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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영성 (김현진 교수 특강)

작성자기쁨지기|작성시간15.03.13|조회수227 목록 댓글 0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영성 (김현진 교수 특강)


1. 예수 영성

브루더호프의 일반적 기초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의 삶의 모범이다. 브루더호프는 공동체의 진정한 힘은 다름 아닌 ‘예수’라고 말한다. J. Heinrich Arnold는 기록하기를;

   "비록 우리가 우리 형제 자매들에게 충실하리라고 서약하였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우리 삶을 드린 것은 공동체나 교회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 즉 우리가 자신을 온전히 바친  그 분께 대한 것입니다 … 완전한 공동체의 삶에 대한 우리의 증언 - 예수님이 사람들을 모으시고 연합케 하셨다는 사실 - 은 전적으로 그 분의 말씀과 그 분의 성품에 입각하고 있습니다.”


2. 사랑의 영성

브루더호프의 신앙의 기초는 예수님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의 계명, 그리고 비폭력에 대한 그의 가르침, 또한 그들의 공동체 생활에 필수적인 억압받는 사람들과  각 개인 회원을 향한 긍휼(compassion)이다.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예수님을 향한 그 신앙 - 철저하고도 근본적인 기독교 신앙(Christianity)으로써 맺어져 있다.

 

3.  공동체 비전

브루더호프는 공동체적 삶 자체에 대한 강한 확신과 깊은 영성을 가지고 있다. 공동체 설립자인 Eberhard Arnold는 공동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공동체 안에서의 삶은 우리들에게 필수적이다. - 그것은 우리가 행동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결정하는 불가피한 의무(must, 당위)이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방식을 택하는 우리의 선택에 결정적이었던 것은 우리의 선한 의도나 노력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the Source) 안에 있는 그것(공동체)의 기원(origin)과 능력이라는 어떤 ‘확실성’에 의해 압도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 근원으로 인식한다. 우리는 반드시 공동체로 살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모든 생명은 공동체적인 질서와 공동체를 향한 활동 안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4.  성령의 인도와 나타남

또한 Arnold는 공동체는 성령의 역사임을 언급한다. “우리는 성경적 예언과 초대 기독교 이래로 공동체로 이끄신 동일하신 성령에 의해 이끌림을 받았으므로(compelled) 공동체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공동체 생활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며, 그들의 피할 수 없는 책임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략) 따라서 브루더호프는 부루더호프와 같은 일종의 형제적 삶의 형태는 분리된(특별한) 소명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능한 것이라고 간주한다. 브루더호프 회원의 하나인 Charles Moore는 ”복음으로의 초대, 새로운 삶으로의 초대, 공동체로의 초대는 모든 구도자(seeking person)를 위한 것이다.”고 말한다.

 

5.  산상수훈의 영성

브루더호프는 산상설교에 대해 매우 강조한다. 브루더호프는 그리스도의 영과 성경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산상설교의 가르침은 그들의 공동 생활의 목표이자 기초로 간주한다. 부루더호프는 산상설교가 그들의 신념에 핵심적임을 확신한다. 브루더호프의 창립자의 부인인 Emmy Arnold는 그들의 초기 단계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그 모든 것은 베를린의 우리 집에서 논의 되었어요. 종종 80명 또는 100명의 사람들이 찾아 왔어요 - 노동자, 예술가, 학생, 무신론자, 복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그리고 퀘이커교도 등. 우리들의 토론은 산상설교에 집중되었고, 우리들 모두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불타 올랐어요;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만 하는가?”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삶이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후략)


브루더호프는 주장한다: “산상설교는 우리에게 그것을 실천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말씀에 신실한 모든 사람에게 그 길은 매우 분명합니다.” 브루더호프는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산상설교의 삶이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산상설교의 실천에 관해서 신학교들과 그 주변(periodiclas)에서 수많은 논쟁과 토의가 있다. 부르더호프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생활을 통한 산상설교의 실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부루더호프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생활을 관해 고찰함으로써 산상설교의 실천에 대한 논쟁을 깨끗하게 씻어버린다.

 


6. 순종과 순명

순종하는 마음(surrendered will)은 형제적 삶을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 J. Heinrich Arnold는 브루더호프 공동체에서 인간적 삶의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주장한다:

   “무엇이 브루더호프인가? 만일 우리가 우리 마음을 우리와 유사한 배경을 가진 사람만을 섬기려는 다양하고 별난 성질(mold)을 가진 기독교 공동체에 연결시키려면, 우리는 시작하기도 전에 고갈될 위험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을 완전히 포기하고 우리 자신을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에 허용하여야 한다.”


J. Heinrich Arnold는 공동체 생활이 어떻게 자발적인 희생과 순종과 헌신을 요구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공동체 생활은 불에 의한(화형당하는 바와 같은) 순교와 같다: 그것은 우리의 강점을 매일 희생하는 것이며 우리의 모든 권리와 요구를 희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7. 형제애와 연대

형제애(Brotherhood, 가족됨)는 브루더호프에서 가장 중추적인 것이다. J. Heinrich Arnold 다음과 같이 언급하다:

   “공동체 그 자체가 결정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이 가장 결정적인 것이다. 노동의 공동체, 미덕의 공동체, 식탁의 공동체는 다만 사랑의 열매일 뿐이다.”


공동노동(Working together)과 재산의 공유(a common purse)는 형제적 관계를 실제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들은 노동을 통한 형제적 결속(Brotherhood)을 증언한다:

   “노동은 사랑을 가시적으로 만든다. 공동 세탁소에서 옷을 세탁하거나,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공동체의 병원에서 아기의 체중을 달거나, 혹은 수도관을 고치든지 우리는 공동 노동(communal work)을 서로를 향한 우리의 사랑의 실제적인 표현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공동체 생활을 말할 때 가장 초보적인 것이다. 브루더호프에서 형제적 결연과 사랑은 개념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 생활에서 실제로 실천되고 있다.

 

 

8.  프락시스

브루더호프에서 실천의 영성(the spirituality of practice)은 두드러진 특징이다. 회원의 하나인 Bob Broucher는 “우리는 공동체 즉 전쟁터 - 우리가 말하는 바의 의미를 입증할 수 있는(해야하는) 장소로 부름을 받은 것 같아요.” 부루더호프의 회원에게 행동(work, 노동)은 진정한 영성의 여과 과정이다. 그들에게 몇 날 몇 시간 동안 예배를 위해 모인다는 것은 충분치 않다. 그들은 종교(religion, 형식적 영성 의미)에 흥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칠일간 사람들이 기쁨과 좌절, 웃음과 눈물을 함께 나누는 보다 깊은 공동체에 관심이 있다. 브루더호프는 ‘그들의 서로에 대한 사랑’ - 공동체의 진정한 척도(test) -이 그들의 매일의 일상적(mundane, 세속의) 삶 가운데 증명되지 않으면, 예배드리는 것과 같은 영적인 활동을 위해 모이는 것은 쓸모없다고 본다.

 

 

9. 기도의 영성

실천의 영성이 강조된다고 하더라고, 기도의 실천이 무시되지 않는다. 브루더호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생활에 있어 다양한 방식으로 기도하도록 격려 받는다. Christoph  Arnold는 기도생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기도는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여 있는 우리의 영을 반영한다: 우리는 항상 깊은 곳(depth)에 있고 그분의 도움과 인도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그분은 언제나 우리를 초월해(above) 계시고, 확실하고 안전하며 강하시다  … 기도는 형식적일 필요가 없다. 내 아내와 나에게 있어 기도는 우리의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우리는 일어나면 기도하고 잠들기 전에 기도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보다도 자주 기도하며 어떤 사람들은 보다 적게 기도한다. 어떤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기도서를 사용한다. 말하며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무 말도 사용하지 않고 (침묵으로)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들의 기도가 순수한 이상, 그리고 공허한 의식이 아닌 이상, 어떻게 기도하는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기도를 하기 위한 공간(room, 여유)을 그 어딘가에 만드는 것이다.”

 

 


10.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브루더호프의 중요한 명령이다. Eberhard Arnold는 정의하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안에서의 공동체, 형제적 공동체의 일부로서의 사회정의라는 하나님의 공의안에서의 공동체이다.” 브루더호프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고자 추구하며, 그들은 그 나라의 삶이 함께 사는 삶을 통하여 가능하다고 믿는다. 브루더호프는 기독교 공동체를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삶을 위한 통로(채널)로 간주한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실재는 가시적이며, 이는 부분적으로 브루더호프 안에서 사랑의 공동체를 통하여 실현되었다고 믿는다.

 


11.  평화주의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평화주의는 브루더호프 영성에서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브루더호프는 공동의 선(common good)을 위하여 자기 이익을 포기하는 새로운 사회(a new society)를 창조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며, 전쟁을 초래하는 사회적 경제적 구분(division)을 제거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의 모델을 만든다. (중략) 브루더호프의 회원은 그 어떤 나라의 군대(the armed forces)에도 복무하지 않는다. 브루더호프는 신중하게 자본의 횡포와 낙태, 전쟁참가 등에 반대하여 외치며 사회 정의를 위한 사역에 자신들을 드리고자 시도하여왔다.

 

 

종합

브루더호프의 영성은 1세기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과 16세기 재세례파의 철저한 기독교 공동체에 기초하고 있다. 브루더호프는 기독교 신앙의 맥락에 기초한 공동 생활에 진지하다. 예수님의 산상설교는 그들의 공동생활의 기초를 형성한다. 브루더호프는 예수님의 산상설교는 사변적 진리가 아님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계명이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생활을 통해 실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에 대한 헌신, 서로에 대한 사랑과 일치, 사랑의 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감, 그리고 평화주의는 브루더호프의 영성의 기저에 깔려 있는 기초이다. 브루더호프는 성경에 입각한 그들의 진지한 믿음이라는 의미에서 복음주의에 가깝다. 그들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그 말씀 그대로 실천하고자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철저한 복음주의라고 불리워질 수 있다.


* 출처 : 김현진 교수의 공동체선교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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