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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샘레터 49/빨치산의 딸 이야기]『아버지의 해방일지』

작성자알록달록|작성시간22.10.17|조회수348 목록 댓글 0

[찬샘레터 49/빨치산의 딸 이야기]『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의 해방일지』(268쪽, 창비 펴냄, 15000원), 이 책은 ‘빨치산의 딸’로 알려진 정지아 작가의 소설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실화實話인 것같다. 실화가 아니라면, 아무리 작가래도 이처럼 핍진한 글을 쓸 수가 없다. 정지아, 이름 석 자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지아의 이름을 그 아버지가 지리산과 백아산(원래 주활동지역은 백운산이었다고 한다)에서 따와 지었다는 것 정도였는데, 이 소설을 읽고 여러 번 깜짝 놀랐다. 김대중자서전과 김대중평전 『새벽』을 쓴 지인선배가 보내준 칼럼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10080300005을 읽고, 화들짝 놀라 사보았다. 시골에 살면 역시 ‘정보와 문화의 취약지대’라는 것을 번번이 느끼며 속상한 적이 자주 있다.

 

아무튼, 이 소설 아닌 소설은, 대학 ‘보따리장사’(시간강사)이자 빨치산(그것도 신빨이 아닌 구빨이다) 출신의 부모를 둔 고명딸이, 전봇대에 머리를 부닥쳐 여든 나이에 졸지에 돌아간 아버지의 사흘상을 치르면서 느끼는 아버지의 관계인사들과 부녀간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일기’같은 글의 연속이다. ‘아, 이렇게도 아버지와 작별하는 자식도 있구나’라는 것에 놀랐다. 위장자수를 하고, 전향서를 쓰고 나와 ‘이 풍진 세상’을 살다간 민중 최우선주의자, 합리주의자, 사회주의자, 철두철미 유물론자인‘오지랖 아버지’가 이 땅과 이 지역에 남긴 것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평생 못마땅한 지아비였으나 ‘민중’만 내세우면 ‘꼬리’를 접고 순종하던 어머니, 천형天刑같은 연좌제에 얽혀 평생을 술독에서 사는 작은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비록 ‘이념’은 달랐으나 평생 짝꿍으로 어울린 친구, 선생님 아버지의 유언으로 ‘제자 아저씨’를 끔찍이 챙기는 출세한 스승의 아들, 자신의 일처럼 장례식장을 휘어잡는 민노당원, 조카들과 어머니 친구의 주방장 딸 등을 차례차례 불러내 조잘조잘 풀어내는 그들의 휴먼스토리. 작가는 가슴에 얹힌 그 무엇이 내려간 듯, 아버지가 평생 처음으로‘해방解放’된 것같아 제목을 그렇게 정했겠지만, 그 슬픔과 상처는 차치하고. 독자인 나는 남의 장례일기를 읽고 좀 민망하지만 너무 재밌었다. 자꾸 읽은 앞장까지도 뒤적이게 했다.

 

압권의 장면은 247쪽에 나온다. 아버지가 인간의 시원 始原이라고 믿었던 먼지로 돌아가는 중에 작가의 어머니가 느닷없이 귓엣말로 속삭인 말. '데외비'인지라 글로 쓸 수가 없는 어머니의 해학이랄까, 후회라할까? 작품을 읽으면 자칫 폭소를 터트릴만한 얘기가 궁금하지 않은가. 작가 아버지의 십팔번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긍개 사램이제”는 내가 바로 옆에서 듣는 것같은 환청의 착각을 일으켰다. 최근에 읽은 희한한 시집 『그라시재라-서남 전라도 서사시』도 떠올리게 했다. https://cafe.daum.net/jrsix/h8dk “뭐 이런 소설이 다 있어?” 하면서도 책에서 손뗄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먹먹하게 아프면서도 재밌었다. 사실, 재밌었다는 말은 작가에게는 실례일 것이지만, 할 수 없다. 읽는 내내, 나는 96세 아버지와 어떻게 작별할 것인가를 생각했고, 아버지의 ‘고달프고 외로웠을’ 농부의 일생을 생각했다. 내가 만약 ‘내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쓴다면 어떻게 시작하여 어떻게 끝맺을 지도 생각하게 했다. 누구라도 부모는 있는 법. 이미 작별을 했거나 조만간 작별을 앞둔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딸 그리고 어머니와 아들, 어머니와 딸은 전생에 다들 무슨 관계들이었을까? 그것을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모두 ‘천륜天倫의 멍에’를 지고 한평생 ‘휘적휘적’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작가는 냉정히 말한다. 아버지의 ‘죽음일지’는 자신이 잘났다고 뻗대며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라고. 그리고 아버지의 ‘십팔번 말씀’을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더라고 고백한다. 어찌 섬진강변의 벚꽃길, 반야봉의 낙조, 노고단의 운해만 아름다울 것인가. 고향에 돌아오니 서울에서 보이지 않던 ‘아름다움 천지’인 것을. 작가에게 감정이입이나 된 듯, 몰입한 소설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나하곤 아무 상관도 없는 ‘빨치산의 딸’이 쓴 글을 읽으며, 여러 번 뭉클뭉클, 가슴이 먹먹, 울 뻔한 것은 무슨 까닭인지는 읽어보시면 알게 될 것이다. 완독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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