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동해안 '모세의
기적'(전남 진도) 신비의 바닷길
'바다가 갈라진다. 길이 생긴다. 섬과 섬이 이어진다. 이곳
진도에서 저곳 모도리까지…' 전남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띠섬) 사이의 바닷길. 이곳 바다는 해마다 음력 3월 보름을 갓 지난
대사리 때면 바다 사이로 길이 열리면서 두 섬이 서로 이어진다. 몰려온 관광객들은 드러난 바닷길을 오가며 조개·낙지·해삼·전복 등을 줍기도
한다.
이곳이 바다 밑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는 관광명소로 국내외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75년부터다. 71년부터
75년까지 주한 프랑스 대사를 지낸 피에르 랑드가 현장을 목격한 뒤 이를 처음으로 프랑스 신문에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소개한 것이
이때이며 이어 일본
지난 84년 당시 광주 광산서초등교 문종안 교사(현 광주시교육청 장학사)와 양동초등교 김양임 교사(현 선광학교 교사)가 전국과학전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5개월 동안 현장을 조사하고 관측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개해현상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4m 이상으로 크게 나는 때면 언제나 일어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지역의 평균수심은 5∼6m여서 4m 이상 물이 빠지면 평균보다 수심이 얕은 곳이 드러나는 것이다.
음력 2, 3, 4월과 9, 10, 12월의 보름사리인
17~20일께가 바로 그런 때이다. 따라서 1년에 10여일간 드러나는 셈인데 가을에는 바닷길이 드러나는 때가 이른 새벽이어서 일반인이 관광하기는
쉽지 않다.
진도에서 모도까지 바닷길이 모두 드러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0∼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회동과 모도 사이 바다 한가운데가 먼저 드러나면서 섬 양쪽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드러난 바닷속의 너비는 보통 30m 안팎으로 넓을 때는 40m 이상일 때도 있다.
개해현상이 계속되는 시간은 때에 따라 차이가 많지만 짧게는 1시간, 길면 2시간까지다. 육지에서 바다로 바람이 세게 불면 개해시간이 길어지고 반대로 불면 짧아진다. 드러나는 길이는 모두 2.8㎞로 회동마을에서 보면 완만하게 굽어진 S자 모양을 하고 있다.
이처럼 넓고 길게 드러나는 진도의 개해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인가. 해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썰물로 바닷물이 줄어들 때 해저의 상대적으로 높은 지형인 모래톱이 드러나는 현상인 것이다.
바닷물이 들고나는 이른바 밀물·썰물(조석)현상이 생기는 원인은 잘
알려진 것처럼 지구에 작용하는 달의 끌어당기는 힘, 즉 인력 때문이다.이 조석에 의한 바닷물의 흐름은 해저의 조개껍질이나 암반 등을 침식하고
운반해 한곳에 쌓이게 한다. 회동과 모도 사이의 모래톱은 이렇게 쌓인 것이다. 이처럼 바닷속의 모래톱이 자라 육지와 연결되면 지형학에서는 이를
육계사주라고 부른다.
조석의 차가 큰 편이어서 사주가 발달하기 쉬운 지형인 우리나라의 경우 원산만을 싸안 듯이 길게 튀어나온 함경남도의 호도반도가 대표적인 육계사주이다.
진도의 이 육계사주는 언제부터 쌓이기 시작했으며 왜 회동과 모도 사이에 쌓였을까. 그리고 썰물 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또 언제부터일까. 문·김 두 교사의 연구에 의하면 육계사주의 모양은 높이 1.5m의 둑 모양으로 돼 있으며 동쪽은 경사가 가파른 반면 서쪽은 완만하게 펼쳐진다. 또 퇴적물의 구성물은 조개껍질과 자갈이 90%이며 입자의 크기는 회동쪽으로 갈수록 작아지는 것으로 드러나 이 사주는 모도쪽 암반층으로부터 자라나 회동쪽으로 연결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조석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발생하는
급류를 이용해 왜군을 물리친 명량대첩을 이룬 곳이 바로 이곳 진도대교 부근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진도 인근은 물살이 매우 빠르다. 그런데도
회동과 모도 사이 해저에 퇴적물이 쌓일 수 있는 것은 이 일대에 작은 섬들이 많이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진도·금호도 외에 9개의 작은 섬들로
인해 유속이 갑자기 떨어지고 이 때문에 조류에 실려온 부스러기들은 퇴적되는 것이다.
이 사주가 쌓이기 시작한 시점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연구가 이뤄져 있지 않지만 대략 2천5백년쯤 전부터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지막 간빙기인 1만5천년 전부터 6천년 전 사이 높아져 있던 해수면이 다시 후퇴하고 현재의 수위로 안정되면서 지금과 같은 해안선이 짜인 것이 바로 이 무렵부터이기 때문이라는 게 서울대 박용안 교수(해양학)의 설명이다.
이 바닷길이 드러나 보이기 시작한 시점도 아직은 알 수 없는 형편이다. 다만 이 지역 주민들 사이에 내려오는 영등살의 전설에 담긴 내용을 분석해보면 지금부터 약 3백여년 전인 1680년께가 아닐까 싶다.
전설에 따르면 제주로 귀향가던 손동지라는 사람이 풍랑을 만나 회동에 표류한 것이 1480년이고 뽕(성이 봉씨인) 할머니가 피난간 가족을 만나기 위해 모도로 가고 싶었던 소원을 이룬 것이 그 2백여년 뒤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이곳 사주가 현상태에서 더 높아지지도 깎여 나가지도 않는 안정상태를 보이고 있어 진도와 모도가 쉽게 연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애초 활모양이던 사주가 20년새 S자 모양으로 휜 데서 보듯 조류에 의한 변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어서 언제까지 지금의 모양을 유지 할 것인지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