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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부 도의 단계

5.4 자신(自身)과 타인(他人)의 교환(交換)

작성자혜천 안종률|작성시간23.06.27|조회수20 목록 댓글 0

5.4 자신(自身)과 타인(他人)의 교환(交換)

 

자신과 다른 사람을 바꾸어 관찰하는 수행(修行)의 장점(長點)과 바꾸지 않는 데서 오는 허물을 사유(思惟)하여야 한다.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고 집착하는 것은 보리심(菩提心)을 수행함에 있어서 가장 큰 쇠퇴(衰退)의 문(門)으로 들어거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그에 대비하여 남을 사랑하는 것은 일체(一體)의 모두를 원만(圓滿)하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빠른 길임을 사유(思惟)하여야 한다. 자기와 남을 동시(同時)에 속히 제도(濟度)하기를 원한다면, 그러한 자타(自他)의 교환(交換)을 비밀(秘密)한 성자(聖者)의 공교(工巧)한 행으로 가는 문(門)으로 인식(認識)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세간(世間)의 모든 행복(幸福)은 모두 남을 위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요, 세간(世間)의 모든 고통(苦痛)은 모두 자기만을 위하는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이들은 자기만을 위하고, 지혜로운 자는 먼저 남을 위하나니, 이 두 가지의 근본적(根本的)인 차이(差異)를 바르게 인식(認識)하여야 한다.

 

자기의 행복과 남의 고통을 참되게 바꾸지 못한다면, 성불(成佛)할 수있는 이가 아무도 없고, 생사윤회(生死輪廻)의 세계(世界)에서 계속 머물러 빠져나오지 못하고, 유전(流轉)하기 때문에 필경(畢竟)에는 안락(安樂)을 구할 수 없게 된다.

 

자타(自他)를 바꾸는 수행(修行)에 익숙하게 되면, 전에는 원수(怨讐)의 이름만 들어도 무서워하고 싫어하였겠지만, 자타(自他)를 바꾼 뒤에는 오히려 친구(親舊)가 없을 때는 염려(念慮)가 되는 것처럼, 자타(自他)를 바꾸는 수행(修行)에 마음이 순응(順應)하게 되면 그를 자신처럼 보고, 익숙해지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결코 자타(自他)를 바꾸는 수행의 어려움에서 물러서지 말라. 자타(自他)를 바꾸는 수행의 힘으로 전에는 어떤 이의 이름만 들어도 무서워하고 싫어하였지만, 이제는 그가 없으면 나의 기쁨도 없도다. 나의 몸을 남의 몸으로 바꿔 놓음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일 그의 몸이 나의 몸이 아니라면 그가 어떻게 나와 같은 마음을 낼 수 있으랴.

 

이처럼 장점(長點)과 과환(過患)을 잘 사유(思惟)하여 진심(眞心)으로 자타(自他)를 바꾸는 수행을 기쁘게 익힐 수 있다면, 능히 이러한 마음을 일으킬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자타(自他)의 상호(相互) 교환(交換) 방법을 수행(修行)하는 도리(道理)는 자타의 바꿈을 말하는 것으로, 자기(自己)를 타인(他人)으로 삼고, 타인(他人)을 자기(自己)로 삼는 것이다.

 

나의 안락(安樂)과 남의 고(苦)를 대치(代置)함은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집착(執着)하는 행위를 적(賊)으로 생각하고, 나의 안락(安樂)을 많게 하기 위한 행을 그치고, 남을 사랑하고 위함을 공덕(功德)으로 보고, 남의 고통을 그치어 이익되게 하도록 행동하여야 한다. 예컨대, 자기의 안락을 위한 행위(行爲)를 그치고, 남의 고(苦)를 멸제(滅除)하기 위한 행동으로 돌려야 한다.

 

나와 남의 관계에서 오는 안락(安樂)과 고(苦)의 원인은 나 자신에 대한 편견(偏見)과 나와 남을 다르게 편견(偏見)하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나의 편견(偏見)은 닦아 없애야 하고, 내가 남에 대하여 가진 편견(偏見)은 고치고 버려야 한다.

 

편견(偏見)에 대한 대치법(代置法)은 자타(自他)를 자성(自性)의 편애(偏愛)로 분별(分別)하면 안됨을 아는 것이다. 피차(彼此)란 상대적(相對的)인 것이므로 나도 그러한 편견(偏見)을 일으킬 수 있고, 그도 나를 편견(偏見)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다.

 

나와 남의 평등(平等)을 닦게 되면, 나의 보리심(菩提心)은 보다 견고(堅固)할 것이다. 자타(自他)는 오로지 상대적(相對的)인 것이요,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처럼 실체(實體)가 아니다.

 

불법(佛法)을 성취(成就)할 수 있음에 중생(衆生)과 부처는 조금도 다름이 없다. 우리가 부처를 존경(尊敬)하는 것과 같이 중생(衆生)을 존경(尊敬)하지 않음은 무슨 도리인가. 중생들의 생명(生命)을 끊는 행위는 그대를 삼악도(三惡道)에 이끌게 하고, 죽게 될 생명체를 방생(放生)하면, 그대를 선취(善趣)와 장수(長壽)로 이끌 것이다.

 

남이 주지 않는 남의 재물(財物)을 가져다가 보시(布施)하거나, 진에심을 내면서 대자비(大慈悲)를 닦는다고 한다면, 역시 악취(惡趣)나 선취(善趣)에 이끌려가게 된다.

 

특히 중생들을 연(緣)으로 하여 발심(發心)할 수 있고, 그들을 위하여 모든 행을 닦을 수 있기 때문에 성불(成佛) 또한 중생(衆生)들에게 의지하여야 하고, 중생(衆生)들에게 의지하여야 보시(布施) 등을 원만(圓滿)하게 할 수 있으니, 중생들을 기쁘게 하는 게송(偈頌)에서 말한 바와 같이 깊이 사유(思惟)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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