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2 인욕(忍辱)의 도리(道理)
인욕(忍辱)은 세 가지로 구별(區別)된다. 남이 나에게 해를 끼칠지라도 참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괴로움을 참고 흔연(欣然)하게 받아들이고, 인욕(忍辱)의 가르침에 확실하게 결정한 마음(決心)을 지니는 것이다.
첫째, 남이 자기를 해하려고 할 때, 그대로 참고 받아들이는 인욕(忍辱)은 두 가지로 나뉜다. 남이 해칠 때 참지 못하는 마음을 제거하는 것, 위해(危害)를 가하는 이를 싫어하고 잘못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다.
첫째 항목(項目)은 두 가지로 나뉜다. 나의 안락(安樂)을 방해(妨害)하고, 괴롭게 할때 인욕하지 못하는 마음을 막아내야 하고, 비방(誹謗)하고 명예(名譽)를 훼손(毁損)하고 무례(無禮)한 언사(言辭)에 인욕하지 못하는 마음을 이겨내야 한다. 무엇보다 성내는 마음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가엾게 여겨야 하는 도리를 알아야 한다.
진에(瞋恚)하는 것이 결국 누구에게 속하는가 하는 대상의 상황을 관찰하고 성내지 말아야 한다. 나를 위해(危害) 함에 대하여 화를 내는 고통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모순되는 것이다. 지금의 조그만 고통을 참지 못한다면, 앞으로 무량(無量)한 악취고(惡趣苦)의 인(因)을 분명히 빚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욕하지 못한 내가 매우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수치감(羞恥感)을 느끼고, 화를 내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해(害)를 당하여 생긴 고통은 숙세(宿歲) 악업(惡業)의 과보(果報)라는 것을 인식하고, 어떠한 상해(傷害)라도 받았다고 한다면, 이는 내가 숙세(宿世)에 남에게 지었던 악업(惡業)을 지금 인욕(忍辱)하여 갚아버린 것이 되는 것이다.
지금 참을 수 있다면, 새로운 악업(惡業)을 짓지 않게 되고, 오히려 많은 복(福)을 증장(增長)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相對方)의 공덕(功德)이 기울기를 바라지 않아야 한다. 또한 자신의 악업(惡業)을 정화(淨化)시키기 위하여 인욕한 것이기 때문에 그 위해(危害)를 은혜(恩惠)로 받아들여야 한다.
가엾게 여겨야 하는 도리(道理)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모든 중생들은 무시이래(無始以來)로 생사윤회(生死輪廻)에 자기의 부모(父母)나 친척(親戚)이나 친구(親舊)가 아닌 적이 없었음을 알아야 한다.
진에(瞋恚)의 번뇌(煩惱)란 마귀(魔鬼)가 광란(狂亂)하여 현생(現生)은 물론이고, 후생(後生)의 이익까지 파괴하고자 한다는 것을 사유하여야 한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들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미래의 이익을 포기하고 지금 화낸다는 것을 어찌 생각이나 할 것인가 하고 인욕하는 마음을 진심(眞心)으로 사유하여야 한다.
남이 나를 칭찬(稱讚)하고, 나의 명예(名譽)를 널리 전파하여 준다고 할지라도 장수(長壽)하거나, 무병(無病)하는 등으로 금생(今生)이나 내생(來生)에 아무런 이익도 끼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러한 칭찬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좋아하지 않는 것은 모래집이 허물어졌다고 칭얼대는 어린아이의 행동과 같은 것이다.
비방(誹謗)을 받는 다는 것에 대하여 사유함에는 마음이란 성품(性品)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내가 마음을 쓰지 않는다면 남에게 해를 입을 까닭이 없다. 또한 그러한 비방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이에 대한 진에심(瞋恚心)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음은 아무런 자성이나 형상이 없기 때문에 내가 마음을 여의면, 그 누구도 나에게 해를 해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만약 잠시간의 형상이 있는 몸에 애착(愛着)한다면, 육체(肉體)에 가해지는 고통(苦痛)이나 신체에 대한 형상의 변화로 해(害)를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할지라도 결국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막상 우리가 임종시(臨終時)에는 백년을 안락하게 살았거나 일년을 안락하게 살았거나 그 두 가지에 전혀 차이가 없고, 오직 허무한 기억(記憶)의 대상으로 고락(苦樂)의 차이(差異)가 전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꿈 속에서 백년의 안락을 받았거나, 잠깐의 안락을 받았거나, 잠이 깨고 나면, 안락(安樂)과 불락(不樂)의 차이(差異)가 전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양(利養)과 명예(名譽)의 애착(愛着)을 벗어나게 되면, 비방(誹謗)과 악명(惡名) 등에도 마음의 불편(不便)이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싫어하는 사람이 부귀(富貴)하게 되는 것을 싫어하고, 운이 기울어지는 것을 보고 좋아하는 마음을 제멸하여야 한다. 중생들의 이익을 위한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켰으면서도 다른 중생들이 안락을 얻음에 진에심(瞋恚心)을 내거나, 모든 중생들이 부처되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그들이 이양(利養)과 존경(尊敬)을 받는 것에 마음이 불편해 한다면, 이는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타인(他人)의 부귀(富貴)와 안락(安樂)에 질투심(嫉妬心)을 버리고, 진심(眞心)으로 마음의 즐거움을 일으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보리심(菩提心)과 중생들에게 이익과 안락(安樂)을 준다하는 것은 위선(僞善)이기 때문이다.
번뇌(煩惱)를 막는 가르침 또한 불자(佛子)의 바른 도리(道理)이니, 자기의 번뇌(煩惱)에 대한 답을 자기의 내부에서 찾아, 안으로 향하게 하여, 최고의 적(敵)인 분노(憤怒)를 부숴버리는 것이 불제자(佛弟子)들이 취하여야 할 근본 도리이다. 관찰혜(觀察慧)로 분석하여 바른 이치로 막는다면, 갖가지의 분노(憤怒)를 제어(制御)하고 인욕심(忍辱心)을 일깨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