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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샘통문 Ⅲ-17]‘결이 곱다’는 말

작성자알록달록|작성시간26.06.15|조회수215 목록 댓글 0

[찬샘통문 -17]‘결이 곱다는 말

 

 

 

이제껏 살면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서 “(내가) 결이 곱다는 말을 두 번 들었다.  결이 곱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나무결, 물결, 비단결, 바람결, 피부결 등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부드러움을 표현할 때 많이 쓰이지만, 사람에게는 성품, 마음씨, 분위기가 부드럽고 섬세할 때 비유적으로 쓰는 아름다운 우리말. “그 사람은 마음의 결이 참 고와할 때의 결은 '심성이 착하고 섬세하다'는 뜻으로 칭찬의 말이다. 성격이 모나지 않고 순하며, 말과 행동이 따뜻하고 남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마음이 한결같은 사람을 일컬을 것이다.

 

나 자신을 생각하면, 분에 넘치는, 결코 마음결이 고운 사람은 아니지만, 나를 그렇게 생각해준 그분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이미 고인이 된 한 분은 2004년 나의 호를 지으며 맨먼저 어리석을 우()’자를 떠올렸는데, 뒷자를 고심한다면서 이 말씀을 하길래 고향마을 이름의 샘 천()’자를 붙여달라고 해 우천(愚泉)’이 된 지 20년이 넘었다. '지극히 어리석은 샘물'기에 나는 이 호를 좋아한다. 또 한 분은 한국고전번역원 원장이었는데, 어느날 불쑥 최실장은 결이 고와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겠어라고 해 칭찬이죠?”라고 반문했던 적이 있다. 당시 대외홍보실장인 나는 언론인들에게 기관과 기관이 하는 일을 알리는데 열성을 다하던 때였다. 맡은 바 일을 성실히 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느낀 것같았다. 아무튼, “결이 곱다는 말을 두 번 들은 나는 지금껏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상수(우리 나이 100세)를 맞은 아버지께, 당신의 사진 100장을 골라 편집하여 감사앨범을 펴내 드렸다.

그런데 최근 60여년째 남원에서 한약방을 하고 계시는 85세 어르신에게서 이 말을 또 들었다. 나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얼마 전 상수연(上壽宴)을 받으신 아버지의 안부를 전하려 갔을 때였다. "이미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아드님으로부터 근황을 알게 돼 기쁘다"며 그 어르신(나의 아버지)은 참 결이 고운 분이었다고 회억해 놀랐다. 나로선 전혀 알 수 없는 두 분만의 몇 가지 일화를 들었다. 우연히 탯자리(장수 산서면 백운리)가 같다는 것을 알면서 나이차는 많아도 사귄 지 70년이 넘는 것같다면서 모든 일에 한결같이 성실한 어르신” “운봉으로 약방을 옮길 때에도 도와주고 여러 번 와 격려도 해주셨다고 했다. ‘아아- 이제껏 우리에게는 엄하기만 했던 아버지가 다른 분을 사귀며 그런 섬세한 면이 있는 결이 고운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아버지의 다른 면모(모습)를 보게 된 것이다. 지금도 보약을 짓고 계시는 그 어르신은 아내의 보약을 세 제() 지어달라는 나의 부탁에 어르신을 생각하며 네 제를 지어 보냈다고 해 또한번 감격하게 했다.

 

어제(6월 14일) 아침, 호주의 브리즈번공항, 둘째아들네와 작별하는 자리에서 우리 모두는 눈물 훔치기에 바빴다. 서른여덟이나 된 녀석이 우리와 제 아내 앞에서 '잠시 작별'이 아쉬워 소리없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말도 못하게 짜안했다. 나는 세상을 살면서 나의 둘째아들만큼 결이 고운 사람은 감히 보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비단, 내 아들이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제 형과도 좀 다르게, 결이 고와도 너무 고운, 넘치고 지나치고 유별나게 고운 녀석임을 나는 어릴 적부터 뼈 속 깊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를, 형제를, 친척들을, 많은 친구들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씀씀이에 놀랄 때가 많았고(크고 작은 실례는 차고 넘친다. 정이 헤픈 것하고는 또 다르다), 살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 염려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더구나 머나먼 이국(異國)에서 둘이서 무한한 고독을 씹어가며 제 길을 개척해 나간 것을 생각하면 나는 평소에도 늘 눈물이 앞선다. 나의 눈물을 강요(?)하는 듯해 싫을 때도 있는, 아아, 마음의 결이 강물같고 한결같아 숨결조차 고운 나의 둘째아들아! 마음의 결이 너무 곱기에 나에게 영원한 아픈 손가락인 출세(出世)한 아들아. 한 세상 그렇게 살려면 피곤(?)해 네 삶만 고단할 수도 있단다. 아니 네 삶만 피곤해진다 -이럴 때 쓰는 전라도 말로 글안해도(그렇게 생각안해도) 되는데, 무단시(매급시) (자기) 신상(마음이나 처지)을 긁는다가 있다. 어느 때엔 조금은 영악해도 괜찮다. 삶의 때가 묻어도 괜찮다. 이제는 곧 태어날 네 새끼에 무한한 애정을 기울여도 괜찮다. 아들아, 결이 고운 나의 아들아. 눈물이 앞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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