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 지계(持戒) 바라밀(波羅蜜)
지계(持戒) 바라밀(波羅蜜)은 다섯으로 나뉜다. 계율(戒律)의 자성(自性), 계율(戒律)을 수행(修行)함에 들어가는 방편(方便), 계율(戒律)의 차별(差別), 계율(戒律)을 수행(修行)할 때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그리고 이상의 것을 모두 총망라(總網羅) 함이다.
번뇌(煩惱)를 받아들이고, 죄(罪)를 범(犯)하지 않기 위하여, 마음 속에 묻혀 있는 모든 번뇌(煩惱)의 불을 꺼서, 청정(淸淨)하게 하기 위하여, 안락(安樂)의 인(因)으로, 모든 성인(聖人)들이 의지했던 지혜(智慧)가 계율(戒律)이다.
남을 해치는 근본은 모두 마음에서 오는 것이니, 이러한 마음을 되돌려서 버리고자하는 마음이 계율(戒律)이다. 이러한 마음을 닦아 익히고, 증진(增進)시키고, 원만(圓滿)하게 하여 지계(持戒) 바라밀(波羅蜜)에 이르게 하여야 한다.
모든 중생들이 위해(危害)를 벗어나 안전(安全)하게 하는 것이 지계(持戒) 바라밀(波羅蜜)을 원만(圓滿)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지금도 모든 중생들이 위해(危害)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지계(持戒) 바라밀(波羅蜜)이 원만하지 못한 것이 되고, 모든 중생들을 위해(危害)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을 것이란 말이 된다. 그러므로 수행자가 해치려는 마음이 남아 있는지를 먼저 점검(點檢)하여 제거(除去)하는 것이 지계(持戒) 바라밀(波羅蜜)의 수행(修行)의 근본이다.
계율(戒律)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계율(戒律)을 증진(增進)하려면 십불선(十不善, 不殺生 不偸盜 不邪淫 不妄語 不兩說 不惡口 不綺語 不貪慾 不瞋恚 不邪見)을 버리는 것이다. 둘은 자성(自性)을 증진(增進)하려면 신구(身口) 업(業)의 일곱 가지 악업(惡業, 不殺生 不偸盜 不邪淫 不妄語 不兩說 不惡口 不綺語)을 모두 버려야 한다. 셋은 그 일곱 가지 악업(惡業)의 자성(自性)을 버리는 일이다.
여기에 버려야 할 법상(法相)이 있다. 불탐(不貪)과 진에심(瞋恚心)의 소멸(消滅) 및 정견(正見, 不邪見) 등 세 가지의 법을 전부(全部) 구족(具足)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등하게 일으키는 행과 함께 계율(戒律)을 증진(增進)하여 말함이 곧 십업도(十業道)이다.
이와 같이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 행위(行爲)의 학습(學習)을 수행한다 함은 모든 중생들이 원만한 부처의 계율을 장엄(莊嚴)하게 갖추게 하고, 실천(實薦)을 통하여 그 뜻을 수행하게 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먼저 자기의 계율(戒律)을 청정(淸淨)하게 하는 능력(能力)을 갖춰야 한다. 만일 자기의 계율이 먼저 청정하지 못하고 쇠퇴하였다면, 악취(惡趣)로 떨어져 남을 돕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의 깨달음도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계율(戒律)을 청정(淸淨)하게 가지고자 한다면, 계율(戒律)을 지킴에 견고(堅固)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계(戒)를 어긴 허물과 계(戒)를 지킨 장점(長點)을 수행(修行)하여 지켜야 할 뜻을 일깨워야 한다.
출가인(出家人)은 아첨(阿諂)하는 말을 하지 않고, 힘들여 어려움을 들이지 않아도 수행의 재화(財貨)가 저절로 모여들고, 힘으로 강압(强壓)하지 않아도 모든 이가 존경(尊敬)하며, 자기 권속(眷屬)의 종성(種性)은 당연하고,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자애(慈愛)롭게 대하여야 한다.
계율(戒律)을 지키는 것은 자기가 악취(惡趣)로 빠지는 두려움이나 천상(天上)의 원만(圓滿)한 성사(盛事)를 바라는 것이 아니요, 모든 중생들을 계율(戒律) 안에 안립(安立)시키고 보호(保護)하고자 함이다.
계율(戒律)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율의(律儀)의 계율이요, 둘째는 선법(善法)을 모으는 계율이요, 셋째는 중생(衆生)들에게 이익을 주는 계율이다. 이러한 삼종계(三種戒)는 율의계(律儀戒)를 근본으로 해서 다른 계(戒)도 함께 지켜야 한다.
율의계(律儀戒)를 지키고 보호한다면, 여기에서 다른 두 계율도 지키고 수호하게 되며, 만일 율의계(律儀戒)를 지키지 못하고 수호하지 못하면, 나머지 두 계율 또한 지키지 못하며 수호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보살의 율의계(律儀戒)가 기울면, 모든 보살율의(菩薩律儀)가 기울게 된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누가 율의계(律儀戒)의 개차(開遮, 계율을 어기는 것을 경우에 따라 허락하거나 금함) 등의 설(說)을 포기(抛棄)하고, 보살(菩薩)의 다른 학처(學處)를 배우겠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보살 계율에 대한 학처의 요지(要旨)를 모르고 말하는 것이다. 율의계(律儀戒)는 다른 두 계율의 근본이고, 이 율의계(律儀戒)에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율의계(律儀戒)의 가장 중요(重要)한 요체(要諦)는 근본죄(根本罪)를 단절(斷絶)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성죄(成罪)의 중대(重大)한 과실(過失)의 요지(要旨)를 총괄(總括)한 것에 대하여 대소승(大小乘) 모두에게 말한 것이 십불선(十不善)을 끊고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십불선(十不善)의 사소한 동기(動機)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삼문(三門)을 청정하게 지켜야 한다.
이상에서 말한 의미(意味)를 총괄(總括)하면, 모든 수행의 의지할 바는 보리심(菩提心)이므로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게 증장(增長)시켜야 한다. 따라서 보리심(菩提心)은 계율행(戒律行)에 들어가는 근본이 되고, 모든 중생들의 손상(損傷)을 제어하고 그치게하는 최상(最上)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보리심(菩提心)은 높은 단계의 수행인들이 원하는 경지(境地)에 도달하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며, 초심자(初心者)는 계율의 취하고 버림, 나아가고 물러가는 내용을 마음을 다하여 공부하여 이해하여야 한다. 특히 십불선(十不善) 등의 성죄(成罪)와 차죄(遮罪)를 모두 알았다면, 방호심(防護心)을 더욱 길러야 한다.
또한 모든 근본죄(根本罪)에 대해서는 더욱 방호심(防護心)을 기르는데 노력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면 등류과(等流果)로써 다른 생(生)에도 어려움이 적고, 고(苦)도 적어서 보살의 학처를 원만하게 구족할 수 있게 된다.
[참고] 등류과(等流果)란 무엇인가
오과(五果)의 하나로서 선인(善因) 선과(善果) 악인(惡因) 악과(惡果)처럼 행위의 원인(原因)과 과보의 결과(結果)가 같은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