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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샘통문 Ⅲ-20]두 아들과 내가 고민하는 우정(友情)

작성자알록달록|작성시간26.06.20|조회수228 목록 댓글 0

[찬샘통문 Ⅲ-20]두 아들과 내가 고민하는 우정(友情)

 

 

 

가족 구성원 전체가 해외 7박8일 여행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저녁식사 후 두 아들과 와인을 한잔씩 하면서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각자의 우정론(友情論)을 허심탄회하게 듣기도 하고, 나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던 것이다. 큰아들 41살, 작은아들 38살. 저희도 저희 나름대로 살면서 유치원때부터 초중고, 대학을 거친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귄 많은 친구들이 있었을 터. 길게는 30년이 넘거나 짧게는 몇 년. 몇 년만에 제대로 만난 자리이므로, 형의 동생, 동생의 친구, 아버지의 친구들의 이름과 얼굴을 알기도 하니,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현재의 유지관계가 궁금하기도 했을 터.

 

큰아들

“수년간 사귀면서 보니까, 나는 이제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친구들은 절로 떨어져 나가거나 나부터 연락을 안하게 되더라. 내가 저에 대한 배려를 표현하면 저도 종종 그런 표현을 하거나 궁금해야 하는 것 아냐. 니가 아는 누구누구도 마음 속으로 벌써 ‘친구’라는 생각을 진작에 접었다. 막말로 나에 대한 최소한의 싸가지(예의)가 너무 없는 거야. 약속을 했는데도 제 편의대로 취소를 여러 번 하는데 질리기도 하고. 또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으니까 친구에 대한 ‘필요성’이라고 할까, 젊었을 때처럼 절실하고 자주 보고 싶은 생각도 적어지고. 사업하는 친구가 급전이 필요하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도 무척 난감해. 의리를 생각하고 빌려주지만 약속한 때 갚지도 않고. 여러 번 그랬어. 독촉하기도 뭐하고. 다행히 원금은 몇 차례 받았지만, 진짜 친구끼리는 돈 거래 하는 게 아닌 것같더라. 은행에 10여년 다니다보니 직장 동료, 선후배들도 많이 있으니, 어쩌다 그들과 어울리니 친구에 대한 빈곤감도 별로 못느끼는 것같고”

 

작은아들

“형이 친구에 대해 어떤 기대를 하니까 그리 되는 게 아닐까. 나도 무심한 친구들이 많은데 속이 상하다가도 ‘바빠서 그렇겠지’하면서 내가 먼저 안부도 묻고 그러는데. 지난번 귀국때에도 친구들에게 몇 자 편지처럼 써 책 한 권씩 줬더니 엄청 감동받던데. 외국생활은 친구 사귀기가 너무 어렵고 외로우니, 가끔 대화의 부족을 많이 느끼지. 지금 초중고 대학친구들과 ‘우정전선’(友情前線)에는 별 문제는 없어. 자주 못봐서 그렇지. 내가 노력하면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쉽다고 봐.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어. 그런데, 아빠는 희한하고 신기하지? 귀향하고도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그 관계를 아주 친숙한 듯 이어가는 것이. 그 비결은 뭘까? 엄마 말처럼 그 나이엔 있는 친구들도 나름 정리해야 할 때인 것같은데”

 

분위기가 사뭇 진지하다. 왜 아니겠는가? 친구들과 오랜 세월 사귀어오면서 기쁨과 보람, 갈등 그리고 배신 등을 겪으며, 거기에서 오는 고민 등 느낀 생각들을 형제가 얘기하는 자리. 살면서 꼭 한두 번은 이야기가 가장 많이 필요한 화두(話頭. 우리말 말뜸)가 바로 우정과 사랑일 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우정과 애정에 대한 명제(命題)야말로 유사 이래로 영원한 우리 삶의 화두. 철학자든 문인이든 주옥같은 어록들이 즐비한 까닭도 바로 그래서일 것이다. 아들들이 생각하는 우정에 대한 진솔한 생각들을 말없이 흐뭇하게 듣고 있던 나는 갑자기 물어오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야 했다.

 

아부지(나)

"어떻게 이 나이에도 새 친구들을 잘 사귀고 유지하는 비결이 뭐라고 물었니? 먼저 너희 말을 듣는데, 내 생각에는 너희가 우정에 대해 느끼고 정의하는 게 황희 정승이 말한 양시론(兩是論)처럼 둘 다 옳다고 생각한다. 배려없는 친구를 마음속으로 내친다거나 무심한 친구들을 포용하는 마음씀씀이도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냥 ‘친구’라는 미명으로 무리한 부탁이나 요구를 하면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하지만, 기쁠 때보다 슬프고 괴로울 때 위로해주고 힘이 돼주는 친구가 돼주는 것은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사귐이 끊어졌다고 너무 아쉬워하거나 괴로워할 이유는 없다. 사람은 관계의 사회적 동물이라서 친구가 없다는 것은 진짜 자신이 문제가 있고 슬프거나 허무한 일일 거야. 아부지도 너희가 잘 아는 '또삼촌' 등  30년, 50년된 친구들이 많이 있잖아. 살다 보면 어떤 계기로 그런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사귐이 끊기기도 하더라. 심지어 인생관, 가치관까지 달라져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놀라기도 하지. 

 

자신이나 친구를 탓할 것없이, 요즘 생각엔 그때가 ‘시절인연’(時節因緣)이었다고 치부하는 습관을 갖는다. 불교용어이지만 ‘길동무’를 뜻하는 도반(道伴)은 우리 삶을 기름지게 하는 비타민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아무리 친한 친구도 서로 눈치를 볼 때가 많다. 오래된 친구도 서로를 존중하는 미덕이 있어야 오래 간다. 시골집 사랑채 당호가 ‘구경재’(久敬齋)라고 한 까닭을 쓴 졸문을 지금 보내줄테니 곰씹으며 읽어봐라. 자, 비결이 뭐냐면, 처음 만나 인사를 한 후 나 자신에 대해 눈곱만큼도 과장없이, 있는 그대로인 나를 보여주고 나를 말하는 게 비결같다. 솔직하다는 말이지. 한자로 여실(如實)은 '한결같다'는 말도 될 터. 상대방에 대해 '최선을 다한다'는 말도 될 것이다. 상대방이 그것을 못느끼거나 가볍게 여기면 “그뿐”. 뭐 어떻게 하겠냐?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을 ‘준비’도 해야 한다. ‘그러려니 철학’도 있다. 호를 '이이엄'(而已广)이라고 짓고 자족(自足)하며 산 조선시대 선비(장혼)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한번 제대로 검색해 봐라.

 

그러니까 일부러 사귀고 싶어서 사귀는게 아니고, 살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 중의 한 명’(one of them) 인데, 인연이 있으면 더 만나게도 되고, 인연이 없으면 "그뿐", 만날 일이 없게 되겠지. 물론그 와중에 상대방에 대한 관심은 계속 갖고 있으므로, 몇 달만에 만나도 괜찮고, 자주 만나면 더욱 좋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을 정리하고 사는 거야. 그러니까 얽매이거나 연연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지. "나는 나"니까 말이다. 조금 이해가 되냐? 나도 우정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억지로 정리하고 정의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왕년에 나도 학창시절의 절친, 30년 친구 등과 절연될 때, 실연(失戀)과 같이 세상이 끝난 것처럼 괴로움에 멘붕까지 오기도 했지만, 어쩌겠냐? 언제 기회가 되면 그 사례를 열 개쯤 쓸 생각이다. 우정에 대한 단편소설? 하하. 우리의 인연이 거기까지라면 받아들여야지, 현재 자주 만나는 친구와 우정을 돈독히 하는 게 훨씬 바람직하지, 한번 지나간 인연을 곰씹어봤자 꺼진 불이 되살아나지 않듯.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다.

 

11살 손주녀석이 어버이날에 제 엄마아빠에게 쓴 진솔한 편지. "아직 전 배울 께 많치만 그것들을 활용해 다른 것들도 발견한 게요" 웃기에 앞서 한없이 기특하기만 하다. "싱기방기"

내가 대학 다닐 때 배운 영어 관용구 ‘Let bygones be bygones“(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두자)가 있다. 너희도 너무 마음 아파하거나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정에는 실패(失敗)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단지 즐겁거나 씁쓸하거나 잊고 싶은 추억(追億.메모리)이 있을 뿐.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노력 또는 포용, 아니면 “그뿐”(한자로는 而已)이라고 생각해야, 내가 편하고 해피해진다는 생각이다. 배려(配慮.consideration, thoughtfulness)는 아주 중요한 덕목(virtue)이다. 물론 최선(最善.Do your best)을 다하는 것은 기본(element)이다. 대답이 길었다. 내로라하는 철학자나 문사들의 현란한 어록들을 참고할 필요는 없다는 게 아부지의 생각이다. 그런 것들은 순전히 '말장난' 비슷한 것이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레터 103]구경재久敬齋와 우정론友情論 단상 - Daum 카페

내가 지금 보낸 졸문이나 한번 읽어보고, 오늘밤 너희가 주고받은 우정에 대한 생각, 아부지의 우정론을 결부하여 생각해 보라. 세상에 죽고사는 문제는 그리 많지 않다. 때로는 사랑과 우정 때문에 죽기도 해야 하지만, 많은 경우는 사랑과 우정 때문에 죽을 필요는 없다. 아무튼, 아부지는 누구라도 한 삶을 후회 크게 없이 성실하게(sincerely, dilegently)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출세한 인간이나 필부(匹夫. 보통사람)를 막론하고 말이다.

 

건강상 이유로 너희와 와인 한 잔을 같이 못마시는 게 아쉬웠으나, 이런 주제로 성장하여 가장(家長. Head of the Family, Breadwinner)이 된 두 아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한 시드니 호텔의 밤은 아름다웠다.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자. 다음날 새벽, 너희(두 아들)가 오페라하우스 인근에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왕립 보태닉 가든’에서 런닝벨트를 차고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는 것은 한량없이 흐믓했다. 너희의 ‘우정전선’에도 아무 문제가 없이 몇 십년이고 ‘깊어지는 우정’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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