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엄청난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나이가 먹어 가면서 외로워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향수병이라고 그러죠? 고향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런데 막상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니까 두렵고 떨리고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야곱은 그동안 벌어들인 재산을 정리해서 짐승 떼와 노비들을 데리고 고향을 향해서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면서도 혹시라도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공격해 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양떼와 소떼와 낙타 떼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에서가 공격을 해 오면 한 떼는 형에게 빼앗길 것으로 생각하고, 나머지 한 떼는 도망을 가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는 했는데도 마음이 괴롭고 두려운 거에요. 하나님께서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에게 천사들을 보내주셔서 하나님의 군대가 야곱과 함께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두려웠어요.

 

얍복강 강가 나룻턱에 도착한 야곱은 하나님 앞에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기도를 했는지 하나님께서 천사가 야곱을 찾아 내려왔는데, 야곱은 그 천사를 붙들고 놔주지를 않는 거예요. “나에게 복을 주세요! 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못 산단 말예요! 내게 복을 내려 주세요!” 하도 간절히 기도를 하면서 매달렸습니다. 먼동이 터서 날이 밝으려고 하는데도 야곱은 계속 천사한테 매달려서 떼를 쓰니까, 하는 수 없이 천사가 야곱의 환도뼈를 쳤다는 거 아니겠어요? 환도뼈가 어그러졌는데도 천사를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으니까, 천사가 야곱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네 놈 이름이 뭐냐?” “, 제 이름은 야곱입니다.” ‘야곱은 발꿈치를 잡았다는 뜻이거든요. 참 간사하고 비겁한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천사가 야곱에게 말하기를 이제부터는 네 이름을 야곱이라고 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네 이름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뜻은 하나님의 사람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서 이겼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요샛말로 표현하면 빅토리(victory)입니다.

 

야곱은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승리자는 적이 없어야 승리자인 거예요. 적이 남아 있으면 언제 공격을 받아도 받게 되고요, 적이 남아 있으면 언제 뒤통수를 맞아도 맞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형과 빨리 만나서 화해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데 저 멀리 바라 보니까, 형 에서가 4백 명 군사를 이끌고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얻은 야곱도 그걸 보니까, 또 겁이 나는 거에요. 그래서 자기가 데려온 무리들을 네 떼로 나누어서 가장 사랑하는 라헬과 어린 요셉은 맨 뒤에 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형님을 향해서 몸을 땅에 일곱 번씩이나 굽히면서 절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형이 무서워서 자기를 죽이려고 4백 명이나 되는 군사를 끌고 오나보다 했는데, 에서가 야곱을 보자마자 달려와서 야곱에게 입을 맞추더니 야곱의 목을 끌어안고 우는 겁니다. 에서가 우는데 야곱이 안 울 수 없잖아요? 형 에서는 반가워서 울고, 동생 야곱은 미안해서 울고, 모르죠. 하도 무서워서 겁을 먹고 있다가 형이 자기를 붙들고 우니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안도의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깜짝 놀라면 경기를 하면서 울잖아요? 야곱도 그랬을 거 같아요.

 

에서가 묻습니다. “웬 아이들이 이렇게도 많으냐?”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자녀들입니다.” “웬 여자들이 이렇게도 많으냐?”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아내들입니다.” “웬 짐승 떼가 이렇게도 많으냐?” “,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들입니다.” “제가 형님께도 신세를 많이 지고 은혜를 많이 입었으니, 제가 드리는 이 선물들을 받아 주세요!” “아이구야, 됐다 고마! 내도 재산이 꽉 찼삤다 고마! 이거 니 다 해라!” “아이고 형님,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었더니, 마치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 같습니다요.” “그래? 말이라도 고맙데이. 그란디 니도 앵간히도 고생했는갑다. 그 곱던 얼굴이 이 머꼬? 이자 니도 니 자식 새끼들하고 묵꼬 살아야 할끼 아이가? 내 생각 말고, 어여 가져 가라! 내 받은 거나 진배 없다.” “아입니더 형님! 받으이소!” 11절 하반 절에 보니까,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할렐루야!) 잠언서의 말씀을 보면, “사람의 선물은 그의 길을 넓게 하며, 또 존귀한 자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18:16)고 했습니다.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선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21:14)라고 했어요.

 

오늘 말씀의 제목이 복음의 능력인데요,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을 선물하시기 바랍니다. 능력이 나타나게 될 줄 믿습니다. ‘됐다 고마 니나 믿어라!’라고 거절을 해도 11절 말씀처럼 강권하시기 바랍니다. “그에게 강권하매 받았더라!”(할렐루야!) 복음도 강권하면 받게 되어 있습니다. 에서가 야곱의 선물을 받고 어떻게 되었어요? 두 형제의 사랑이 다시 싹트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원수도 사랑하게 만듭니다. 복음은 사랑으로써 서로 화해하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이렇게 대단한 거예요.

 

두 번째로 복음은 소망을 갖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에서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었던 야곱이 어마어마한 복을 받은 것을 보고서 소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형제도 이제 함께 어울려서 살 수 있겠구나! 야곱이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을 보니까, 이제 우리도 원수가 아니구나!’ 소망을 본 거예요.

 

마지막으로 복음은 믿음을 갖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게 뺀질거리고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계속 자기에게 사기를 쳤던 동생이었는데, 그 동생이 억지로 권한 선물을 받고 보니 동생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된 거예요.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편 133편 말씀입니다.

 

그때가 1950년이었으니까, 6.25동란이 일어난 지도 벌써 76년이나 지났네요. 그런데 아직도 수많은 이산 가족이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살고 있습니다. 저 북한에서는 계속해서 미사일을 쏘고 있고요, 핵무기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면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철천지원수입니다. 저 사람들을 변화시킬 방법은 복음 밖에 없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여러분, 복음의 능력을 믿으십니까? 저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억지로라도 자꾸 권해야 합니다.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원수 맺은 친구나 이웃들에게도, 등을 돌리고 사는 가족들에게도 복음을 강권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에게도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줄 믿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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