酉月庚午 辛卯生 - 건륭황제와 화신 명조 청 건륭제(관살혼잡) + 재상 사주(관살혼잡) 묘유는 진과 태이니 명주는 인의의 참된 기틀을 얻었다. 자오는 감리가 되어 천지의 중기를 다스리고 또한 일월의 바른 체상을 얻어 소멸하지 않고 하나는 윤택하게 하고 하나는 밝혀준다. 좌하에 단문 오화가 있어 수화기제를 이루고 이런 까닭으로 팔방이 복종하여 조정에 든다. 사해도 마찬가지다. 금빛 말에 붉은 매, 영토 안의 종과, 흰 이리와 우두머리 토끼가 덮은 휘장 안에 다함께 돌아오니 천하가 빛나고 편안하다. 85 75 65 55 45 35 25 15 05 ― 02 09 06 05 戊 己 庚 辛 壬 癸 甲 乙 丙 --- 丙 庚 丁 辛 : 89세 乾命 (건륭황제 어조) => 본명은 얼마나 풀기에 난해한지 松栢송백이 볼 때마다 희신이 달랐던 기억이 난다. 관살 혼잡이 가장 큰 문제이니 식상제살격이라고 처음에는 보았는데, 나중에는 양인대살격으로 보았다가 다시 식상제살격 다시 양인대살격으로 보면서 볼 때마다 달리 보았던 명조이다. =>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양인대살격에 재자약살격으로 결론을 내었다. 丙火는 생극제화에 간여하지 않는다고 보아서 관살혼잡이 중요 변수가 아니라고 보았다. 설령 관살 혼잡이 문제라고 해도 火가 용신이니 혼잡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본 것이다. 식상제살생재격과 재자약살격은 희기가 닮아서 같은 형태의 명조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낸 결론이 과연 맞을까? 볼 때마다 희신이 달랐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인데. 본명의 핵심적 희기는 土가 기신이냐 水가 기신이냐이다. => 戊子대운 己未년에 사망했으니 己未년을 중시하면 土인수가 도식하는 기신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가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 이론적 근거는 午中에 己土가 있어서 火克金을 방해하고 있어서 土가 문제이니 土를 해결해주어야 하므로 재자약살격으로 볼 수가 있다. 반면에 戊子대운을 중시하면 천간으로는 土運이지만 지지로는 북방 水運이기도 하니 북방 水運이 흉해서 사망했다고 볼 수도 있다. => 이제부터 건륭황제의 약력을 보면서 연구해 보기로 한다. 고전에서는 대운수가 표시되지 않는 점이 애로 사항인데 요즘은 컴퓨터 만세력이 대운수를 표시해주고 있다. 85 75 65 55 45 35 25 15 05 ― 02 09 06 05 * 1735년에 황제에 즉위했다. => 1735년은 乙卯년이다. 25세 乙卯년은 乙未대운과 甲午대운이 교체되는 과도기이다. 이때는 木旺한 해로 볼 수가 있는데, 이 木은 木生火하는 木이기도 하고 木克土해서 水식상을 보호해주는 木이기도 하다. * 1799년 02월 07일에 사망했다. => 1799년 02월 07일은 89세 戊子대운 己未년 丙寅월 壬戌일이다. 천간으로는 丙辛合과 丁壬合이 있고, 지지로는 子午沖과 午未合이 있고 寅午戌 火局과 卯戌合도 있다. 전반적으로 火土가 왕성한 날로 볼 수가 있다. 그러면 火土의 효살이 조합됐을 때 사망했다고 볼 수가 있다. => 이제 화신의 명조와 궁합을 살펴보기로 한다. 고전에 나오는 명조로 만세력에서 생일을 찾아보니 양력 1750년 08월 31일 출생이다. 83 73 63 53 43 33 23 13 03 ― 00 07 04 03 甲 癸 壬 辛 庚 己 戊 丁 丙 --- 壬 庚 乙 庚 : 50세 乾命 (화신 명조) 午 巳 辰 卯 寅 丑 子 亥 戌 --- 午 子 酉 午 => 인터넷 자료를 보니 건륭황제 때인 20세 丁亥대운 己丑年에 궁중에 들어가 황제의 가마를 간수하는 일을 하다가 건륭황제에게 발탁되어 27세 戊子대운 丙申年에 군기대신에 임명되고 이후 31세 戊子대운 庚子年부터는 군주 대리인이 되어 막강한 권력을 이십여 년 간 행사하면서 뇌물 왕으로 이름을 날리다가 50세 庚寅대운 己未년에 사형당했다고 한다. 85 75 65 55 45 35 25 15 05 83 73 63 53 43 33 23 13 03 ― 00 07 04 03 甲 癸 壬 辛 庚 己 戊 丁 丙 --- 壬 庚 乙 庚 : 50세 乾命 (화신 명조) 午 巳 辰 卯 寅 丑 子 亥 戌 --- 午 午 酉 午 => 묘한 점은 건륭황제와 똑같이 양인격에 庚午일주라는 점이다. 특이할만한 점은 庚午년 庚午일로 연일동 전지살을 놓은 점이다. 전지살의 특징은 하극상이라고 하는데, 연일동 전지살은 라이벌 의식이 아주 강하다. => 두 명조 모두 土가 기신인 명조에 水木이 필요한 명조인데, 건륭황제는 지지에 子水와 卯木이 있고, 화신은 천간에 壬水와 乙木이 있어서 서로 보완하고 있다. 두산백과 건륭제 [乾隆帝] 중국 청나라 제6대 황제(재위 1735∼95). 조부 강희제에 이어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강희 ·건륭 시대’라는 청나라 최성기를 이룩하였으며, 이 시기에 중국 문화가 유럽 사회에도 널리 알려졌다. 출생-사망 : 1711.9.25 ~ 1799.2.7 국적/왕조 : 청(淸) 재위기간 : 1735년∼95년 본명 : 홍력(弘曆) 별칭 : 시호 순황제(純皇帝), 묘호 고종(高宗), 십전노인(十全老人) 활동분야 : 정치 이름 홍력(弘曆). 시호 순황제(純皇帝). 묘호 고종(高宗). 옹정제(雍正帝)의 넷째 아들로, 모후는 유호록(鈕祜祿: 弘毅公額亦都의 曾孫女)이고 황후는 부찰(富察: 察哈爾總管李榮保의 딸)이며 아들 17명, 딸 10명을 두었다. 옹정제가 제정한 태자밀건법(太子密建法)에 따라 1735년 황태자를 거치지 않고 바로 즉위하였다. 조부 강희제(康熙帝)의 재위기간(61년)을 넘는 것을 꺼려 재위 60년에 퇴위하고 태상황제가 되었는데, 이 태상황제의 3년을 합하면 중국 역대황제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길다. 조부 때부터의 재정적 축적을 계승하여 안정되고 문화적으로도 난숙한 ‘강희 ·건륭 시대’라는 청나라 최성기를 이룩하였다. 초기에는 민중을 계도하고, 만인(滿人) ·한인(漢人) 간의 반목을 막고, 붕당의 싸움과 황족의 결당을 금하는 등 내치에 전념하였으며, 만년에는 중가르 평정 2회(1754 ·1757), 위구르 평정(1759), 대금천(大金川) 평정(1749), 대 ·소금천(大小金川) 평정(1776), 타이완(1788) ·미얀마(1778) ·베트남(1789) ·네팔(1790 ·1792) 등의 원정과 평정 등 10회에 걸친 무공을 세워 스스로 십전노인(十全老人)이라 불렀다. 또 조부 강희제를 본떠 남순(南巡) 6회, 동순(東巡) 5회, 서순(西巡) 4회의 내지 순회도 하였다. 그러나 많은 외정(外征)과 내순(內巡), 천수연(千叟宴) 등의 사치로 막대한 경비를 낭비하여 만년에는 쇠운을 가져왔다. 정치적으로도 그가 총애하던 화신(和珅)의 전횡과 관리의 독직(瀆職), 만주인 ·무관들의 타락 등이 1796년 백련교(白蓮敎)의 난 때 표면화되었고, 각지에 반란이 일어나자 1795년 가경제(嘉慶帝)에게 양위했다. 문화적으로도 융성하였다. 예수회 선교사들을 통해 서양의 학문·기술이 전래되고, 중국 문화가 유럽에 널리 알려지는 등 국제 교류도 확대되었다. 한편 고증학의 번영을 배경으로 《사고전서(四庫全書)》가 편집되고 《명사(明史)》가 완성되는 등 수사사업(修史事業)도 활발하였다. 화신[和珅] 중국 청나라 중기의 정치가. 건륭제의 총애를 받아 숭문문 세무감독(崇文門稅務監督) 등의 지위를 이용하여 뇌물을 모으는 등 횡포가 극에 달하였다. 건륭제가 퇴위한 후 가경제(嘉慶帝)는 그를 체포하였고, 대죄 20조를 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였다. 출생-사망 : ? ~ 1799 자 : 치제(致齊) 국적 : 중국 청(淸) 활동분야 : 정치 자 치제(致齊). 정홍기만주기인(正紅旗滿洲旗人)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입신양명하여 건륭제(乾隆帝)의 총애를 받고, 1769년 3등경거도위(三等輕車都尉) ·3등시위(三等侍衛)가 된 후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1776년 군기대신(軍機大臣), 이어 호부상서(戶部尙書) ·의정대신(議政大臣)에 임명되기에 이르렀다. 건륭조의 번영하는 시류를 타고, 숭문문 세무감독(崇文門稅務監督) 등의 지위를 이용하여 뇌물을 모으는 등 횡포가 극에 달하였다. 건륭제가 퇴위한 후 가경제(嘉慶帝)는 그를 체포하였고, 대죄 20조를 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였다. 그의 전재산은 몰수되었는데, 황제의 재산보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화신 [和珅] (두산백과)
글쓴이: 인당(仁堂) 2008.03.09 06:54 http://cafe.daum.net/2040/MsI/22310
己庚辛壬癸甲乙丙 --- 丙 庚 丁 辛 : 乾命 (高宗純皇帝禦造)
丑寅卯辰巳午未申 --- 子 午 酉 卯
天干庚辛丙丁,正配火煉秋金;地支子午卯酉,又配坎離震兌。支全四正,氣貫八方,然五行無土,雖誕秋令,不作旺論。最喜子午逢沖,水克火,使午火不破酉金,足以輔主;更妙卯酉逢沖,金克木,則卯木不助午火,制伏得宜。卯酉爲震兌,主仁義之眞極;子午爲坎離,宰天地之中氣。且坎離得日月之正體,無消無滅,一潤一暄,坐下端門,水火旣濟。所以八方賓服,四海攸同,金馬朱鳶,幷?版圖之內,白狼元兎,鹹歸覆?之中,天下熙寧也。
천간이 경신병정이라, 가을 금을 화가 단련하는 바른 배치이다. 지지 자오묘유는 감리진태의 온전한 사정방의 배치로 기운이 팔방을 꿰뚫는다. 그러나 오행에 토가 없으니 비록 가을에 태어났다고 해도 왕하다고는 논할 수 없다. 가장 기쁜 것은 자오충을 만난 것이다. 수극화가 됨으로써 오화가 유금을 깨지 못하게 하여 일주를 보좌하기에 족하다. 다시 묘유충을 만난 것도 묘한데, 금극목으로 곧 묘목이 오화를 돕지 못하게 한 것이 제복의 마땅함을 얻었다.
* 적천수천미에 맨 먼저 나오는 예문 사주로서 청나라 건륭황제 명조이다. 淸 최고의 전성기 시대를 누린 황제로서 무려 60년 동안 황제 자리에 앉아 있었고, 물러나서도 3년 동안 황제의 권위를 누렸다. 최장수 황제였다. 1799년 己未년에 89세로 사망하였다.
* 관살혼잡이다. 정관과 편관의 카리스마를 공유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다.
[송백 생각]
子 丑 寅 卯 辰 巳 午 未 申 --- 子 午 酉 卯
戊 己 庚 辛 壬 癸 甲 乙 丙 --- 丙 庚 丁 辛 - 89세 乾命 (건륭황제 어조)
子 丑 寅 卯 辰 巳 午 未 申 --- 子 午 酉 卯
戊 己 庚 辛 壬 癸 甲 乙 丙 --- 丙 庚 丁 辛 : 89세 乾命 (건륭황제 어조)
子 丑 寅 卯 辰 巳 午 未 申 --- 子 午 酉 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