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공 시위' 청년은 누구인가? ... 언론이 보여주지 않은 그들의 얼굴
- 기자명 최보식
- 입력 2026.06.23 05:54
'올다르크', '산적'의 프레임
[최보식의언론=나폴리 강호논객]
자료 사진
최근 올공(올림픽공원) 시위를 둘러싼 언론 보도를 보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언론은 연일 관련 뉴스를 쏟아내지만, 그곳에 참여한 청년들이 누구인지는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어떤 언론은 ‘깨어난 청년 세대’라 평가하지만, 다른 언론에서는 ‘부정선거 음모론자’라 비난한다.
그래서 그들은 ‘애국 청년’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극우’라 불리기도 한다.
정말 ‘올공 청년’은 단일한 집단일까.
얼마 전 개표소가 위치한 핸드볼경기장 진입 시도가 있자, 출입문을 홀로 가로막은 청년이 있었다. 그는 이후 SNS에서 ‘올다르크’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일부 언론은 그를 추앙하는 누리꾼들의 행태가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올다르크’는 시위 참가자들을 대표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통해 시위 전체를 이해하려 했다. 그는 ‘올공 시위’에 참가한 수많은 청년 중 하나일 뿐이었다. 2주 넘게 지속된 이 시위에는 다양한 청년들이 참가해 왔다.
언론에서는 핸드볼경기장 출입구 앞에서 같은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만 비춘다. 그러나 그 속에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 청년들이 있었다. 어떤 청년은 구호를 크게 외쳤고, 다른 청년은 아무 말 없이 태극기만 흔들었다. 또 다른 청년은 트럼펫이나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구호에 호응했다.
다른 출입구와 광장에서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혼자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청년이 있었고, 사람들이 함께 노래할 수 있도록 첼로를 연주하는 청년들도 있었다. 여러 악기를 연주하던 청년들이 즉석으로 합주를 하기도 했고, 찬송가를 틀어놓고 함께 노래하며 춤추는 청년 그룹도 있었다.
곳곳에 붙은 도화지의 문구 역시 다양했다. '재선거'만 적힌 도화지도 있었지만,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를 주장하는 문구도 점차 늘어났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한미공조 국제수사'를 요구하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누군가는 도화지를 붙였고,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떼려 했다. 그러자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도화지를 지키기 위해 옆에 앉아 있었다.
현장에 나오게 된 이유 역시 제각각이었다. 스스로를 중도 성향이라고 말하며, 부정선거론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지방선거 당일 잠실 우성아파트 투표소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 불의를 참지 못해 그때부터 계속 참가해 왔다는 부부가 있었다. 훗날 자녀에게 "엄마는 그때 뭐 했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냥 집에 있었어"라는 대답은 하고 싶지 않아 근무를 마치고 달려왔다는 청년도 있었다.
친구를 따라 처음 현장을 찾은 청년도 있었고, SNS로만 지켜보다가 현장에 가 보고 싶었다는 청년도 있었다. 언론 보도로는 알 수 없는 현장의 분위기를 직접 느끼고 싶었다는 청년도 있었다. 주말과는 달리 참가자가 적은 월요일에 일부러 찾아왔다는 청년도 있었다.
혼자 참가하다가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다시 찾은 청년들도 있었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부부들이 있었고, 어린아이들과 함께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거나 텐트를 치고 시위와 소풍을 함께하는 가족들도 있었다.
정치적 입장과 문제의식 역시 다양했다.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현장의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반면 부정선거론을 단순한 음모론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며, 언론 보도로 드러난 선관위의 실태를 보면 부정선거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었다. 재선거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고, 선관위 개혁이나 해체에 대한 요구도 있었다. 민주주의 회복과 국민의 권리 보장, 정의 실현을 바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현장을 직접 경험한 뒤 폭력 없는 평화로운 시위라며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호소하는 청년들도 있었다. "날씨가 나쁘다고 해서 나라를 사랑하고 정의를 바라는 마음을 꺾을 수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고, 궂은 날씨에도 사람들이 계속 모이는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아직 살아 있구나"라고 뿌듯해하는 이도 있었다. "어르신들 감사합니다. 젊은이 힘이 납니다. 다치지 마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대한민국 만세!"라고 적은 도화지를 가방에 붙이고 다니는 학생도 있었다.
한편에는 자원봉사에 나선 청년들도 있었다. 도화지에 태극기와 무궁화를 그리고 구호를 적어 참가자들에게 나눠주었다. 태극기를 구입해 나눠주거나, 태극기 키홀더를 직접 만들어 배포하는 이들도 있었다. 페이스페인팅과 스티커 타투를 해 주는 학생들도 있었다. '올공 두컷'이라는 팻말을 걸고 즉석 사진을 찍어주는 청년도 있었다.
생수와 음료를 나눠주고, 모기퇴치제와 선크림을 제공한 청년들도 있었다. 간단한 의약품을 준비해 의료 지원에 나선 의사와 물리치료사도 있었다. 물품을 나르고, 쓰레기를 줍고, 비에 젖은 도화지를 떼어내는 이들도 있었다. 땡볕 아래 근무하는 경찰들에게 대형 천막을 설치해 주기도 했고, 야광봉을 들고 통행을 안내하거나 밤새 순찰을 돌며 안전을 살피는 청년들도 있었다.
시위 현장에서 숙제를 하는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보고 과외방을 연 대학생과 대학원생도 있었다. 시니어 참가자들을 위한 AI 교실을 운영하는 청년들도 있었다. 쿠팡 새벽배송을 마친 뒤 탑차를 그대로 몰고 와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아이스방' 겸 카페를 만든 청년도 있었다.
갓난아기와 걸음마를 막 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엄마들은 서로를 돌봤다. 한 엄마는 다른 엄마들을 위해 기저귀를 갈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했다. 어린아이들이 태극기와 무궁화를 그리며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올공유치원'도 자발적으로 운영됐다. SNS를 보고 달려와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어 준 청년도 있었다.
이들 모두가 '올공 청년'이었다. 시위 초기부터 참여한 한 청년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현장에 나오면서 참가자들의 의견이 다양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언론 보도는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2030 청년들이 참정권 침해에 분노해 거리로 나왔다는 점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일부 참가자들의 과격한 행동, 부정선거 주장, 봉쇄 문제 등이 부각되면서 시위 전체가 하나의 이미지로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올공'은 점차 '극우', '음모론', '봉쇄,' ‘불법,’ ‘폭력’이라는 단어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반대로 일부 청년들이 ‘올공’을 떠나 홍대에서 새로운 집회를 열자, ‘오염된’ 올공과는 달리 ‘순수한 청년집회'라는 이미지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도대체 누가 '청년'을 대표하는가. 이번 사태는 결국 이 질문으로 수렴된다.
‘올공 시위’ 중에는 극단적인 주장도 나왔고, 폭력 사건마저 일어났다. 그러나 대다수 청년들은 매우 절제된 방식으로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이처럼 시위를 하나의 이미지로 이해하려는 시선은 언론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언어 역시 프레임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시위를 계속 지켜보고 발언해왔다. 처음에는 청년들의 움직임에 대해 "우리 기성세대보다 낫다"며 감사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동시에 허위사실 유포, 출입 봉쇄, 검문검색 등을 언급하며 "원래 산적이 하는 짓"이라고 표현했다.
대통령이 실제로 문제 삼으려 했던 것은 구체적인 행위였을 것이다. 다만 '산적'이라는 비유는 사람과 행위를 동시에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결과 특정 행위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시위 참가자 전체에 대한 낙인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결국 단어 하나가 프레임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묻고 싶다. 정말 ‘올공 청년’은 모두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는 어느새 그 다양한 청년들을 하나의 이미지 속에 가두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모두를 '극우'라 불렀고, 누군가는 모두를 '애국 청년'이라 불렀다. 그렇게 실제 사람들은 사라지고, 프레임만 남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의 얼굴로 환원하지 않는 일이다. 같은 장소에 있었다고 해서 같은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다. 같은 구호를 외쳤다고 해서 같은 정치적 세계관을 가졌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시위 참가자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읽는 순간, 그 안의 다양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게 된다.
'올공 청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비로소 '청년'이라는 추상은 사라지고 저마다 다른 삶과 이유를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