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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에서 펜을 꺼냈다. “문제없군요.” 하고는 서명과 날인을 마쳤다.
“수고하셨습니다. 이걸로 계약은 끝났습니다. 무사히 성립됐습니다.” 부동산 남자가 목소리를 높이며 서류를 정리했다. 큰 거래는 아니지만 중개수수료를 받게 되어 나름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양쪽 모두 서류를 받고 나자 시게카즈가 맨 먼저 일어섰다. 그러나 기미코는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런 기미코의 얼굴 앞으로 하루미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뭐지? 하는 듯 기미코가 얼굴을 들었다.
“계약이 잘 끝났다는 악수예요.” 하루미가 말했다.
“아, 그래.” 기미코가 하루미의 손을 잡았다. “미안해.”
“왜 사과를 하세요?” 하루미는 웃어보였다. “잘됐잖아요. 서로가 만족하니까.”
“그건 그렇지만.” 기미코는 눈을 맞추려 하지 않았다.
이봐, 시게카즈가 말했다. “뭐 해? 안 갈 거야?”
알았어,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기미코는 옆에 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봤다. 얼굴에 망설이는 기색이 보였다.
“할머니는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하루미가 말했다. 히데요는 왕고모님이지만 전부터 할머니라고 불렀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래. 그럼, 부탁해. 엄마 그래도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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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래도 괜찮아.” 할머니가 조그맣게 대답했다.
“알았어. 그럼 하루미, 부탁할게.”
하루미가 대답도 하기 전에 시게카즈는 사무실을 나서고 있었다. 기미코는 미안한 듯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편을 뒤따라 나갔다.
은행을 나온 하루미는 근처 주차장에 세워 놓은 BMW에 할머니를 태우고 할머니 집으로 갔다. 정확히 말하면 이제는 ‘할머니 집’이 아니다. 다무라 씨 집은 하루미 것이 되었다. 조금 전에 맺은 계약으로.
올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노쇄 때문이었다. 마지막에는 할머니가 대소변까지 받아냈다. 오랜 세월에 걸친 할머니의 병구완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할아버지가 얼마 못 사실 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하루미는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유산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집 문제였다. 할아버지네는 예전엔 부자였지만 이제는 집 말고는 재산이라 할 만한 게 없었다.
최근 이삼 년 동안 부동산은 계속 올랐다. 도쿄에서 두 시간쯤 걸리니 약간 불편하긴 했지만 자산 가치는 충분했다. 딸 부부, 특히 사위가 눈독을 들이지 않을 리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위는 여전히 수상쩍은 사업에 손을 대는 모양이었는데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를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할아버지의 49제가 지나자 기미코가 할머니에게 연락을 했다. 유산 상속 건으로 상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