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단은 다윗 시절에 그 사역을 펼친 선지자입니다. 이미 사무엘 시절부터 이스라엘에는 선지자 양성을 위한 학교가 본격화 되었습니다. 물론 나단이 사무엘이 사역한 선지자 학교의 출신인지는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사후에 그의 뒤를 이은 가장 확실한 선지자가 곧 나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단 선지자는 사무엘과는 판이하게 다른 입지에서 그의 사역을 감당합니다. 선지자 사무엘은 참으로 불같은 사자였습니다. 선지자로서는 드물게 왕의 전면에 등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불의 사자였습니다. 왕의 잘못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응징하고 또한 이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실하게 전합니다. 가장 단적이 예가 사울이 사무엘의 도착 전에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제사한 일입니다. 그때에 사무엘은 저 유명한 사자후를 토해냅니다. 곧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입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천 번의 제사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한 번의 순종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울은 하나님께서 버리신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배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예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예배가 소중한 것입니다.
반면 나단 선지자는 어떻습니까? 나단은 가급적 왕의 역사 배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뿐 그렇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나단은 사무엘과는 달리 조용하게 그의 사역을 감당합니다. 그리고 나단의 이러한 모습은 향후 선지자의 삶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분명 이스라엘은 선지자의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역사는 언제나 왕들의 역사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왕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통치할 때에는 선지자들은 언제나 이들의 배후에 있을 뿐입니다. 반면 왕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통치하지 아니하면 어떻습니까? 그 때에는 선지자들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여 왕들에게-대부분은 폭정을 행하는 악한 왕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결국 선지자들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는 것은 결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을 때에 선지자들이 출현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선지자가 왕들의 배후에 있다는 것을 가장 분명하게 그려준 분이 곧 나단 선지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의 통치시기에 활동한 분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나단과 얽힌 이야기를 몇 가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고자 서원할 때입니다. 나단은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전하여 성전 세움이 불가하다는 것을 통지합니다. 다만 다윗의 뜻을 기쁘게 받고 그의 아들을 통해 성전이 세워짐을 일러줍니다.
또 하나는 다윗이 죄를 지었을 때입니다. 나단은 하나의 예를 들어 다윗에게 호통을 칩니다. “바로 당신이 그 사람이요”라는 책망에 다윗은 침상을 적시는 참회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립니다. 그리고 아도니야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 하나님의 뜻을 상기시키며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줄 것을 적극적으로 권한 분이 곧 나단입니다. 선지자는 이처럼 위기 속에서 그 존재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