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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샘통문 Ⅲ-16]아버지의 ‘평생사진’ 100장 선별 유감

작성자알록달록|작성시간26.06.06|조회수224 목록 댓글 0

[찬샘통문 Ⅲ-16]아버지의 ‘평생사진’ 100장 선별 유감

 

 

 

최근(지난 5월 23일) 아버지의 상수(上壽: 100세)를 맞아 아버지의 '평생 사진 100장'을 주제별로 선별, 편집한 앨범을 만들어 드렸다. 100장을 고르는데 형제들과 시공간적으로 상의하기도 어려워 혼자 하려니 말이 쉽지 어려움이 제법 컸다.  차례(챕터)를 편의상 7부(▲‘큰 산’의 100년 발자취 ▲자료 소장·기록맨 ▲선대의 편린들 ▲100년의 관 ··· 제 ▲살며 일하며 사랑하며 ▲망중한-국내외 관광여행 ▲‘인간극장’에 비친 우리 부모)로 정하고, 자료와 사진에 일련번호(001∼100)를 붙였다. 막상 ‘작품’이 나오자 칭찬을 많이 받았지만, 누락된 사진이나 자료만 자꾸 떠올라 반성을 하게 됐다.

 

딱 1백년 전, 증조부께서는 1926년 이 논을 859원에 사시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손자의 험난한 일생을 예지하고 준비하신 것은 아니었을까?

그중에 몇 장의 자료와 사진은 꼭 넣어서야 하는 게 있어, 이 글에서나마 덧붙이고 싶다. 차례에서 보듯, 아버지는 어렸을 적부터 어떤 문건이나 사진을 이제껏 소중하게 보관해 왔으며, 영농일지를 겸한 가족의 이야기를 일기로 기록해 오신 <데이터 보관과 기록의 ‘왕’>이었다. 오래된 부동산 매매서가 2장 있었는데 그 의미를 잘 몰라 누락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사진을 찍어 AI에게 물어봤는데, 작성연대가 일본연호 대정 15년(1926년)이어서 놀랐다. 아버지가 태어나기 1년 전에 증조부(최정선)께서 임실의 땅부자였다는 김창희에게 고향집 앞 봉천리 482번지 논을 859원에 매입한 기록이었다. 또 하나는 소화10년(1937년) 아버지의 탯자리 집 소유권 등기 이전을 전주지방법원 임실출장소에 할아버지에게서 여덟 살 손자인 아버지에게로 신청한다는 문건이었다.

여덟 살 손자가 탯자리집 소유권을 친권자인 할머니(하채녀)의 등기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이전등기를 신청했다는 문서이다.

다른 가정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겠지만, 우리집으로서는 100년 전의 첫 번째 기록이고, 두 번째 문서는 당시 아버지 7살 나이에 할아버지가 31세에 돌아가신 후 곧 증조부가 8살에 돌아가셔 28살 할머니와 2살 된 남동생과 함께 세상에 남게 된 ‘고독한 사연’을 엿볼 수 있기에, 소중하다면 참 소중한 기록이라 하겠다. 이밖에도 10여건의 문서는 너무 낡고 흘림체 글자여서 해독이 어렵지만, 증조부가 동네 서당을 돌아다니며 기초한문교재를 팔았는데, 책값을 받지 못한 외상장부라고 어릴 때 들은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또 하나 놓친 한문문서는 스무 살 아버지가 1946년 12월 20일 어머니와 결혼할 때, 진외가 할아버지가 우리 외가에 보낸 ‘납폐’(納幣)였다. 납폐는 전통혼인 절차 중 하나로, 혼인때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보내는 혼서지(婚書紙)와 예물(禮物)을 담은 ‘함’(函)을 보내는 의식이다. 지금은 ‘함 파는 의식’이 사라졌지만 예전에 골목이 시끄러운 빠질 수 없는 행사였다. 혼서지는 신랑의 아버지가 신부의 아버지에게 "귀한 따님을 배필로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을 정중하게 쓴 편지인데,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안계시므로 아버지의 외삼촌(할머니의 동생)이 대신 쓴 것이다.

 

금석문학자 손환일 박사가 상수를 맞은 아버지를 위해 쓴 축원의 글씨.

예물은 보통 신부의 혼례복을 지을 옷감으로, 청색과 홍색 비단을 보냈다한다. 음(陰)을 상징하는 청단(靑緞)은 홍색 종이에 싸서 청색 실로 묶고, 양(陽)을 상징하는 홍단(紅緞)은 그 반대로 묶는데, 매듭을 짓지 않고 동심결(同心結)로 묶는 까닭은, 이는 부부의 마음이 단단히 묶이되 매듭처럼 꼬이지 않고 술술 풀리라는 뜻이었다. 또한 함의 바깥쪽 네 귀퉁이와 중앙에 다섯 가지 색상의 오곡주머니를 놓는데, 목화씨(분홍)는 자손 번창, 붉은 팥은 잡귀와 액운을 쫓으며, 노란 콩은 신부의 부드러운 성품을, 파란색 향나무는 부부의 백년해로를 뜻하며, 흰색의 찹쌀은 부부가 찰떡 같이 화합하라는 기원이 담겼다고 한다. 이처럼 이성지합(二姓之合)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인 혼인을 하면서 사돈집에 보낸 사성(四星: 사주단자에 쓴 신랑의 생년월일시)과 납폐가 남아있는데, 납폐를 빠트리는 우(愚)을 범한 것이다.

 

효열부 진양하씨 기적비 비문인데, 현재의 효열비 비문이 아니고, 아마도 성균관에 진양하씨 효열비를 세우게 해달라며 쓴 초안인 것같다. 쓰신 분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다음 아버지 면회때 보여드리며 누구냐고 여쭤봐야겠다.

덧붙여 2장을 더 싣는다면, 아버지가 96세때 광주의 수양막내딸 순희에게 써준 <즐겁게 살아라> 글씨와 당신이 평생 사신 동네(임실 오수 봉천리의 냉천마을) 전경을 드론으로 찍은 사진이 있는데, 엄벙덤벙한 사이에 그 자료를 누락해 못내 안타까웠다.

 

아무튼, 어제 어느 칼럼(모교 동창회보)에도 썼지만, 그 어떤 기록(記錄)도 세월이 흐르다보면 소중하게 마련이다. 아버지의 평생사진 100장을 주제별로 고르면서, 기억(記憶)으로만 커버할 수 없는 '기록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일생을 평범한 농부로 사셨지만,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최선(最善)의 삶을 사신 아버지는 우리에게 ‘아주 큰 산’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보람있는 ‘작업’이었음에 틀림없다. 이대로 강건하시기를 빕니다. 제가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를 낭송한 후 후렴으로 읊은 노래구절을 다시한번 불러드립니다. <백 세에 저 세상에서/날 데리러 오거든/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백 이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극락왕생할 날을 찾고 있다 전해라//백 오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나는 이미 극락세계 와있다고 전해라//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우리 모두 건강하게 살아갑시다> ‘큰 산’ 우리 아버지.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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